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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환 Andy Jul 12. 2022

요즘 난리난 벨리곰과 '오징어 게임'의 공통점

'낯설게 하기' 현대미술이 통했나... 관람객 200만 넘은 SNS 명소

▲ 잠실에 나타난 어메이징 벨리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려는 줄이다. 



요즘 잠실에 거대한 핑크 곰이 나타나서 화제다. 잠실역 1번 출구로 나와서 롯데월드타워 뒤로 돌아 쭉 걸어가면 멀리서 거대한 분홍색 곰이 보인다. 아파트 4층 높이라니 그 크기가 엄청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롯데는 2014년 1톤이 넘는 고무 오리 '러버덕'을 석촌호수에 띄워 73만 명의 관람객이 몰리는 인증샷 대란을 일으킨 바 있고, 2016년 '슈퍼문'은 106만 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핑크 곰은 앞선 사례를 훨씬 뛰어넘는 인기로 200만 명의 관람객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NS 인증샷 명소라고 하는데 직접 와서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이 어메이징한 핑크 곰의 정식 이름은 벨리곰이다. 벨리곰은 2018년 롯데 홈쇼핑이 자체적으로 만든 캐릭터로 그간 꾸준한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높여왔다. 그러다가 캐릭터를 만든 직원이 러버덕, 슈퍼문 전시를 떠올리고 벨리곰도 그렇게 전시를 하면 좋겠다고 대표에게 건의를 했고, 마침 롯데월드타워 오픈 5주년 행사와 일정이 맞아 진행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머니투데이 기사, '벨리곰' 만든 이 사람…"2년차 신입사원 믿고 맡겨준 '러버덕 대표' 덕" 참고).

벨리곰은 원래 17일까지 전시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24일까지 연장해 전시를 한다. 롯데월드타워 전시를 마치면 5월에는 경기도 의왕 롯데 프리미엄아울렛 타임빌라스 등 전국을 돌면서 전시를 이어간다고 한다.

현대미술의 중요한 포인트, 낯설게 하기

벨리곰의 인기를 보면, 현대미술의 기본 전략인 '낯설게 하기'에 충실한 전시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도 진부한 것, 익숙한 것은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 현대미술의 중요한 포인트다.

낯설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보통 '위치 옮기기'와 '확대하기'가 있다. 어떤 사물을 상상밖의 위치로 옮기면 낯설게 느껴진다. 작은 것을 사용 용도와 상관없이 확대하면 낯선 느낌을 갖게 된다. <오징어 게임>의 4m짜리 영희 인형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런 전략을 가장 잘 사용한 이로는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1929년생으로 스웨덴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아직 생존해 계시다. 그는 립스틱, 빨래집게, 톱, 스푼 등 우리 주변 사물들을 크게 확대한 조각으로 대단한 화제와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작품이 있는데 청계천에 있는 스프링은 그와 그의 아내 쿠제 반 브르겐의 공동 작품이다. 그 작품은 처음 설치될 때 논란도 많았지만 나는 그 작품을 좋아한다.

여기까지 봐도 벨리곰과 올덴버그는 일맥상통하는 것 같은데 또 하나의 접점이 있다. 올덴버그는 1960년대에 그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부드러운 조각품'(soft sculpture)을 제작했다. 그는 <부드러운 타자기> <부드러운 화장실> <부드러운 욕조> 등 작품을 선보였는데, 원래 딱딱한 물건을 부드러운 천이나 비닐로 만들었다.

벨리곰도 인형을 만드는 천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놀랐다. 나는 튜브 같은 비닐로 만들어진 조각은 많이 보았으나 천으로 이렇게 거대한 작품을 만든 것은 처음 본다. 야외에서 이런 천으로 된 거대 인형을 보다니 낯설다.

만약 벨리곰이 아니었다면

올덴버그의 작품을 보면, 나도 저 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은 본인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작소에서 만드는 것이다. 그는 개념만 제시하면 된다.

누구나 5센티미터 정도 되는 빨래집게를 주머니에 넣고 공장에 가서 '이것을 100배로 키워서 스테인리스로 만들어 주세요' 하고 비용을 지불하면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롯데의 그 직원도 마찬가지. 생각하고 그걸 현실화 했다.

게다가 이 거대한 인형은 관리도 쉽지 않아 보인다. 13일, 내가 갔을 때 간밤에 비가 와서 인형은 젖어 있었다. 인형 뒤에는 컴프레서로 계속 공기를 집어넣고 있었다. 롯데 같은 대기업이 아니면 하기 힘든 전시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겠지만.

비가 오락가락해서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가 좋지 않다. 어메이징 벨리곰처럼 확대된 사물을 그릴 때는 주의할 것이 있는데, 크기를 나타낼 수 있도록 옆에 비교할 만한 물건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곰인형만 덩그랗게 그리면 침실에 있는 30cm짜리 곰인지 15m짜리 곰인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서 곰인형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커플과 사진 찍으려고 기다리는 줄을 그렸다. 좋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에 핑크 벨리곰이 아니라 다른 것을 확대해서 저기다 갖다 놓으면 인기를 끌었을까? 아니었을까? 웬만한 걸 갖다 놔도 인기를 끌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하긴 귀여운 벨리곰만큼은 아니었겠지만.
             


▲ SNS 성지로 떠오른 거대한 핑크 곰. 


202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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