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la pluie d'ete)-마르그리트 뒤라스
에르네스토의 부모님은 종종 쓰레기장에서 중고책을 가져오거나 가판대에서 훔쳐오고는 하였다. 그렇게 들고 온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하셨던 책은 <조르주 퐁피두의 인생>이었는데, 부모님이 이 인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유명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부모님은 이 책이 그토록 위대한 조르주 퐁피두의 인생을 모든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는 평범함의 논리로 설명하기 때문에 좋아했던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20년도 전에 비트리에 정착한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실업자였고 특별한 기술도 뚜렷한 정체성도 없었다.
그런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조금 특별했다. 특히 에르네스토는 그랬다. 동생들이 창고에서 두껍고 검은 가죽책을 발견한 날이었다. 용접기나 달궈진 쇠막대같이 엄청나게 강한 도구에 의해서 이곳 저곳이 불타있었지만 불탄 구멍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읽을 수 있었다.
에르네스토는 그 책이 지닌 강렬한 고독에 이끌려 글자를 익히지 않았음에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그냥 말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채 심지어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정말 읽고 있는 게 맞는지, 읽는다는 것에 더이상 의문을 가지지 않은 채로. 어떤 단어가 지닌 형상에 따라 첫 번째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고 두 번째에는 첫째를 고려해 의무부여를 하는 방식으로 한 문장 전체가 어떤 의미를 가질 때까지 계속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결국 에르네스토는 읽는다는 것은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가 자신의 고유한 육체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것이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이웃집의 남자애와 동네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는 교사에게 물어봐도 둘다 에르네스토가 읽은 내용처럼 한 유대인 왕에 관한 내용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에르네스토가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알 게 되자, 사람들은 에르네스토를 학교에 보내라고 부모님께 재촉하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더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에르네스토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학교에 간 에르네스토는 열흘 후에 집으로 온 후 더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부모님이 의아해하며 에르네스토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자, 에르네스토는 "소용이 없었다"고 말한다. 학교에 간 날, 에르네스토는 하룻밤 사이에 우주가 자신의 앞에서 탄생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자신은 그곳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에르네스토는 마치 그런 환시가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느끼며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에르네스토가 솔로몬왕의 코헬렛을 읽었다는 암시이다. 코헬렛은 솔로몬왕이 쓴 구약성경의 한 경전으로, 이후 니힐리즘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예시이기도 하다. 코헬렛 1장에 보면 그 유명한 허무주의의 구절이 나온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에르네스토가 학교에서 배운 그 짧은 지식만으로 우주의 탄생을 깨달을 정도로 지혜로웠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 것은 마치 모든 것을 다 누리고도 허무함을 한탄한 솔로몬왕을 떠올리게 한다. "지식은 마치 바람과 같다"라고 한 에르네스토의 말도 실제 코헬렛에 나오는 구절과 동일하다.
그리고 선생님이 직접 집에 방문하여 에르네스토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게 되자 선생님은 오히려 감탄하며 그에게 학교에 가기를 설득한다. 결국 에르네스토는 집을 떠나 학교로 가게 된다. 그러나 학교로 가게 되는 날짜가 다가오던 어느날, 비트리는 재개발 구역이 된다. 결국 에르네스토에게 학문은 그의 뛰어난 재능의 영역이었지만 그의 가족들로부터 떨어지고 학교에 가게 된 상태에서 고향에 재개발이 일어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술에 취하면 종종 즐거이 부르시던 노래를 에르네스토가 가사를 읊조리는 앞에서 어머니께서 구슬프게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해의 첫 여름비가 내린다.
에르네스토가 말한 것처럼 인생은 그토록 허무한 것인가? 아무리 우리가 악착같이 행복해지려고 해도, 혹은 이 순간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아름답고 위대하다고 느껴도 이들은 결국 지나갈 뿐인가, 허무하게 마감할 뿐인가.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초라하기만 할 뿐인가? 그러나 나는 에르네스토가 말한 것처럼 그의 정신이 그저 바람 같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지혜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학교를 안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가족들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혼이 꿰뚫리고 불타오르며 흐르는 피가 목을 마르게 해도 연옥의 빈 허리를 안고 놓지 않으려는 어리석은 사랑이야말로 허무를 극복한 진정한 의미의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