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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즌정 Jan 01. 2023

시절인연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


어떤 결말이 나더라도 늘 지나친 나의 생각이 문제겠지.

'끌림이 중요할까, 안정감이 중요할까.' 늘 고민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균형감 있게 다루기에는 나는 너무도 쪼렙이라서.


하지만 '하고픈 걸 그냥 해야겠다.'는 단순한 결론을 내렸고, 내가 다치기 싫어서 도망치던 버릇을 조금씩 고치고 이제는 조금씩 용기 내서 뛰어들려고 애쓰고 있다. 아니면, 후회할지도 몰라서.

나는 후회가 인생에서 제일 무섭다.

그래서 꽤 겁내다가도 어떨 땐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대담함도 내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게 원래 내 성격인 것도 같다.


사랑에 빠진 상태가 인간의 정상적 상태이다. 사람은 사랑에 빠져야 본성이 드러난다.


고 체호프가 말하지 않았던가, 난 어쩌면 나의 몰랐던 본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2022년을 떠나보내며, 나를, 또는 내가 떠났던 인연들과 곁에 남은 인연들을 되돌아보면서 인연이란 게 뭘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다른 사람을 망설이는 이유가 다른 사람이 날 망설이는 이유였구나.

깨달으면서 조금씩 의문이라는 미련이 풀려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무언가 하나씩 배워간다는 좋은 점들이 깨달아지면서 내가 잊고 지냈던 나인 모습을 점점 찾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연은 할 만큼 했으면 끝이 난다.
만나야 했기에 인연이고 그 이유가 다하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할 만큼 했고, 그것이 만나야 할 이유였다면 이제 그 이유가 다했으니 놓아지고 자유로워지자.


최근 블로그 업로드에 열 올리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이웃의 위와 같은 글을 보고는, 새삼 감탄하게 되어 머리에 전구가 켜진 듯 정신이 들었다.


우연히 읽었던 글로 내가 깨닫고 웃다니 세상엔 내가 모르는 지혜가 참 많다.

항상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학 학위를 딴 거? 영어를 좀 배워 토익 900점 넘는 거? 선생님 노릇을 했던 거? 시험에 합격했다든가? 그런 건 삶에서 크게 도움 되는 지혜가 아닌 것을 늘 새삼 느끼게 된다.


어느 때에 어떤 것을 하고,

어떤 음식이 제철인지,

사람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세상에 놓인 내가 무엇을 향해가는지,

또 어떻게 해야 후회가 없는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엔 늘 그렇게 배우는 자세가 된다.

상대가 나와 비슷한 것을 찾게 될 때의 짜릿함도, 나와 달라서 알게 되는 새로운 사실, 취향, 지식들이 모두 다 재밌고 즐겁다.


나의, 그리 길진 않아도 짧지 않은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온전히 나 혼자서 발현한 취미와 취향이라고 꼽을 수 있는 건 잘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관계에 대한 좌충우돌도 순리대로라면 이보다 더 어릴 때에 겪었어야 할 내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헤매고 있는 걸 보면. 하지만 나는 남들과 순서가 조금 뒤바뀐 시차를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느껴지는 때와 시간의 마술.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처럼 모두의 시차는 다르니까.

각자의 시간 속에 살다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만나는 것을 '시절인연'이라고 부르지 않나 싶다.


시절을 교차해 만나는 인연에 내 이유가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떠날 때가 되었다면 처음에 좋았던 기억은 그대로,

감사할 줄 알며 머물렀던 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떠나야, 서로의 다음에도 인간적인 도리가 될 거다.


이렇게 어영부영 써 내려가지만 난 여전히 한-참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더 부딪치고 살아갈 뿐이다.

관계를 맺는 것에도 그렇지만, 내가 하려는 모든 일에도 최근 쉽게 지친 이유를 깨달았다.

좀처럼 몸에 붙지 않는 새로 시작한 일들이 언제쯤 몸에 익나,

이도 저도 아닌 관계를 어떻게 '간단히' 정리해 버리나,

하는 '결과'에 대해 어느새 마음이 조급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후회 없이'라는 슬로건이 어느새 지나친 '성취'를 향했다는 것도.   

내게 행복을 주는 건 결과가 아니라는 거.


그래서 다가오는 2023년에는 과정을 사랑하고 지금의 현실에 몰입하자.

항상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하며, 스스로의 감정에서 약간 벗어나 타자성을 지닌 이성적 판단을 할 줄 아는 밸런스가 내게는 또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만을 할 수도 없다. 어쨌든 하게 된 일을 좋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하고 싶은 걸 하고, 하는 것들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걸 좋아하자, 후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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