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구멍 해방의 날_ 만세

골절데뷔전13 마지막화

by 하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졸음과 사투를 벌일 때, 수업종이 울리길 기다리며 노려보던 시계는 정말 더디게 움직였더랬다. 마치 영원히 그 시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을 정도로 더디게...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예고 없이 찾아온 급똥신호에 화들짝 놀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집으로 걸어가는 약 50미터의 골목길은 나에게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빨리 스킵해버리고 싶은 시간은 일부러 늦장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더 더디게 흐르는 법이다.

양쪽 코가 막힌 상태로 보내는 4일간의 밤은 졸음을 참던 수업시간처럼, 급똥을 참으며 집으로 가는 억겁의 시간처럼 느리게 흘렀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끝은 있었다.


내가 부정적인 상황에 놓일 때마다 붙들고 긍정회로를 돌리게 만드는 명언이 하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 모든 일에 끝이 있음이 힘들거나 아플 땐 큰 위로가 된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나 영화일지라도 끝이 없다면 그 재미가 계속 이어질까? 나는 '행복'도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기에 귀하고 갈망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어쨌든 시간은 나를 마침내 해방의 날로 안내했다.





D-Day

두둥, 이 설렘을 언제 느꼈더라?

몇 년 전 드라마를 보다가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남편과 연애시절... 아 까마득하니 생각도 잘 안 나니까 그만두기로 했다.

코털 필터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공기를 마시며 왠지 찝찝했던 과거는 안녕.

먼지와 세균을 코털이 걸려준 신선한 공기가 시원하게 콧속으로 밀고 들어올 순간을 상상하며 나는 설렜다.

먹으면서 숨이 찼던 과거는 안녕.

입안 가득 복숭아를 베어 불고도 양쪽 코로 얼마든지 산소를 흡입할 수 있는 순간을 상상하며 가슴이 두근댔다.

요리보고 조리 봐도 오징어 같던 못난 내 얼굴은 안녕.

양쪽 콧구멍 0.5cm 아래로 삐죽 나온 꼴불견 솜뭉치가 제거되어 1.5배 예뻐진 나를 상상하며 미소 지었다.



차갑고 약냄새가 진동하는 처치실도 오늘은 뷰 좋은 카페만큼이나 달가웠다.

나의 사랑하는(나는 일잘러가 좋더라) 과장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살짝 흥분되기까지 했다.

너무 꽉 껴서 잘 빠지지 않음 어쩌나, 빼는 순간 피가 쏟아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없지 않았지만 설렘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과장님은 특유의 츤데레스러운 말투로 나의 상태를 체크하셨고

4일 동안 내 코와 혼연일체가 되어있던 솜뭉치를 순식간에 빼주셨다.

쑥! 앓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산고 끝에 아이가 쑤욱~! 빠져나오는 그 정도로 짜릿한 시원함!

(사실 이건 좀 과장이긴 하다. 출산의 고통과 희열을 어디에다 비교할 수 있겠는가)

마치 코로 숨 쉬는 법을 연습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코로 공기를 빨아들였다.


상쾌함,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알랑가 몰라~ ㅋㅋㅋ



빼앗긴 코를 되찾은 그날의 감격은 사실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콧구멍으로 공기가 들락날락하는 건 이미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고,

어떠한 감사함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그날의 답답함, 그날의 공포, 그날의 외로움에 다녀왔고 그런 일은 지금 이 평온한(크고 작은 일을 제외하면 꽤 평온한?) 일상과 순조로운 숨쉬기에 무한 감사를 느끼게 한다.


감사하다.

칠칠치 못한 실수로 가족들을 고생시킨 마누라를 구박하지 않고 늘 위해준 남편에게.

엄마가 없는 동안 함께 걱정하고 엄마의 빈자리를 잘 견뎌준 아이들에게.

까다로운 손주들 끼니를 챙기며 살림을 돌봐준 두 분 어머님께.

내일처럼 함께 아파해준 친구들과 직접 찾아와 위로해 준 언니들.

누구보다 많이 걱정했을 우리 진짜 언니.

고독한 병실 생활에 웃음과 정을 나눠준 이웃들에게.

약과 주사를 챙겨준 간호사 선생님께.

맛은 없었지만(ㅋㅋ 거짓말은 못함), 식사를 준비해 주신 여사님들께.

무엇보다 자신했던 만큼 좋은 결과를 보여주신 츤데레 주 과장님께.

그리고 차가웠지만 할 건 다 해주신 우리 주치의 선생님께.

감사했습니다.


나의 골절데뷔전은 감사인사로 막을 내립니다.






함께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덕분에 연재를 시작했고 또 무사히(많이 딜레이 됐지만) 마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연재감시단 친구들에게 고맙습니다.




덧,

저는 내일 주 과장님께 제 몸뚱이를 한 번 더 맡기게 됐어요.

그 이유는 번외 편에서 알려드릴게요!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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