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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처음이라

받지 못하는 

"엄마, 000 스카프 내가 사주려고 해요. 한번 골라봐요."


일본으로 여행 간 딸에게서 카0 메시지가 왔다.

결혼한 둘째 딸이  친구들과 짧은 일본 여행을 갔다. 아이 셋과 남편 집에 두고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니, 세 아이들이 잘 있으려나 염려보다 사위가 그걸 허락했다니 좋기도 하고 내심 걱정도 되었다.

나의 고루한 생각에 은근 한숨이 나오지만 오래된 삶에서 체념으로 생긴 것이지 싶다.


아무튼 딸이 권하는 그 물건은 나에겐 고급품이다


조금 있으려니 이번에는 옷 사진을 보내고 골라보라고 한다.

당황스럽다. 느닷없이 선물할 테니 고르라니.

먼저 적지 않은 돈 걱정이 앞선다. 무슨 여유가 있다고 엄마에게 선물을 한다고 하나.

딸 없는 하루, 친정 엄마에게 아이들 학원 이동과 한 끼 밥 부탁한 것이 미안해서 그런가 생각하기엔 좀 큰 액수다.

더구나 딸도 결혼 후 친구들과 만의 첫 해외여행이다. 자기들끼리 시간도 부족할 터인데 친정엄마 선물 사는 데 시간을 그렇게 들인다는 것이 못내 바늘방석이다.


"무슨 그렇게 비싼걸? 그리고 너만 사는 거니? 친구들과의 시간 빼앗는 거 아니니? "

"아냐, 엄마. 얘네들이 먼저 엄마 선물 산다고들 해서 나도 사는 거야."


어머, 그랬구나.

친구들끼리 여행 가서 친정엄마 (그럼 시부모님 것도 살 텐데) 선물 사느라 시간을 쓴다는 것이, 해외여행이 귀한 시절도 아니지만, 대견하기도 찡하기도 하다.


고민이 되었다. 


내가 이 옷을 입을 일이 뭐가 있나. 지네들 이것저것 사고 싶은 거 많을 텐데,  지 식구들 것이나 신경 쓰지, 친정엄마 것까지? 아마 정작 자신의 것은 못 사고 올 테지.


그러면서  손가락은 이미 딸이 보낸 여러 상품 사진을 스크롤하며 고르고 있다. 

"부담될 테니 내가 돈 줄게 이걸로 사와. 고마워, 딸."

"아니에요. 내가 선물할 거예요."

"아냐, 엄마가 줄게."

"아니에요, 엄마."


카0을 닫았다.

마음이 왜 이리 바늘방석이지?




짧은 여행 중 엄마를 생각했다는 것이 고마운 동시에 몹시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옷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가 쓰이는지 익히 알기에.


계속 마음이 편치 않다.


좀 심하다.


왜, 이렇게, 과하게, 미안한 거지?


아, 난 이벤트 같은 선물을 평생 받아본 적이...... 없었구나.


유년기, 청소년기엔 생일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었고(정말? 음, 기억해 보자. 없구나.) 

결혼 후엔?

없다.

생일이 다가오면 말 안 하고 있다가 매년 실망, 절망했다.


어느 날 방송에서 강사가 "왜 말 안 하고 있다고 혼자 상처받고 그러세요? 먼저 말하세요."

딱 내 말이다.

그 후 먼저 옆구리 찔러 말한다.

"여보, 돈으로 줘."

아주 적은 액수를 매년 생일선물로 받고 있다.


해외출장을 수없이 다닌 남편이지만, 내가 부탁한 물건이라도 하나 사 오면 다행인 남편. 

약국 하며 내 생일날 케이크도 사러 나갈 수 없어서(약국 폐문 시간이 저녁 10시 이후, 인터넷 쇼핑이나 택배가 없던 시절) 퇴근길에 하나 사 와 달라고 상품 그림까지 그려서 주었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다음 날 새벽에 귀가한 일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번 딸의 느닷없는 귀한 선물은 나를 돌아본 시간이 되었다.



난 부탁한 선물이나(웬만해서 부탁하지도 않지만) 예측가능한 부담 없는 선물을 받는 일도 드물다.

자식에게도 내가 해줄지언정 받는 것이 영 마음 편치 않고, 누가 밥 한 끼를 사주어도 불편한 마음이다.

딸에게 계속 "아냐, 사 오면 엄마가 돈 줄게." 하는 이 마음은 왜일까?


불편하다.


모임에서 젊은 사람들이 '친정 부모 모시고 해외여행 가려고 돈을 모으고 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부모 식사대접한다.' 소리 들으면 신기했다. 부러웠나 보다. 그런데 막상 난 못 받겠다. 왜?


-과거 유년기 안심하고 의지할 양육자가 없었거나, 기댔을 때 부정적인 경험이 있다.

-과도한 책임감과 자립심으로 선물을 빚으로 생각하는 경향이다. 

-타인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인정이나 애정이 부족하다.

-자신을 돌보는 데 익숙하지 않다.

-받는 것도 사랑이다.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것."
두더지가 대답했어요.

"네가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소년이 물었어요.
"'도와줘'라는 말." 말이 대답했습니다.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중




딸이 선물 사 오면 "정말 고마워." 하고 기쁘게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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