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가장 진실하게 표현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폴 세잔,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by Quantum 김남효

작품을 시작할 때, 내 마음속은 끓어오르는 열정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지닌 본질적인 형태를 화폭에 꾹꾹 눌러 담고 싶었다. 눈앞에 놓인 사과와 비스킷, 병, 그리고 주름 잡힌 천은 물건이 아니라, 내가 탐구해야 할 원통, 구, 원뿔 같은 기하학적 형태의 총체였다.


사과 하나하나의 탱글탱글한 무게감과 울긋불긋한 색감을 곰곰이 들여다보았다. 비스킷의 바삭바삭함이 느껴지는 질감과 병의 쭈뼛한 수직선은 이 모든 것을 담아내는 안정적인 구도를 억척스럽게 찾게 만들었다. 손은 붓을 쥐고 사각사각 종이 위를 움직이며, 이 정물들이 가진 존재감을 화면에 오롯이 박아 넣으려 애썼다. 나의 영감은 ‘자연을 원통, 구, 원뿔로 다루라’는 내 자신의 명제에서 샘솟듯이 솟아난 것이다.


폴 세잔,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1890-1894,


기존의 그림들은 너무나 틀에 박힌 단일한 시점과 기계적인 원근법에 꽉 갇혀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눈앞의 정물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고, 그 과정에서 사물이 움직이고, 테이블이 삐딱하게 보이는 다중적인 시점을 발견했다.


‘사물을 가장 진실하게 표현하는 방식은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인습적인 구도를 깨부수는 것에 있었다. 사물의 실재하는 느낌과 무게감을 전달하기 위해, 접시가 갸우뚱하게 기울어져도, 테이블 면이 뒤죽박죽 여러 각도로 펼쳐져도 개의치 않았다.

이러한 시도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단일한 시점으로는 사과의 둥글둥글한 존재감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쪼개고 붙여서 화면에 새록새록 재구성했다. 이는 그림을 일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한 화면에 담아내려는 용감한 실험이었다.


눈앞의 사과를 하나의 ‘물체’로 보지 않는다. 붓을 들어 사과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순간, 사과는 정해진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이곳에도 있을 확률’과 ‘저곳에도 있을 확률’을 동시에 지닌 파동처럼 화면 위에서 어른거린다고 느낀다. 마치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파동-입자의 이중성처럼, 사과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여러 각도와 위치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캔버스에 색점을 톡톡 찍어 형태를 만들어나갈 때, 그것은 곧 사과의 ‘존재 확률’을 화폭에 확정 짓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 정물화 속 테이블은 이리로 쏠리고 저리로 기우뚱하며, 병은 이중으로 겹쳐 보이는 듯한 불안정한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한다. 나는 사물의 보는 이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본질, 즉 ‘관찰자에 의해 결정되는 리얼리티’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내 그림은 내가 세상을 느끼고 해석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회화의 본질이다.


세잔의 관점에서 그림 읽어 가기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이자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카드 놀이를 하는 사람 (The Card Players)》 연작과 《생트빅투아르 산 (Mont Sainte-Victoire)》 연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