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절데뷔전12
‘드레싱’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평소 같으면 샐러드에 상큼하게 뿌려 먹는 소스가 가장 먼저 떠올랐을 텐데, 수술 후 나에게 드레싱이란 그저 쓰리고 화끈거리고 아픈, 딱 그 정도의 감각만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수술 다음 날 아침.
6시쯤이었을까. 연예인 같은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가 아까울 정도로, 지독하게 무뚝뚝한 표정과 성의 없는 말투를 가진 나의 주치의가 나의 이름을 건조하게 부른다. 수술 후 환자에게 체크해야 할 매뉴얼 리스트 2번쯤에 있는 항목을 보고 읽는 건가 싶을 만큼 무미건조하게 묻는다.
“어때요? 특별히 불편한 데 없죠?”
불편한 데가 있다고 대답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세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있다가 9시에 드레싱 하러 오라는 말을 빠르게 던지고는 가운을 휘날리며 퇴장한다.
기다리지 않는 시간은 유독 빨리 온다. 아침 일찍 찾아온 신랑과 조심조심 걸어 처치실 앞에서 대기한다. 하나둘 드레싱을 받으려는 환자들이 몰려와 줄을 서는데, 의자가 부족해 서서 기다려야 하는 환자도 있다. 조금만 시차를 두고 환자를 부르면 될 것을, 같은 시간에 한꺼번에 불러 모아 그렇지 않아도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10분, 20분씩 서 있게 만드는 의료진 중심의 시스템에 살짝 화가 난다.
처치실 안 풍경도 썩 친절하진 않다. 환자들은 실내 곳곳에 놓인 의자에 앉거나 베드에 누워, 환부에 붙여 놓은 붕대나 반창고를 미리 모두 떼어내고 기다려야 한다. 많은 환자를 빠른 시간 내에 치료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겠지만, 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의사가 오길 기다리는 그 시간이 싫다. 어쩐지 은밀한 곳을 내보이는 것처럼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옆에는 여대생으로 보이는 이쁘장한(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으니 정확하진 않지만) 친구가 나와 같이 코에 붕대를 붙이고 얼굴에 큰 X자를 그린 채 앉아 있다. 옆에서는 엄마가 딸의 이런저런 응석을 받아주고 있다. 젊어서 그런가, 나보다 훨씬 생생해 보인다.
콧속에 막아 놓은 거즈가 빠질 경우, 그걸 다시 끼우는 데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니 절대 재채기를 하면 안 된다는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니, 이미 거즈가 빠져버린 상황인 듯하다. 왜 듣고 있는 내가 더 무서운 걸까.
잠시 후, 나보다 앞서 들어갔던 그 모녀가 나온다.
다 큰 처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걸어 나온다.
“아 씨, ㅈㄴ 아파! 엉엉!”
충분히 이해한다. 저 냉혈한 주치의가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다시 솜을 쑤셔 넣었을지 충분히 상상이 가니까. 욕이 나올 법도 하다. 이제 내 차례다. 솜이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감사함이 밀려온다.
나는 혹여나 부딪힐까 코를 ‘순두부’ 다루듯 조심조심 모셔 왔는데, 냉혈한 주치의는 사정없이 반창고를 잡아당긴다. 마치 내 코까지 같이 뽑혀 나갈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며 보호 장치와 붕대, 메디폼을 떼어낸다. 아플까 봐 눈을 질끈 감았지만, 다행히 소독약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고 그저 서늘한 느낌이다. 거친 그의 ‘솜질(소독)’에도 크게 아프진 않다.
그때 반가운 과장님이 등장하신다. 과장님은 꼼꼼하게 코를 만져보고 들여다보며, 수술 전보다 훨씬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나는 코가 막혀 숨을 못 쉬는 바람에 한잠도 못 잤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언제쯤 이 솜을 뺄 수 있을지 묻자, 나는 코가 심하게 부러진 편이라 꼬박 4일 동안은 하고 있어야 한단다.
웬만하면 한쪽이라도 빼주실 법한데, 절대 안 된단다.
아흑…
걱정했던 드레싱 시간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지나갔다.
콧속 솜이 절대 빠지지 않게만 조심하면,
곧 무사히 이 병원을 빠져나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