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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Apr 26. 2024

강연 듣는 공무원 특

앞 줄은 비우고 질문은 절대 하지 않는다. 쉬는 시간은 지켜야.

책을 출간하고 강연 기회를 가지고 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다. 강연에 대한 감(感)을 유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횟수다. 지금은 강연료를 받지 않고 수강생만 있으면 어디든지 가서 강연하고 있다. 퇴직 후에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일반인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은 다른 점이 있다. 혹시 브런치 작가 중에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하게 되면 내가 하는 이야기를 참고하시면 좋겠다.


앞 좌석은 비워둔다


강연을 듣는 공무원은 일반적으로 앞 좌석을 비워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무원은 강연을 듣는 중에 질문받기를 꺼려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자발적으로 강연을 듣는 것보다는 공문이나 지시에 의해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간만 보내고 가야겠다는 인식이 있다. 


강연자에게 앞 좌석에 앉은 수강생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쉽게 눈을 맞추고 반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강연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강사는 한눈에 강의실의 집중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하품을 하거나, 졸거나, 고개를 떨구고 뭔가를 끄적이거나, 지루함을 나타내는 수강자의 표정을 보게 되면, 강의자의 의욕은 꺾이기 마련이다.


이때 앞 쪽에 앉은 수강생이 고개를 끄덕여 주거나, 질문에 답을 해주면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다. 앞 좌석의 호응은 금방 강의실 전체로 전염된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초반에 형성되면 집중력은 높아지고, 강사는 자신의 역량 이상을 뿜어낼 수 있다.


이렇게 해보시라.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가면 참석 예상자 수와 좌석수를 먼저 계산한다. 노쇼를 감안하고 자리가 남겠다고 생각되면 스텝에게 부탁하자. 참석자가 앞 좌석부터 앉도록 안내 좀 해주세요,라고. 


질문은 하지 않는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끝내고 '질문하세요' 하고 말을 던져놓게 되면 머쓱해지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강사의 마지막 멘트가 끝나면 강연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질문하면 다른 직원의 휴식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고 공무원은 생각한다. 특히 점심시간 전 강연의 경우는 전체 수강생의 원성을 들을 수도 있다. 


대처 방안은 간단하다. 첫 번째, 끝나기로 예정한 시간에 마무리 멘트를 하고 질문은 개별적으로 받겠다고 하면 된다. 대부분의 경우, 그대로 강의실을 나선다. 


두 번째, 다른 강의에서 질문했던 내용을 정리해 두자. 일반적인 질문 내용을 한 두 가지 준비해서 강연 중에 이야기하면 강연자와 수강자 모두 만족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초보자가 읽기에 좋은 책을 권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강의 내용 중에 미리 들려준다. 책 말미에 수록된 추천도서를 참고하시라고 한다. 어느 댓글에 '이 책은 추천도서 목록만 봐도 책 값은 한다.'라는 문구도 들려준다. 


'좋은 책 몇 권을 내용과 함께 추천 사유를 설명해 준다. <에디톨로지>, <제텔카스텐>, <깊이에의 강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프레임>, <월든>, <인간 불평등 기원론> 등이다.


쉬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지킨다


두 시간 또는 세 시간 강의가 있는 경우, 강사가 하는 실수가 있다. 언제 쉬는 게 좋을 까요, 하고 수강자에게 친절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수강생은 쉬는 시간을 많이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누군가 10분 이상 쉬는 시간을 요구하면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수강생에게 물어보지 않는 게 좋다. 


주최 측에서 미리 정한 시간이 있다. 나는 무조건 그 시간을 준수한다. 강연하다 보면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그때는 다음 강연 시작시간을 조금 늦춰주면 된다. 최종적으로 마치는 시간은 무조건 지킨다. 마치기로 예정된 시간에 짐을 싸는 시늉을 하는 직원이 한두  명 나타나면 그날 공들인 강연이 급격하게 '아무것도 아닌 강연'이 되는 수가 있다. 마지막이 중요하다.


강사가 강연 내용을 전부 외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멘트와 마지막 멘트는 반드시 성의를 다해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주로 '변화는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라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공무원 대상으로 연습하면 나중에 훌륭한 강사가 될 거야


강연자의 기피 1호 수강생은 공무원이다. 특히 고위직 공무원. 그들은 팔짱을 끼고 듣는다.


나는 다 알고 있어.

뭔가 내가 관심 끌만한 이야기 해봐. 

일찍 마쳐주면 좋겠는데.


일반인의 경우, 강의실의 공기가 다르다. 의도된 웃음 포인트에서는 여지없이 하하, 호호 소리가 터진다. 서면에 있는 지역서점 '크레타'에서 강연할 때였다. '책과아이들'이라는 서점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돌아가신 강정아 대표를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너무 집중해서 들어주니 내가 과도하게 몰입이 되어 있었다.  


나는 퇴직 전에는 일반인보다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더 많을 것이다. 관료적인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것은 내게 좋은 기회다. 공무원에게 먹히는 강의라면 일반인 수강생에게는 더 잘할 수 있다. 기회를 잘 살려서 퇴직 후에는 잘 나가는 자기 계발 강사가 되겠다. 내가 책으로부터 받은 행복과 지혜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겠다.


<'크레타' 서점 강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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