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절을 부를 차례이다.
나는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한 지 3년 차로 접어든 어엿한 젊은 건축가이다. 정확히 말하면 2년 반이 조금 넘었다. 꾸준한 성격 덕에 제법 이른 나이에 건축사가 되었고 곧바로 사무실을 바로 오픈했다.
대단한 학벌이나 인맥도 없는 터라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에게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올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 하나 없이 사무실부터 차리게 되었다. 주변의 응원과 격려에 처음 몇 달은 용기를 얻어 보냈고, 일이 없이 몇 달을 더 지내보니 생사와 직결된 현실공포가 나를 짓눌어 왔다. 그렇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고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일을 소개받았고 바쁠 때는 경력 직원에 프리랜서까지 고용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돌이표를 만나 3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10평이 좀 안되는 호화로운 사무실을 홀로 지키고 있다. 그래도 그전에 비하면 책과 식물이 많아져 허전함은 덜하다.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나는 사무실을 개소하면서 재능소비라 여기던 현상설계공모는 절대 나가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결국 세 번의 처절한 패배와 한차례의 무기력한 항복을 선언한 바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사장님이 되어 보니 남의 나라 전쟁이 나의 안보를 위협하고, 레고(LEGO)를 좋아했던 유년시절의 나는 레고랜드 사태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얼마 전, 건축잡지(SPACE)에서 개소한 젊은 건축가들이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이론적 탐구보다는 일시적인 이미지를 쫓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렇게 일상에 매몰되는 순간 건축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조언이 담긴 이종건 건축평론가의 글을 보았다. 타들어가는 내 속마음에 대고 하는 말 같았다. 덕분에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글쓰기보다는 말하는 것에 재주가 있는 편이지만 그 글을 읽고 그동안 고군분투했던 나의 생활을 돌이켜보며 진지한 반성과 함께 생존전략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나의 순수했던 때를 떠올려 보자. 왜 그렇게 건축사 자격증을 갈망했고 사무실 개소를 서둘렀나? 그렇다, 나는 내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던 거다. 이렇듯 나는 분명 건축가의 길을 염원한다. 하지만 일상에 매몰되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삼 년 동안의 나의 행보가 바람직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다. 프로젝트의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일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론적인 스터디와 이를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삼 년의 회고로 드는 생각이다. 단순히 되돌아가 반복하는 도돌이표가 아니라 1절을 끝낸 것이 아닐까?
음(音)은 충분히 익혔으니 이제 좀 더 나은 건축가로서의 2절을 불러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