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Jul 22. 2022

요가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

요가하고 햄스트링 다친 썰 풉니다

 운동이 취미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피구공에 맞아 다친 손목, 목에서 피 맛이 나는 오래달리기, 뜀틀을 넘다가 발로 차버린 선생님의 정강이 같은 것들로 점철된 학창 시절의 기억들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점수로 측정되는 학교에서, 못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일개 청소년이 갖기 어려운 감정이 아닐까. 썩 아름답지 못한 경험들을 뒤로 하고 취미로 운동을 즐기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생활이 가져다 준 반작용이었다.


 시작은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생존 목적이었다. 목디스크 초기증상에서 어지러움증을 동반한 이석증까지 겪으면서, 시간 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회사에 저당 잡힐수는 없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즐거웠다. 평가를 전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땀 흘리며 움직이는 행위는 꽤나 재밌었고, 깨끗하게 비워지는 머리라는 예상치 못한 덤을 얻었다. 실패한 운동들로 가득찬 학창시절의 체육시간 때문에 '나는 운동신경이 없다'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저 맞는 운동을 찾지 못했을 뿐이었던 것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가 내게 끼친 몇 안되는 좋은 영향이었다.


 덕분에 재미있어 보이는 종목을 하나하나 격파해나갔고, 몸 쓰는데도 취향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헬스보다는 달리기, 필라테스보다는 발레, 골프보다는 테니스가 취향이었다. 리듬감이 있는 운동이, 운동보다는 춤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들이 더욱 즐거웠다.

 



 그렇게 찾은 '테니스-발레-달리기'의 루틴을 매주 돌던 와중에 요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순전히 즉흥적인 이유였다. 평소 요가에 관심이 있기는 했다. '수련'이라는 명칭에서 오는 '심신수양'의 이미지 덕분에 명상과 더불어 마음챙김에 도움이 될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새로운 운동을 한다면 요가를 해보리라 다짐했다. 그렇지만 당장 5월에 시작할 계획은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상담을 받고 등록하게 된 것은 다 회사 때문이다. 4월 30일자로 재택근무가 끝난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5월부터 몸과 정신에 좋지 않은 출근을 5일 내내 해야하다는 슬픔에 마지막 재택근무날 점심을 제끼고 충동적으로 집 근처 요가원으로 향했다.


 요가원을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3곳의 요가원이 있었는데 한 곳은 필라테스를 병행하는 곳이라 패스(필라테스 강사는 전문가가 드물다는 편견이 조금 있다), 다른 한 곳은 요즘 유행하는 러닝크루(같이 모여 달리기를 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처럼 요가크루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패스했다. 운동처럼 자신의 템포를 찾아야하는, 그리고 언제 그만두고 싶을지 모르는 종목에는 익명의 탈을 쓰고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백화점 문화센터 같은 장소가 딱이었다. 그리하여 4월의 마지막 금요일 점심, 내 요건에 부합하는 서촌의 한 요가원으로 향했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최신식 엘레베이터에 인상이 꽤 괜찮았다. 내가 운동을 하러오긴 했는데, 요가를 하러 왔지 계단을 오르려고 온 것은 아니니까, 칼로리 소모는 돈 내고 하고 싶으니까. 친절한 상담까지 받으니 등록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져 가장 궁금했던 금액을 문의했는데 이 요가원은 꽤나 특이한 요금구조를 갖고 있었다. 주 2회에 15만원이나 3회엔 16만원, 4회엔 17만원인 것이다. 거기에 3개월을 등록하면 20%를 할인해주었다. 요가를 하면 사람의 마음도 꿰뚫어보게 되는걸까? 일주일에 두 번 정도가 딱 좋겠다고 마음 먹고 온 나같은 사람을 흔드는 요금 구조였다. 그래서 결국 계획과 다르게 주 3회를 결제하고야 말았다. 아니, 만원밖에 차이가 안나는데 한 주만 주3회를 나가도 이득이 아닐까? 그래도 나한테 맞는 수업인지는 들어봐야 안다고 한 달만 결제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첫 수업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난이도는 평이했으나 사람이 예상보다 많아서 내가 상상했던 정적인 요가원의 느낌이 아니었고, 그래서 선생님이 초보자인 나의 자세를 봐줄 틈이 없었다. 얼추 비슷하게 따라하는 것에는 재능이 있으나 제대로 하는 것엔 자신이 없는데, 이럴 바엔 문화센터에서 싸게 수업 듣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번째 수업에서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역시 요가를 하면 남의 마음을 잘 살피게 되는 것 같다) 세심하게 나의 자세를 교정해주었고, 수업 전후로 세심하게 말을 건네주는 센스에 마음이 조금씩 녹았다. 그래서 두번째 수업만에 자세가 제법 잘 되는 느낌을 받고, 역시 요가는 나의 인생 운동이었다며 신이 나서 평일 수업의 1.5배 수준인 토요일 아침 아쉬탕가를 갔고 단기간에 무리를 해서 햄스트링을 다치고야 말았다. 심지어 근육통은 운동하면 낫는다는 생각에 그 날 오후에 테니스도 쳤다. 그러니 돌이켜보면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절뚝거리며 걷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역시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길일지도.


 다행히 하루 물리치료를 받고 매일 밤 폴롤러로 문질러준 덕분에 목요일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요가원 수업 중에 가장 궁금했던 명상 클래스도 듣고, 요가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호흡 클래스도 들었다. 4주 중에 3주는 주3회를 채워 들었으니 출석율도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을까.


 이제 곧 재등록을 해야하는데 좀 고민이 된다. 땀은 정말 많이 흘렸는데 기대했던 심신수양은 글쎄, 잘 모르겠다. 사바사나(제일 마지막에 하는 누워서 눈감고 가만히 있는 동작)를 할 때면 자꾸만 회사 생각, 배고픈 위장, 치우지 못한 집 구석, 해야할 일들에 대한 생각이 둥둥 떠오른다. 역시 마음의 평화를 외부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은 헛된 노력일까, 다시 태어나는 것만이 답일까. 잘 모르겠으니 3개월 더 들어볼까? 근데 주 3회는 좀 아닌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갑자기 요가 시작한 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