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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 Dec 03. 2024

김치가 온다

김장철엔 김치 이야기!




오늘같이 딱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날은 

제목을 짓지 않고 무작정 글을 시작해 본다. 

이슬아 같은 유명 작가도

 ‘-끝-’을 쓰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기도 한다는데 아무렴 어떤가!



시골에서 김장 김치가 왔다. 

류머티스 관절염과 반려하고 있어 

손가락 통증이 심한 엄마가 

어떻게 우리 집 김치까지 해주셨는지, 

그 김치는 멀고 먼 경주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왔는지 

이야기하자면 길어 생략이다. 

그저 끝내주게 맛있어서 

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도 

혀가 짠기에 절여져 얼얼할 때까지 

자꾸 집어 먹었다는 것만 쓰련다. 



예년까지 늘 시어머니께서 김장을 해주셨었다. 

어머님은 이모님과 휘뚜루마뚜루 하면 된다고 

아이들이 있으면 더 복잡하다며 

삼형제 데리고 내려오지 못하게 하셨다. 

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감사의 마음만 전했었다. 

어머님의 김치 맛을 못 보게 되어 아쉽지만, 

우리 엄마가 김장을 해주시니 어머님께 송구한 마음이 들지 않아 좋았다. 



어머님 김치를 받아 먹을 땐 감사하지만 송구한 마음이 들고, 

엄마 김치를 받아먹을 땐 마냥 감사하기만 하다. 

분명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두 분의 마음은 똑같았을 텐데 

받는 내 마음이 다름을 알아차리고 나니 

어쩐지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알면 서운하실 테다. 

마음고름을 잘 여며야겠다. 



‘김치가 온다’ 하면 한바탕 냉장고를 뒤집는다. 

유통기한이 1년이 지난 소스 종류, 심지어 포장을 뜯지도 않은 샤브샤브 소스, 

곰팡이가 곱게 내려앉은 조청, 정체불명의 잼 등이 콩계팥계 뒤섞여 있었다. 

그것들은 죄다 하수구나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냉장고를 비워내면서 몸도 휘지게 힘들었지만, 마음도 만만찮았다. 

제로웨이스터 되기를 한답시고 떠들어 대놓고선

너무 많은 음식을 버리고 

엄청난 쓰레기를 만들어낸 데서 오는 

양심의 통증이 생각보다 컸다. 



이런 통증이 앞으로 저큼하는 데 마중물이 되어줄 거라 스스로 위로해 본다. 




덧, 

민바람 작가님의 책 <낱말의 장면들>에 나오는 순우리말 몇 개를 의도적으로 사용해봤어요. 아직은 사용이 어색해 익숙해질 때까지 소중한 우리말들을 자꾸 사용해보려고 해요. ^^

생소하실 분들을 위해 풀이를 남겨봅니다. 




#휘뚜루마뚜루 : 이것저것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마구 해치우는 모양.


#마음고름 : 마음속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단단히 해둔 다짐.


#콩계팥계 : 사물이 뒤섞여서 뒤죽박죽된 것을 이르는 말.


#휘지다 : 무엇에 시달려 기운이 빠지고 쇠하여지다.


#저큼하다 : 잘못을 고치고 다시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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