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숟가락 싸움
어떤 쟁점을 두고 자신이 속한 정당이나 집단에 유리하게 이끌어 갈 때 '밥 숟가락 싸움'을 한다는 관용적 표현을 쓴다. 밥 숟가락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뱃속을 채우고, 진 사람은 밥을 먹지 못해 굶게 되는 싸움이다.
아이들 이야기 책에서 보았던 지옥과 천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확한 줄거리와 출처는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단순한 이야기라 기억에 남는다.
신이 나타나 어떤 사람에게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먼저 지옥에 간다. 불이 활활 타오르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하고 도착한 지옥엔 식탁에 산해 진미가 차려져 있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사람들이 손에 쥐어진 기다란 숟가락이었다. 긴 숟가락으로 식탁의 음식을 떠서 자기 입에 가져가느라 식탁은 아수라장이 된다. 어떻게든 숟가락을 입 속에 넣으려고 팔을 움직이고 몸을 비틀다가 가 옆 사람의 얼굴을 때린다. 입으로 들어가야 할 음식은 온 사방으로 튀고 다른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너 때문에 못 먹었잖아. 옆으로 좀 비켜!'라며 말싸움과 몸싸움이 이어진다. 밥을 먹기 위한 숟가락이 무기가 되어 누군가는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칼이나 창처럼 상대에게 휘두른다.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소심한 사람은 그저 울며 신세 한탄을 한다. 말 그대로 지옥이다.
이어서 천국에 간다. 꽃이 만발하고 새소리가 들리며 천사들이 날아다니리라 예상한 천국의 모습은 놀랍게도 지옥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똑같은 식탁에 똑같이 기다란 숟가락을 든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싸우지도 굶주리지도 않는다. 기다란 숟가락으로 건너편에 앉은 사람의 입으로 음식을 떠 먹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자신의 입이 아닌 상대의 입으로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서로 감사하며 즐겁게 식사를 한다.
천국과 지옥은 그 환경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가 다른 것이다. 서로 나누고 감사하고 배려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떤 곳도 천국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은 어떤 좋은 환경에서도 지옥을 만든다.
너무나 뚜렷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이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아이는 대뜸 숟가락이 없으면 맨손으로 먹거나 숟가락을 부러뜨려서 짧게 만들면 되지 않냐고 반문했다. 나눔과 감사의 미덕이라는 떠먹여 주는 감동의 지점을 지나 '다른 해결책'을 제안하는 비뚤어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또 어찌 보면 현실에서 말하는 최고의 미덕인 각자도생, 자력갱생의 시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 떠먹여 주는 밥을 먹으며 감사와 미소로 화답하는 것이 진정한 천국은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든 주어진 긴 숟가락을 이용해서 자기 입에 숟가락을 가져가려고 몸은 비틀어보고 최대한 팔을 뻗어 보고 숟가락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보며 스스로 '밥 먹기'라는 과업을 해결하려 애쓰는 지옥의 사람들이 과연 이기적이고 어리석기만 한 것일까 라는 의문도 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이 진짜 있을까? 그저 살'만'한 세상 정도를 꿈꾸는 것 같다. 최저 생계비, 최저 임금이라는 말은 알게 모르게 '최소한'의 행복을 꿈꾸게 한다. 아이들도 '꿈'이라는 말 앞에 '현실적인'이라는 수식어를 아무렇지 않게 붙인다.
과연 현실은 무엇이고, 꿈은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 같은 현실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 속의 '최소한'은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은 법에서 정한 최저 임금이 그저 '꿈'에 불과한 현실을 말하고, 어떤 사람은 법이 최저 임금을 정해둔지도 모르는 현실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먹고사는 생존을 '최소한'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워라밸'을 '최소한'이라고 말한다.
최소한을 어디에 두는 사람인가에 따라서 최소한이 위협당했을 때 취하는 행동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행동이 삶 자체를 다르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최소한'이 아닌 우리의 '최소한'을 말하며 더 어려운 '숟가락 싸움'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 싸움에서 제 입으로 들어오는 밥은 없고 그저 옷이 더럽혀지고 찢기기도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최소한'이 위협당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숟가락질을 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포기할 수 없기에 맨손으로 먹는다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긴 숟가락이라는 법의 테두리를 붙들고 '밥 숟가락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