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 '소나무가 있는 몽 생트-빅투아르'
벅차오름 그 자체이다. 저 멀리 우뚝 솟은 생트-빅투아르 산을 바라볼 때마다, 그 웅장함과 고요함이 내 안으로 와르르 밀려들어오는 듯했다. 주변의 푸르른 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가느다랗게 스며드는 빛의 떨림을 보며, 자연이 내게 건네는 속삭임을 곰곰이 새겨들었다.
내게 영감을 준 것은 오직 눈앞의 현실, 바로 저 자연의 본질이다. 산과 들, 나무와 집들이 이루는 조화와 질서, 그 모든 것이 스멀스멀 다가와 그림을 그리라 재촉하는 목소리이다. 오롯이 내 눈에 잡히는 대로 자연의 덩어리감을 화폭에 담아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다.
기존 회화의 틀에 박힌 구도를 무시하고, 내가 보는 대로 그리려 꿈틀거리는 시도를 하게 된 계기는 명료하다. 전통적인 그림들은 너무 획일적이고 정형화되어 있어서, 자연의 생생한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폴 세잔의 '소나무가 있는 몽 생트-빅투아르'
사물을 색채나 선으로 좍좍 나누지 않고, 모락모락 피어나는 듯한 형태와 색감의 조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포착하는 순간적인 인상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이 진정한 자연의 재현이라 여겼다. 전통적인 원근법 대신, 색채와 면이 서로 밀고 당기며 만들어내는 깊이와 공간감을 뭉게뭉게 펼쳐 보이는 나만의 방식을 오롯이 찾아가려 했다. 생생하게 찰나의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기에, 나는 '보이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하고자 한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순간에 붙잡아 낸 풍경의 파편이다. 아침의 맑음, 한낮의 번쩍임, 해 질 녘의 노을 등, 시간이 흐르며 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움직임을 내 눈은 놓치지 않고 재빨리 포착해냈다.
두툼하게 쌓아 올린 물감의 붓터치 하나하나가 마치 시간의 층위처럼 차곡차곡 느껴지기를 바랐다. 스르륵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 둔 생트-빅투아르 산의 영원성과 순간성이 동시에 찰싹 붙어있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보는 순간의 감동을 오래오래 깊숙이 간직하고 싶었던 나의 뜨거운 열정 그 자체이다.
내 그림은 눈에 보이는 형체를 딱 고정시키지 않고, 마치 양자의 파동처럼 흐느적거리며 존재하는 풍경의 잠재성을 담아내려는 시도이다. 생트-빅투아르 산의 형상은 뚜렷이 여기에 있다고 단언할 수 없고, 보는 이의 시선이 닿는 순간에만 비로소 그 형태로 웅크리고 나타나는 가능태 그 자체이다.
내가 칠한 모든 색채와 면들은 흐물흐물하게 중첩되면서, 빛과 공기 속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파동처럼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고정된 입자가 아니라, 겹겹이 흐물거리는 ‘확률의 장(場)‘을 만들며, 수많은 관측 가능성을 두리뭉실하게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나의 붓질은 자연을 측정하는 행위이며, 이 그림은 그 측정의 순간에 스며들어 포착된 양자적 실재의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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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이자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카드 놀이를 하는 사람 (The Card Players)》 연작과 《생트빅투아르 산 (Mont Sainte-Victoire)》 연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