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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데이트]혼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마법作가 Wizard Writer

by 뉴아티

아티스트 데이트는 자기 자신, 혹은 내면의 아티스트와 독대하는 시간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나는 따로 시간을 내도 되지 않을 만큼 나와의 시간이 충분하다. 그럼에도 나에게 아티스트 데이트가 필요한 이유는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빈둥거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나는 늘 일정이 가득하다. 그것도 생산적인 활동으로. 그래서 창조성을 회복하기 위해 빈둥거리고 노는 것이 중요한 아티스트 데이트가 오히려 숙제로 다가왔다. 매주 한 시간 일정을 잡아 두고 이번 주는 또 뭘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한 끝에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편집숍에 가는 것이다. 한 번은 폴리네시아권에 살고 있는 친척과 인맥을 통해 공수한 로컬 공예품을 모아둔 편집숍을 들렀다. 나무껍질을 짓이겨 패브릭처럼 만든 전통 머리띠는 상아색과 갈색이 섞인 호피 무늬를 띠고 있는데 묘하게 내게 어울렸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중에 주인장이 똑같은 말로 나를 부추겼다. '이건 운명이야!' 기꺼이 값을 치르고 샀다.

얼마 못 가 나무껍질 머리띠는 늘어나고 말았지만 머리띠의 임무는 다른 데 있었던 모양이다. 『아티스트 웨이』 책에서는 꿈을 수집하는 스크랩북을 만들라는 숙제를 제안하지만 하와이에 있는 동안 짐을 늘리지 않으려고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이 머리띠를 산 후 마음이 바뀌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당장 반스 앤 노블로 달려가 스크랩에 적당한 공책을 고르는 그 시간이 어찌나 즐겁던지!


아티스트 데이트는 어른판 문구점 나들이

내가 왜 이렇게 어딘가에 가서 물건 고르기를 기뻐하는지 생각해 봤다. 그것은 아마도 유년 시절 추억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와 집이 거의 전부이던 세상에서 수업을 마치고 학교 앞 문구점에서 보물 찾듯 물건을 사던 경험. 좀 더 자라서는 친구와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더 큰 팬시점에 가서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을 고르던 기억. 어른이 된 나에게는 편집숍에 가는 것이 바로 그런 나들이인 것이다.


나를 발견하고 돌보는 시간

하와이에서 나의 아티스트 데이트는 미술관, 바디보딩, 영화감상, 서점 나들이, 마트 나들이 등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혼자 했고 살 것이 딱히 없지만 그냥 둘러봤다. 혼자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맞춰줄 필요 없이 자신의 취향과 생각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미술관에서는 특정 그림 앞에서만 오랜 시간을 보냈다. 바다에서 바디보드를 타면서 두려움에 대처하는 자세와 인생에 대한 적용을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는 영화 감상보다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꾸게 됐다. 서점과 마트에서도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게 됐다.


혼자가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의 아티스트 데이트는 영화관, 미술관, 공연장 등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전에도 마음 맞는 사람이 생각나면 모를까 굳이 약속을 만들어 누군가와 함께 가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제는 혼자만의 데이트, 아니 나와의 데이트 시간을 방해받기 싫어졌다. 혼자 가지만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 영화관, 미술관, 공연장에서 영감을 얻고, 그렇게 다닌 리뷰를 남기며 영화감독과 작가로서 길을 한 걸음씩 준비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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