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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 Nov 20. 2024

2024년 11월 20일-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오늘도 사수한테 혼났다.


내가 영어를 얼마나 못하는지 모르겠다며

“What’s the meaning of”의 뜻이 뭐냐고 해석해 보란다.

분명 비꼬는 거겠지. 차라리 그래야만 한다.

진지하면 더 문제다.

저건 초등학생도 해석할 수 있는 문장 아닌가.


자존감이 나날이 깎여가고 있다.

직설적이고 똑똑한 사수는

하루하루 조금씩 나를 갉아 죽인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갉히면 갉히는 대로

그저 있을 뿐이다.


내 멍청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공부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영어도, 과학도, ppt 발표자료를 만드는 것도.

나는 못하는 게 산더미라 어딜 가나 혼날 준비를 한 채 입을 열 수밖에 없다.


대학원생이란 게 원래 이런 걸까.

아님 내가 한심한 인간이라 나만 이런 걸까.


못하는 게 많은 나는

심지어 멘탈도 약해서

정신과약을 다시 복용하고 있다.

불안장애를 완화시키는 약이다.


한 알 한 알 먹으면서

플라시보 효과라도 좋으니 약빨이 더 잘 들기를 늘 기도한다.

.

.

.

.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냐고 얼굴 좀 보게 영상통화를 하자고 하시는데

차마 거절도 못하고 애써 괜찮은 척 연기해본다.

“김치 다 떨어졌지? 보내줄게~”

“전기 자전거는 어때? 탈만해? 헬멧 써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일상적인 전화통화가 참 오랜만이고 평화롭다.

나는 원래 그쪽 세계에 살던 인간이었는데

지금은 왜 지옥을 밟고 있는지.

엄마에게 내가 등진 지옥을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웃어 보인다. 최대한 미소 짓는다.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다고.


엄마와의 통화가 끊기자마자

K에게 전화가 온다.

가면이 벗겨진다.

전화를 받는다.

숨이 가빠진다.

또다.

불안장애다.


계속 뭐라 뭐라 좋은 소리를 건네는 그에게

도무지 좋은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냥 머리가 멍하고

힘은 없고

사실 배도 고프지 않다.

그냥 침대에 누워 시간을 죽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아이패드를 킨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브런치 글을 쓴다.

결국엔 추워서 보일러를 켰고

결국엔 오늘 공부할 단어장도 폈다.

그렇다. 이게 내 유일한 장점이다.

삶에 대한 의지를 계속 이어간다는 것이다.


딱히 머지않아 엄청난 일을 해내고 말겠다는 게 아니다.

딱히 내가 앞으로 아주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나는 아주 멍청하고 배울 게 많다.

나는 아주 부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워있기를 택하진 않는다는 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은

다음을 준비하는 것.

밥을 안 먹으면 속이 쓰릴테니 밥을 먹고

공부를 안 하면 내일 할 게 많아지니 공부를 한다.

약을 거르면 내일이 망가질 테니 약을 먹고

오늘도 적정시간에 잠에 드려 노력할 것이다.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최대의 것.

낙관도, 비관도 더 하지 않을 테니

그저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라도 있길.


나의 포스텍에서의 일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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