름의 나열 ch.5
우연히 H에게 들은 말이었다. 스무 살을 막 넘긴 나는 H보다 한참을 어렸던 친구였기 때문에, 이해도 못 했을 뿐만 아니라 나와의 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듯한 발언인 것 같아 내심 서운했다. '흘러가는 사람'에 대해 차츰 이해하기 시작한 건, 내가 서른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사회에서도 제법 어른이지 싶은 나이를 몇 발짝 앞두고 나서야, 돌이켜 본 지난 시간의 선 위로 나를 거쳐 흘러갔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쩔 도리도 없이 흘러가 버린 수많은 관계. 당시엔 별거 아니었던 H의 한 마디가, 그제야 진한 볼펜으로 덧쓰듯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타인에 대해선 꽤 염세적인 사람이었는데, 타고난 성향이라기보단 애써 만들어졌단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몸이 약하게 태어난 데다가 겁도 많고 낯도 많이 가리던 늦둥이 딸을 볼 때마다, 부모님은 분명 저 작은 몸으로 세상살이 녹록지 않겠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혹시라도 나쁜 사람들과 엮이다가 나쁜 일이라도 당할까 싶어서, 주변의 사람을 조심하란 말로 내가 첫 학교생활을 할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밥 먹듯이 주의를 주시곤 했다. "주변인이라고 마음 놓지 말고 누구든 한 번은 더 의심하고, 한 번은 더 경계하고." 주변인이라 하면, 친구도 애인도 예외는 없었다. 어린 나이부터 타인에 대한 경계가 습관처럼 굳어진 나는, 나이를 먹고서도 좀처럼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 정확히는 마음을 쉽게 열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어쩌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회생활 깨나 해 본 나이에 받은 심리검사에서 연대감 수치가 0이라는 기가 찬 결과를 받아 버리기도 했다.
내가 나의 주변으로 열심히 다져온 경계의 막은,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싶었던 멍청하고 착한 딸의 작품이다. 열심히 만들었으니 얼핏 단단해 보이지만, 역시 자의적으로 한 작업은 아니란 듯 어딘가 어설픈. 그러니까 비유를 하자면, 정교하지 못한 모양으로 굳은 설탕과자 같다. 하지만 견고한 성질에게 깨지고 부러지는 것은 역시 필연적이던가. 서로 알아가는 시간만큼 신뢰의 수면은 높아지고, 다정한 호의는 거친 파도처럼 연신 설탕과자들에 부딪혔다. 어설픈 벽이 얼마 못 가 속수무책으로 깨지면 틈 사이로 상대방이 무섭게 들어차기 시작한다. 사실은 애정을 받고 싶고, 애정을 나눠주고 싶어 한없이 말랑한 알맹이의 내가 흠뻑 젖어간다. 행복하고 좋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염세적인 모습마저 어설프게 흉내 내는 사람이었을지도.
앞서 서술한 대로, 사람은 물처럼 흘러가듯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잠깐을 찰랑이다 틈으로 또 흘러가 버리는 여러 인연들의 뒷모습을 보며, 어린 나는 혼란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젖은 옷이 마를 때까진 떠난 사람의 냄새가 짙었지만, 이미 멀리 흘러가 버린 인연이란 것을 아프게 깨달아야 했다. '역시 한 번은 더 의심하고, 한 번은 더 경계하고.' 그러면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또 무너진 마음의 벽을 보수하고 고치곤 했고,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거친 파도의 사람을 만나 부서지길 반복했다. 무수히 흘러오는 사람들은 거침이 없었고, 흘러간 자리의 공허한 공기를 견디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나를 둘러싼 설탕과자 벽이 지금도 건재하냐 묻는다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마음을 여는 것이 많이 서툰 사람이고 누군가 떠난 자리에 남은 벽의 조각들을 주워 대충 얼기설기 붙여놓곤 하지만, 이제는 저 멀리 오는 파도들이 새로이 부술 것을 알고 나를 거쳐 또다시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을 안다. H는 정말 가볍게 지나가듯 말했지만, 나에겐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수고스러운 이 짓을 조금은 내려놓기 위한 지침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내게 머무는 순간에 더 집중해서 기쁘게 젖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떠나는 뒷모습까지도 이제는 정말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