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차 대전의 뫼즈강
독일의 오판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1337-1453년)’을 치른 사이다.
오래도록 영국의 최대 라이벌은 프랑스였다. 영국은 나폴레옹 시절 대륙봉쇄로 곤욕을 치렀다. 바다에서 영국을 이길 수 없었던 나폴레옹은 유럽과 영국의 무역을 차단했지만 끝내 성공하진 못했다.
20세기 들어 영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프랑스에서 독일로 바뀌었다. 독일은 유럽 본토에서 벌어진 전쟁에 ‘영예로운 고립’을 택해 온 영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독일군 사령부의 뼈아픈 오판이었다.
독일이 중립국 벨기에를 공격하자 영국은 즉각 참전을 선언했다. 개전 초만 해도 독일군의 기세는 사나웠다. 벨기에를 통과해 프랑스 북부 국경을 유린하며 파리를 향해 내달렸다.
그러나 파리 근처 마른에서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다. 다시 벨기에 국경 쪽으로 밀려난 독일군은 이프르에서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프르 전투’는 참호전이라는 고통스럽고 긴 전쟁의 서막이었다.
1차 대전은 많은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원병들이었다. 그들은 전쟁을 낭만으로 해석했고, 조국의 부름이라는 미명 아래 앞 다투어 대열에 합류했다. 전쟁에 나가지 않으면 겁쟁이로 손가락질 받았다. 이프로 전투에도 어린 독일 학도병들이 많이 희생됐다.
한 달 동안의 이프르 전투에서 독일은 13만 명의 젊은이를 잃었다. 독일은 앞선 전력에도 불구하고 참호를 파고 맞선 연합군에 승기를 잡지 못했다. 이프르 전투는 세계전쟁사에서 참호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일깨워주었다.
독일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1차 대전에 참전한 독일 젊은이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영화로도 유명해진 작품이다. 원래 제목은 ‘너무나 고요한 서부전선(All quite on West Front)’이나 번역자가 좀 더 타이트한 카피를 뽑아냈다.
서부전선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속출하자 각국의 군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민족주의 광풍에 휘말린 독일의 대학 강의실에선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참전을 부추겼다. 이에 고무된 학생들은 마치 소풍가는 기분으로 전쟁터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전쟁의 현실은 그들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전우들은 매일매일 죽어갔고,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건 적군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이었던 주인공 폴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나는 왜 이 지옥에 왔나.
이 전쟁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의 친구 프란츠는 부상을 당해 다리를 절단했다. 그러고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는 군의관을 붙잡고 통사정했다.
“내 친구는 이제 겨우 19살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군의관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죽어가는 환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프란츠는 죽었다.
폴은 휴가를 나와 모처럼 대학을 방문했다. 교수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참전하라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교수는 강의실에 온 폴에게 전쟁에서의 영웅적 스토리를 들려주라고 말했다.
“우리는 참호 안에 웅크리고 앉아 오직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릴 뿐이야. 죽은 병사들이 너무 많아.”
교수와 학생들은 실망스런 표정이었다. 그들은 참전용사에게 좀 더 멋진 얘기를 듣고 싶어 했다. 십자군 전쟁에 나오는 용이 불을 뿜는 영웅담 같은.
“다른 얘기는 없는가?”
교수가 폴을 채근했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배운 게 하나 있긴 하죠. 나라를 위해 죽는 것 보다 살아남는 게 훨씬 낫다는 사실을 요.”
“겁쟁이!”
학생 하나가 소리쳤다. 그러자 폴이 말했다.
“전쟁터에선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다예요. 언제까지 저들을 속이지 마세요.”
그가 교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1914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양군은 하루 동안 휴전을 했다. 서로의 참호를 오가며 술과 음식을 주고받았다. 독일과 영국 병사들은 축구 경기를 벌였다. 독일이 3-2로 이겼다.
여담이지만 독일과 영국의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2021년 말 현재 모두 33번 맞붙어 독일이 15승 4무 14패로 앞서있다. 이 둘의 A 매치는 한일전 못지않게 박 터진다. 가장 유명한 1966년 영국 월드컵 결승서는 영국이 독일(당시 서독)을 4-2로 물리쳤다.
전쟁은 교착상태로 접어들었다. 양측 모두 상황을 타개할 전환점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