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전 연장_ 울면 안 돼!

골절데뷔전11

by 하다

(게으름의 막을 내리고 연재 다시 시작합니다. 반성 ㅠㅠ)



나의 사고 소식과 입원 소식을 들은 친구와 지인들이 병원이 어딘지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안 알려줘요~ 오지 마세요~ 마음만 받을게요~ 고마워요~!

다들 얼마나 바쁜 삶을 살고 있는지 빤히 다 아는데 굳이 그들의 삶에 바쁨 한 스푼을 더 얹고 싶지 않다. 기름독에 빠졌다 겨우 빠져나온 듯한 떡진 머리와 일그러진 얼굴, 그 한가운데를 엑스 자로 가로지르는 반창고까지... 볼썽사나운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다. 그런데 이상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서운함이라 할 수도 있고 외로움이라도 할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정체불명이라 할 수도 있을 야리꼬리(이상하단 위미리 사투리다)한 감정이다.


어떻게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을까? 내가 어쩌고 있는지 안 궁금한가?(오지 말라고 철벽 친 건 나다)

혼자 있고 싶었는데 혼자 있기 싫다.(고독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 건 나다)

아무도 안 오니 누가 보면 친구도 없는 줄 알겠네... (그걸 자청한 것도 나다)






특정한 대상도 없이, 막연하게 밀려오는 서운함과 생각지도 못했는데 불쑥 찾아온 외로움에 괜히 심술이 나려고 한다. 그때 핸드폰 화면에 노란색 알림 창이 떴다.


"00아 너 병실이 몇 호야?"

가끔 내 글에 등장하는 동네 언니 E다. 지금은 옆옆 동네로 이사를 가버려서 동네 언니라고 소개하긴 어색하지만, 우린 여전히 쌍문동 모임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냥 동네 언니라 소개하기로 한다.

절묘한 타이밍에 온 언니의 깨톡이 반가우면서도 나는 괜히 이렇게 말한다.

"아이~ 오지 말라니까 뭐 하러 와요~~~ 피곤할 텐데~"






츤데레 스타일 E언니는 다정하게 위로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남의 좋은 일에 축하해 주면서도 뒤로 살짝 배 아파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의 아픔을 절대 외면하지 않는 마음 약한 사람이다.

늘 장난스러운 것 같지만, 보통 사람들 보다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 코가 깨졌다는 소식에 놀라면서도 "프랑켄슈타인 얼굴 구경 가야지~"라고 말하며

언니만의 방식으로 위로를 전했던 재밌는 캐릭터다. 내 얼굴을 보고 깔깔깔 진짜 프랑켄슈타인이 다 되었다고 웃을 걸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링거 거치대를 끌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마중을 나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언니의 반응이 궁금해 키킥하고 웃으며 눈을 보는 순간, 매운 연기가 눈을 휘감았을 때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서로 깔깔대며 마주할 줄만 알았는데 E언니는 너무 놀란 얼굴로 울기 시작한다.

아... 팽팽하게 잡고 버티던 이성의 줄이 팅하고 끊어진다.


"야~ 어떡해~~~~ 얼굴이 이게 뭐야 ㅠㅠ"

"언니 왜 울어~ 나 울면 안 돼~~~~~ 울지 마~~!!! ㅠㅠ"


한바탕 신파극을 찍고서야 진정이 된 우리는 살짝 머쓱해하며 병실로 간다.

"아 언니 옛날 사람 아니랄까 봐 누가 요즘 이런 거 사들고 와아~ ㅋㅋㅋ"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보려 포도맛, 사과맛, 오렌지 맛이 섞인 병음료 선물 세트를 들고 온 언니에게 농을 던진다. 언니는 갑자기 살 게 없었다며 웃는다.


웃기지만 차마 웃을 수 없는 사고 현장 이야기, 수술 후 고통스러운 밤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로 얼마의 시간을 보냈을까. 퇴근길에 들른 언닌 피곤해 보인다. 얼른 가서 쉬라고 말하며 언니를 쫓듯이 돌려세운다. 이번에는 배웅을 하러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언니가 갑자기 흰 봉투를 건넨다.

"얼마 안 돼~ 맛난 거 사 먹으어~"

아.. 2차 울컥.

극구 사양해도 소용없다. 말라가지고 무슨 힘은 그리 센지.

E언니는 내손을 뿌리치고 순식간에 이미 엘베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고마운 사람.

나도 언니의 아픈 날, 언니의 외로운 날

이렇게 매운 연기처럼 다녀가야겠다.



몇 시간 전 느꼈던 서운함과 외로움은 아마 꿈이었나 보다. 텅 빈 병실로 돌아가는 길, 부러진 코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공기가 더는 시리지 않고 따스하다.



제목 없는 디자인 (2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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