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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Feb 04. 2022

Emily is in Paris가 쏘아올린 추억과 미련

22살 유럽여행, 그리고 이후, 승무원이 되어서 몇 번의 파리 비행



인스타그램 피드에 랜덤으로 이런저런 콘텐츠가 많이 떠돌아다녀서, 들어본 적이 있는 'Emily is in Paris', 한국에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로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었다.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시즌 2까지 나온 드라마였다. 누군가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드라마야'라며 추천해줬고, 가볍게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대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하, 그런데 이 드라마, 1편부터 파리가 너무 그리워서, 아니 해외에서 자유롭게 마냥 내 삶을 즐기던 그때가 너무 그리워서, 정말이지, 말 그대로 눈물이 날 정도로 추억에 잠겨버렸다.



드라마 자체도 재밌었다. 방금 시즌2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 '으악! 시즌 3 언제 나온다고?' 외치는 나를 보면, 단단히 빠진 것이 틀림없다. 배우들도 매력적이고, 노래는 계속 내 귓가에 맴돌고, 파리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이거다. 드라마를 보면서 단순히 '아, 파리 참 좋았는데' 하는 정도의 하루 이틀이면 지나갈 향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리스본에서 즐겁게 살면서, 따뜻한 봄을 기다리던 나는 코로나로 인해 정말이지, '어쩔 수 없이 잠깐' 귀국했었다. 2020년 4월, 그때는 오히려 한국은 점점 일상생활이 가능해지고 포르투갈은 모든 것이 락다운 되어가던 시기였기에, 정말이지, 2~3개월 정도 긴 Vacation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들어왔었다. 그렇게 귀국해 맞이한 한국에서의 삶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니, 내가 어찌 유럽에서의 삶을 그저 '참 좋았었지'라고만 회상할 수 있을까?


이 드라마를 보면서, 혼자 정말 많은 회상에 잠겼었는데, 나는 어쩌면 평생을 'If i didn't come back to Korea by the time, or if the COVID-19 didn't occur, then what could have happened...? what i could have been doing by now?'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때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코로나19가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드라마를 보면서 파리가 너무 그리웠어요"라는 말은 곧, "해외에서의 삶이 너무 그리워요"라는 말로 번역된다. 심지어 나는 아주 예전에 2016년 밴쿠버에 있을 때, 미드로 영어 공부하면서 표현들을 적어놨던 노트를 꺼냈고, 에밀리를 보면서 외우고 싶은 표현들을 몇 개 적기 시작했다. 귀국하고 죽어가던 나의 영어실력에, 매번 '아 영어공부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아무런 행동 없이 지내오고 있었는데,  에밀리는 무려 이런 나를 영어에 대한 열망으로까지 이끈 것이다. "연달아 나온 파리 비행 덕분에, 매달 에펠탑을 볼 수 있던 때가 있었는데"부터 시작해서, "나도 한 때 어디 가면 네이티브냐는 소리 들을 정도로 영어 잘했었는데" 라며, 늦기 전에(?) 다시 영어를 입에 붙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와우, 이 정도면 진짜 '에밀리 파워', 꽤나 심상치 않다!


2018년 5월 파리 비행

어디 그뿐이냐, "낮에 랜딩하고 바로 뛰쳐나가는 바람에 자정이면 기절하는지라, 클럽 한 번을 못 가봤네"부터 "집적거렸던 수많은 유럽 남자들을 외면하고 나는 왜 그렇게 한국 식료품 장을 보는 일에 미쳐있었던가?"라는 생각까지 미련이 남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Oh, 이 문장을 쓰는 순간 유난히 떠오른 프렌치 남자가 있다. 길을 물어보다가 내 영어 실력에 놀란 그 남자와, 지하철 역 입구에서 몇 분을 수다를 떨었었다. 왓츠앱을 교환하고 헤어졌었고, 그날 밤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핑계를 댔고, 그 이후로도 계속 파리에 언제 오냐고 물었었다. 파리에 몇 번을 더 갔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핑계를 댔고, 결국 다시 만나진 않았었다. '와인 한 잔 정도는 뭐, ' 고민한 적도 있지만, 남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뭐, 늘 대부분은 그런 식이었다. 나는 에밀리처럼 즐기질 못했던 거네? 하핫, 가브리엘처럼 잘생겼었냐고? 그런 사람은 파리에서 못 봤다.


요즘 이런저런 연애 프로그램이 많은데, 내가 거의 걸어 다니는 사연과 썰이 넘쳐나는 연애 프로그램이다. TMI로, 내가 사주팔자에 천주 귀인, 천을귀인 이런, '귀인 사주'가 진짜 많은데, 그래서 그런지 어딜 가든 인복이 많기도 했고,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항상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홍염살, 도화살 다 있어서 그런가? 항상 남자 문제는 팔자가 참 묘했다. 뭐 사실, 남자 문제뿐이랴, 내가 바로 엿장수 이야기꾼이올시다. 에밀리를 보다가, 이 썰을 브런치를 통해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으니, 참 콘텐츠의 힘은 대단하다. 내 썰이 궁금한 사람은, 구독을 눌러주시든지 뭐~ 그러면 내가 좀 더 과감하게 풀어보지~


2018년 5월

성당에 불이 나기 전, 볼 수 있었으니 참 운이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코로나 '때문에' 당황스럽게 어처구니없이 내 Journey를 마무리했어야 해서 억울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래도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었기에, 그래도 그만큼 보고 가고 즐길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된다.  천천히 더 깊게 얘기해보겠지만, 나는 승무원의 ㅅ도 생각해본 적 없는, 기자 꿈나무였다. 운이 좋게 어쩌다 한 번에 합격을 하게 되어서 세계를 누빌 수 있었던 것도, 코로나 전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 승무원이 Dream job이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승무원 학과 진학을 목표로 한 학생들, 승무원 취업을 위해 이미 대학교를 간 학생들, 이제 막 승무원이 된 인턴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코로나 전에 승무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참 기구한 타이밍이었지 않나 싶다. 이런 거 생각하면 참 '나중에 기회 되면 도전해봐야지'라는 건 없는 것이다. 기회는 그때 바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지인들 중에는 (인스타그램으로 내 소식을 확인하는 정도의) 내가 코로나 때문에 승무원을 그만둔 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는 코로나 때문에 승무원의 꿈을 접어야 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그래도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그래도 20대 중후반에 코로나가 없었던 '덕분에', 그만큼 경험했다,라고 나를 위로할 수 있다.


그렇지만 리스본 만 생각하면 죽어도, 죽어도 미련이 남는다. 코로나 터지기 전, 나는 내 의지로 승무원을 그만두고 리스본으로 이직을 했다. 아픔과 슬픔이 있는 건 리스본이다.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돌아갈 생각에, 짐을 다 두고 왔었는데, 결국 돌아가지 못했으니 말이다. 리스본을 떠나기 전 날, 지금은 전 남자 친구가 되어버린 친구에게 '나는 왜 이렇게 이게 너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 같지? 우리가 다시 보기가 어려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라고 말하던 그 순간은, 다시 생각해도 참 슬프다. (리스본 이야기는 다음에ㅡ)


2018년 9월 파리 비행

'Merde', 드라마를 보다가 제일 처음으로 Pick up 한 불어 단어다. 뜻은? 'Shit!', 역시 시간이 지나고도 절대 까먹지 않게 되는 아랍어 단어도 욕인데, 제일 먼저 배운 불어도 욕이었다. 그 외에도 몇 개 더 있긴 하다. 역시 언어를 배울 때 가장 좋은 건, 그 언어를 항상 보고 듣고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학연수를 가는 거고, 그래서 가장 빠른 방법이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것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 물론, 에밀리를 보면서 내가 불어를 배웠다고 할 순 없지만 말이다. 영화 '오징어 게임'에 '시 X'이란 욕 때문에, 이제 외국 가서 이 욕을 쓰면 외국인들이 다 알아듣게 되어서 곤란해졌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참고로 아랍어 욕 중 하나는, '커피'와 발음이 비슷하다. 'Gawha(커피)', 욕은? '까하바'(이런 발음)

2018년 9월 파리 비행

에펠탑은 앞에서 봐도 예쁘지만, 이렇게 노을 지는 몽마르트르에서 봐도 너무 예쁘다. 몽마르트르에서 맥주를 마시며 버스킹을 감상하고, 에펠탑 앞에 앉아 와인을 마셨다. 누군가에게는 버킷리스트일지도 모르는 일들이었을 텐데, 그때는 그만큼 내가 얼마나 좋은 기회를 누리고 있는지 몰랐던 것 같다. 한 번은 에펠탑 앞에서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한국에서 친구들과 족발에 소맥을 마시는 거야'라고 했더니, 친구가 '나는 에펠탑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셔보는 게 꿈이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친구에게 '한국 휴가를 여행처럼 다녀와서 그런지 유럽여행보다 돈을 더 많이 썼다'라고 했더니, 자기는 여행을 별로 하지 않는다고, 그 이유는 사람들은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 자체를 여행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일상을 여행하는 것처럼 살면 굳이 여행을 하지 않아도 에너지 충전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에 나의 여행은 타인의 일상이므로ㅡ...


지금도 나의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꿈일 것이고, 여행일 것이다. 하루 종일 푹 잠만 잔 토요일은, 몇 달 전 내가 간절히 바라던 주말이었고, 한국이 너무 그리워서 눈물이 난다던 소피아가 그토록 원했던 일상일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긍정적으로 합리화가 될 수는 없기에,

에밀리가 쏘아 올린 다사다난했던 해외에서의 삶에 대한 미련과 추억

(Feat 승무원, 마케팅, 어학연수, 국제연애, 그냥 연애, 우울증, 등등,,,)


이 모든 것을 글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Emily is in Paris,

Sophia is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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