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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즌정 Nov 17. 2022

인생이란 길에 후진이란 없기에

<드라이브 마이 카>, 2021


일본은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일본의 영화와 소설의 문법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일본 특유의 현학적이고 떠다니는 문체, 그리고 매우 정적인 분위기가 나또한 침전하게 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일본은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일본이 잘하는 영화이고, 일본에서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감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애니 실사화 영화는 이제 그만...

이런 분위기의 몇없는 진짜 삶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 기쁜 마음으로(물론 러닝타임 3시간은 좀 각오를 해야 한다.) 봤다.




'말'의 의미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연극을 연출하고, 또 스스로 연극에 참여하기도 하는 연극배우이다.

그의 아내도 TV방영극 대본을 쓰고, 그들 사이는 완벽해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아내는 외도를 하고 있었고, 주인공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한다.

모르는 척 넘어가면 그대로인 평범하고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보면, 그녀가 연출하려는 극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다.

 '누군가가 변화를 알아주기를 바랬다.'는 것을,

둘 사이의 문제를 애써 외면한 채 마치 예전 그대로였던 것처럼 지켜오려던

남자주인공의 모습이 아내에게는 소통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내의 이름은 '오토', 한자어로는 音(소리)임에도 정작 둘 사이에는 평범하게 겉도는 말로는 채워지지 않는 간극이 있었다.


소통은 말 그 이상의 것임을 영화는 은연중에 보여주는 듯했다.


주인공 가후쿠가 연출하는 연극은 다국적의 배우들이 나와서(그중에는 수어를 하는 배우도 있었다.)

서로의 역할을 자신의 언어를 쓰면서 배역을 소화한다.


언어의 차이와 가후쿠의 독특한 연출법은 배우를 어리둥절하게 할 때도 있었다.

서로의 합을 맞춰가다 각자의 역할을 각자의 언어대로 소화하면서, 연극은 순조롭게 흘러간다.

말이 달라도, 정해진 역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언어 그 이상의 표현들로 연극이 완성된다.

처음부터 서로를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결국, 소통에도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수반됨을 영화는 보여주는 듯했다.




인생은 연극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서 'all the world's a stage(인생은 연극이다.)' 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인용구가 여실히 떠올랐다.

우선 가후쿠가 연극을 하면서, 연극 대사를 연습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 대사에는 '삶을 살아라, 역할을 하라'는 식의 내용이 간간이 나온다.


일본 사회에서 다소 더 강요된 특성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되는 삶에 대한 관념은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

내가 아무리 무너져내리더라도,

나의 사생활에 금이 가더라도,

부은 눈으로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해야하는 우리네 인생을 돌이켜보면

내가 꼴리는 대로만 살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세상 속에 주어진 역할을 어느 정도는 연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도로 위에서 그저 앞으로 가는 수밖에는 없다.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이동 반경의 확대를 의미한다.

법적으로도 우리나라는 성인이 되어야 면허를 획득할 수가 있고,

자신의 차를 갖고 주행한다는 것은 어른들이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적인 기술이다.

처음은  어렵지만, 나중에는 흔하고 당연시 되는 기술 중 하나이다.


이동수단의 확보와 이동반경의 확대는 자신의 세상이 커짐과 동시에 어디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후련함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성장에는 이러한 '이동, 떠남'의 과정이 항상 존재한다.

마녀배달부 키키는 그 내용이 오프닝이었으며,

길버트 그레이프, 뮤리엘의 웨딩, 싱 스트리트의 결말도 그러했다.


영화의 제목과 더불어 당연히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도로를 달리는 장면,

어디론가 떠나는 장면

그 자체가 우리의 인생길이다.


어떤 차를 타든, 누구와 함께 타든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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