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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 Apr 21. 2022

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 68

3. 1차 대전의 뫼즈강

비스마르크의 실각 

  

베르뎅 전투를 이해하려면 몸통인 1차 대전의 발발 원인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1차 대전(1914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은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의 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제국의 동맹국이 싸움을 벌인 첫 번째 세계 대전이다. 


당초엔 세계대전으로 불렸으나 2차 대전(1939년 9월 1일-1945년 9월 2일)과 구분하기 위해 1차라는 명칭이 지어졌다. 전쟁 종료 후 4개 제국(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오스만)이 해체됐고 UN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만들어졌다.


1차 대전의 원인을 알아보려면 유럽 근대사를 통으로 헤집어야 한다. 이는 아마존 강의 시원을 찾는 일 만큼이나 거대한 탐험이다. 그 험난한 과정을 생략하더라도 최소한 독일 통일을 이룬 비스마르크부터 시작해야 한다. 


독일은 19세기까지 수 십 개의 작은 공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분리되어서는 큰 힘을 쓸 수 없다.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산업혁명과 식민지 확보경쟁에도 뒤질 수밖에 없었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통상 보불전쟁·1870-1871년)을 승리로 이끌며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어렵게 통일을 이루었으나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 러시아 두 강대국 사이에 끼인 독일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가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서부(프랑스)와 동부(러시아) 두 곳에서 동시에 전쟁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독일에게는 두 개의 전선을 한꺼번에 감당할 힘이 없었다. 일 대 일이면 누구라도 자신 있었다. 그러니 최소한 둘 중 한 나라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비스마르크의 우려는 1,2차 대전을 통해 현실로 드러났다. 결국 두 개의 전선이 형성돼 그의 염려는 악몽으로 바뀌었다. 


독일은 늘 영국을 라이벌로 여겼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오랜 기간 패권국으로 군림한 나라다. 해외에 많은 식민지를 둔 영국은 되도록 유럽 내부의 일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 섬나라여서 다른 나라와 국경을 맞대지 않은 영국은 ‘나 혼자 잘살면 그만’이라며 그들만의 고고함을 누렸다. 


왕정이 없어진 프랑스를 제외하면 유럽 대부분의 나라와 영국은 이래저래 왕실끼리 혈연으로 얽혀있었다. 그러니 더욱 그들 사이의 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영국은 유럽 여러 나라를 상대로 ‘영예로운 고립’을 선택했다. 그 편이 훨씬 실속 있었다. 2020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단행한 영국의 심리적 배경과도 연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비스마르크는 외교전문가답게 동서고금의 가장 유력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 이른바 ‘원교근공(遠交近攻)’이었다. 멀리 있는 나라(러시아)와는 동맹을 맺고 눈앞의 프랑스는 힘으로 몰아 붙였다. 비스마르크 외교의 최종 목표는 프랑스의 고립이었다. 


독일은 나폴레옹 프랑스에게 호되게 당했다. 비록 프랑스와의 보불전쟁에서 되갚아 주긴 했지만 프랑스 육군은 여전히 유럽 최강으로 평가 받고 있었다. 러시아는 땅만 넓었지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비스마르크는 줄타기 외교를 벌여 통일 독일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변덕스런 빌헬름 2세가 황제로 등극하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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