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이용한 건축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
풀이과정도 적당히 베껴야 한다.
초등학생시절 수학문제를 풀 때면 나는 종종 부모님이 숨겨 놓으신 해답지를 보고 답을 베꼈던 적이 있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답만 맞으면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풀이과정도 적당히 베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주어진 숙제를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하고 놀 수 있었다. 특히, 어려워 막힌 문제를 만나면 그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해답지를 훔쳐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몰래 해답지를 급하게 보다 보면 간혹 풀이과정도 이상하고 답도 이상한 것을 적게 된다. 당연히 부모님이 아셨고 예상보다 크게 혼나지는 않았지만 그게 오히려 스스로 창피하게 느껴졌던 거 같다. 그 이후로 틀리면 틀렸지 다시는 해답지를 몰래 보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곧 디자이너로써의 자멸을 의미한다.
요즘 많은 분야에서 AI의 도움을 받는 것 같다. 내가 속해있는 건축설계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호기심에 AI에게 건축에 대한 여러 내용을 질문해 본 적이 있지만 틀린 내용도 꽤 있어서 아직 믿고 쓸만한 수준은 안 되는 것 같다. 생성형 AI로 건물 이미지를 만들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도 한다. 사실 도움을 받는다는 것에 나는 부정적이고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최근 들어 동종업계 몇몇 SNS 계정에 본인이 명령하여 만들었다는 AI 이미지들이 올라온다. 본인도 신기해하고 적극 사용하려고 하는 의지도 느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참고 수준이라기보다는 완성도가 매우 높아 그대로 지어져도 멋지다고 생각이 들 만큼 훌륭하다. 나는 이런 AI 이미지를 보면서 불현듯 초등학생시절 해답지를 몰래 보던 내가 생각났다.(이렇게 생성된 이미지들은 심지어 정답도 아니다.) 내가 디자인 과정에서 AI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풀이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것은 참고용으로만 사용하는 이미지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아무리 명령어를 주입하여 생성한 이미지라고 해도 이렇게 얻은 이미지(상상의 해답지)를 베껴서는 풀이과정이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디자이너로써의 자멸을 의미한다.
AI의 도움은 전혀 필요 없다.
건축설계의 풀이과정은 가장 먼저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주어진 대지, 현장의 상황 등을 분석해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러 조건을 잘 들여다보고 파악하면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될지 떠오르고 그 생각을 조금씩 스케치해 나간다. 이러한 풀이과정 가운데에서 수없이 수정되고 재료도 적용하면서 공간의 분위기를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AI의 도움은 전혀 필요 없다.
건축에 정답은 없어도 풀이과정은 있다.
나의 풀이과정은 항상 러프한 아이디어의 스케치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한 번은 교외지역의 경사지에 별장 개념의 [세컨드 하우스]를 계획한 적이 있었다.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장마철 빗물과 날 것의 자연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땅에 묻히는 것이 아닌 띄우기 위한 아이디어로부터 스케치는 출발했다. 경사지로부터 가볍게 떠있는 단층의 수평적인 모습을 상상하며 벽식구조가 아닌 철골빔을 이용한 기둥식 구조를 제안했던 적이 있었다. 이렇듯 모든 풀이과정은 여러 조건을 파악하고 적합한 구조를 결정한 다음에 분위기를 상상하며 재료와 조명 같은 것들을 적용하면서 디자인해 나간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건축의 풀이과정이다.
건축에 정답은 없어도 풀이과정은 있다. 거기엔 AI의 도움은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