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안양암을 그리다
▲ 안양암 절이 민가를 업고 있는 듯해서 인상적이었다. ⓒ 오창환
매달 세번째 토요일은 어반스케쳐스 서울 정기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번 모임은 좀 특별한데 창신동 채석장 전망대 부근에서 스케치를 하고 그날 그린 그림을 7월 15일까지 카페 낙타에서 전시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코로나도 끝나가고 계절도 좋고 해서 사전 예약이 무려 100명을 넘었다. 초등학생이 소풍 가기 전날 들뜬 마음으로 잠을 못 이루듯이 나도 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 카톡을 보니 오전 7시에 벌써 창신동에 도착한 스케쳐도 있다. 나도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지난번에는 창신역에서 내려 고갯길을 걸어 올라갔지만 이번에는 동묘역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채석장 전망대에 도착했다. 벌써 많은 스케쳐들이 와있다.
안양암에서 스케치!
▲ 안양암 왼쪽에 보이는 바위가 두꺼비바위고 바위에 붙은 전각안에 돌에 새겨진 부처님이 계시다.
전망대 근처는 몇 번 그려 봤기 때문에 오늘 내가 그리려는 곳은 안양암이다. 안양(安養)은 불교 용어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몸을 쉬게 한다는 뜻, 즉 극락에 가기 위해 사람들이 거쳐야 하는 곳이다. 참고로 경기도 안양시도 같은 뜻에서 유래했다.
안양암은 1889년 성월 대사가 창건했으며 한국불교미술관의 별관으로 석감마애관음보살상, 대웅전 아미타후불도, 아미타괘불, 지장시왕괘불 등 유형문화재와 문화재 자료 18건 등 1560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사찰 전체가 문화재다. 화재로 소실된 건물 복원사업을 올해부터 시작한다.
카페 낙타에서 그림 그릴 종이를 받아 들고 가파른 길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 요소요소마다 스케쳐들이 진을 치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골목골목을 찾아찾아 안양암에 도착하니 7시에 먼저 오신 스케쳐가 그림을 마치고 일어서고 있다.
나도 그림을 그리려는데 안양암 이사장님이 나오셔서 차를 대접해주시고 절의 유래에 대해 들려주셨고 평소 개방하지 않는 명부전 내부도 보여주셨다. 명부전 안에는 작은 도자기로 제작된 1500여 분의 불상이 있는데 모두 조선 왕가의 보물을 안에 넣고 봉인해 두었다고 한다.
명부전 안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작은 위패도 있는데 십자가 그림이 그려진 위패가 있어서 이사장님께 여쭤보니 이 절은 원래 민간신앙 기도처에서 유래되어서 다른 종교의 위패도 모신다고 한다.
안양암에 들어오면 왼쪽에 보이는 큰 바위가 두꺼비 바위다. 이 바위는 돌이 많은 낙산에서도 유독 영험스러운 기운이 있어서 예로부터 민간에서 기도처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1899년 그곳에 절이 창건되었고 명성황후의 기도처가 되면서 절이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 창신초등학교와 주변 일대가 안양암 소유였다고 하며 황실의 보물을 이곳에 보관했다고 한다.
이사장님의 설명을 듣고 다시 절을 돌아봤다 대웅전과 산신각에 해당하는 금륜전도 보고 절 뒤쪽의 두꺼비 바위 머리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 자연 동굴에도 들어가 봤다.
그래도 안양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1909년 만들어진 돌부처상이 있는 관음전이다. 이 부처님은 현대적인 이목구비에 잘생긴 얼굴, 게다가 멋진 수염까지 기르고 계시다. 영험한 두껍바위에 새겨진 불상이라 인기가 많으실 것 같다.
사람들과 함께 그려서 멋진 그림
▲ 작품 전시를 하고 있는 스케쳐들. 보는 사람도 즐겁다. ⓒ 리피디 이승익
절 내부가 공사 중이라 파헤쳐 놓은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한참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보살 한 분이 오셔서 점심 공양을 하라고 하신다. 보살이란 여성 불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스케치는 잠시 접고 다른 보살님들과 함께 점심 공양을 했다. 비빔밥에 찬으로 전을 주셨는데 맛있게 먹었다. 내 앞으로 나이가 아주 많으신 보살 한 분이 앉으셨다.
"보살님, 여기 두꺼비 바위가 있어 사람들이 기도처로 좋아할 것 같은데 어떤 기도가 잘 먹혀요?"
"응, 내가 아는 분이 딸을 여의지 못해 걱정이 많았는데 여기서 기도를 하고 박씨를 만난다는 소리를 듣고는 바로 딸이 박 씨랑 결혼했어."
딸을 시집보내는 기도가 잘 먹힌다고 하니 나도 구미가 당긴다. 그런데 그 보살님이 옆에서 공양하고 있는 상대적으로 젊은 보살님들 몇 분에게 농을 던진다.
아니 이 보살님들은 기도할 때는 안보이더니 공양할 때 되니까 나타나시네.
그때 주지 스님이 나타나서 한 마디 하신다.
"이분들 아침에 나랑 108배하고 요 앞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 지금 공양하러 오신 거예요."
부처는 어디에나 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안양암을 그렸다. 보통 절은 산의 정상 부근에 있으면서 아래로 민가를 내려보고 있는데 안양암은 반대로 산꼭대기에는 민가가 있고 절이 그 아래 있다. 절이 민가를 업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라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웠다.
내 그림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말씀을 나누던 주지스님과 이사장님도 외출을 하셨고 보살님들도 퇴근을 하셨다. 나 혼자서 주인 없는 절에 남아 스케치를 마쳤다.
스케치를 마치고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는 마치 창신동에 스케쳐들을 흩뿌려 놓은 것 같다. 올라가는 골목마다 스케쳐들을 만났다. 여러 번 만난 스케쳐는 여러 번 만나서 반갑고, 처음 본 스케쳐는 처음 봐서 좋다.
카페 낙타 옥상에 올라가서 아래 전경을 색연필로 그렸다. 그런데 아뿔싸 옆사람들과 웃고 떠들다가 초록색 색연필을 아래도 떨어뜨리고 말았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오늘 그림은 한 장만 내야겠다.
그림을 마치고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카페 낙타에 올라가서 각자 자기 그림을 전시하는 이벤트를 했다. 작은 카페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자신의 그림을 디스플레이하고 다른 사람의 그림도 감상하느라고 야단법석이다.
같은 광경을 보고 그려도 그림은 다 다르다. 그래서 그림이 좋다. 간단치 않은 이벤트를 준비한 운영진도 대단하다. 디자인도 훌륭하고 진행도 잘 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사에 참여한 모두가 행복해한다. 전시장에 방명록이 있어서 이렇게 썼다.
"We Draw Together! 함께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채석장전망대, #어반스케쳐스서울, #빅스케치, #카페낙타
2022.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