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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Mar 08. 2022

연애하려고 스윙댄스 시작한 거 아닌데요

내가 좋다는데 어쩌겠어요


 별로 친하지 않은 남자 후배가 있다. 내가 왜 그 아이의 결혼식에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러나 결혼식에 갔다는 사실은 기억하는 그런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날씨나 내가 입었던 옷, 장소 등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스윙댄스 동호회를 시작한 첫 날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강남’이라는 보편적인 결혼식에서 건대 스윙댄스 동호회로 확장되는 기억은 유난히 생생하다.

 파트너 댄스라는 것이 완전히 생소한 취미는 아니었다. 4학년 때 교양수업으로 스포츠 댄스를 들으면서 왈츠와 탱고에 흠뻑 빠졌고, 즐기는 나의 모습을 보고 교수님이 졸업공연 참가자로 발탁하면서 조금 더 추억이 덧대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연은 하지 못했다. 취업이 빠르게 확정되면서 졸업도 하기 전에 신입사원 연수를 가게 되었고, 하필 돌아오는 날이 공연날과 겹치면서 내 자리를 다른 친구에게 양보하게 되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당시 파트너가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함께 연습했던 겨울날들이 제법 재미있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겼던 하얀 함박눈 위 발자국 같은 것들로 그 겨울을 기억한다. 그 기억 덕분에 춤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은 항상 마음속에 잔존하고 있었고, 3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주말이 심심해졌을 무렵 스윙댄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성인 동호회라는 특성에, 짝지어 춤을 추는 스윙댄스의 특이성이 맞물려 쉬이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춤은 역시나 너무 재밌었고, 연애와 결혼에 목적을 둔 사람들은 동물의 왕국 부럽지 않은 생태계를 구현해냈다. 성인 여성과 남성이 모이는 모임은 필연적으로 연애사건을 야기시킨다지만 이렇게 노골적이라고? 공대를 나오고 남초회사를 다니면서 남성의 여러 특성들을 목격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성이 적정비율을 차지할 때의 행동 케이스가 달라진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집이 같은 방향이 아님에도 우리 집에 가는 택시를 같이 타자고 한다던가(씹고 집에 갔더니 전화로 지ㄹ을 한다거나), 한 번에 여러명의 여자에게 애정을 표현하며 간을 본다던가, 수업은 듣지 않고 뒷풀이만 하러 온다던가 하는 연애목적남들을 보고 있으면 빨간 깃발을 향해 달려가는 황소가 생각났다. 빨간 깃발을 쫓는 건 너의 본능인가 학습인가, 너의 본능이라면 그것은 정말 네 스스로 원하는 것인가 원한다고 착각하는 것인가, 너는 왜 그것을 원하는 것인가. ‘ㅈ의 숙주’라는 노골적인 딱지를 붙이기 전에, 미워하지 않으려고 이해의 제스쳐를 건네 보았다. 결국 실패하고야 말았지만.


 뒷풀이를 위해 동호회를 하는 대다수의 남자와 일부 여자들 속에서, 춤에 온전히 흥미를 둔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까? 심지어 스윙댄스는 흥미가 있는 사람은 일주일 내내 춤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삼삼오오 모여 춤의 세계로 떠나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이었다.


여기서 잠깐!

 이해를 돕기 위해 뒤늦게 스윙댄스 생태계(?)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스윙댄스는 동호회를 기반으로 ‘강습’과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는 ‘소셜타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초급자들은 입문 강습 (지터벅이라는 춤을 먼저 배운다)을 통해 시작을 하게 되며, 여기에서 ‘기수’를 부여받으며 ‘동기’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 대학교가 입학시기에 따라 동기가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스윙댄스에도 ‘졸업 공연’이라는 것이 있는데, 동기들끼리 짝지어 곡과 안무를 정하고 연습을 하면서 돈독히 정을 쌓는 것(사람에 따라 연애사업을 성사시키는 것)이 주목적이다. 단계별 강습을 계속 수강할 수 있는데, 연애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동호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졸업공연을 기점으로 거의 다 떨어져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춤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계속 수업을 수강하게 되며, 타 동호회의 특강을 들으며 영역을 넓히게 된다.
 앞서 말했던 ‘소셜타임’이 사실 스윙댄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필드에 나가는 것,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이 야외코트에 나가 사람들과 경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소셜타임’은 입장료만 내면 동호회 회원/비회원 상관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데, 보통 7시부터 문닫을때까지 춤을 출 수 있다. 무작위로 아무나와 파트너를 맺어 즉흥적으로 춤을 추게 되는데, 스윙댄스에서 제일 재밌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타 동호회의 소셜타임에 가는 것을 ‘출빠’라고 표현하며, 여기에 맛들리기 시작하면 진정한 춤의 세계로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월플라워라는 단어가 왜 나왔는지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초보인 나에게 춤을 권하는 사람은 잘 없었고, 동호회의 낯익은 사람들의 호의로 대부분의 춤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같이 배우기 시작한 언니 동생들과 다른 동호회에 놀러가게 되었고, 내가 먼저 춤을 추자고 권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제안을 거절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매너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신나게 춤을 추고 나면 땀이 쫙 빠져서 운동효과가 어마어마했다. 성인 이후 최저 몸무게를 그 때 찍었다. 일주일에 세번은 기본으로 춤을 추러 다녔다. 회사에 매일 댄스화를 챙겨 출근했고, 11시 넘어서 집에 오는 열정의 나날들이었다.

 출빠가 너무 즐거워 많은 사람들에게 영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나보다 늦게 춤을 배우기 시작한 동호회 동생을 알게 되었고, 출빠를 가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데리고 갔고, 출빠를 다녀온 다음날 계속 카톡을 하다가 밤새 통화를 하게 되었고, 같이 벚꽃을 보러가고 사귀게 되었다. 2015년에 만난, 지금의 남자친구다.

 

 그렇게 좋아하던 스윙댄스를 그만두게 된 원인은 코로나도, 연애도 아니었다. 남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하고도 언니동생들과 신나게 춤을 추러 다녔는데, 앞서 서술했던 이성에 미친 지저분한 사람들과 너무나 맞지 않는 동호회 사람 몇 때문에 춤에 정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맞지 않는 사람들을 잃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으니 이득이긴 한데, 평생 취미일 수 있었던 춤을 멀리하게 된 점이 너무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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