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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ul 02. 2023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그림책을 읽어본다 23: <Tuesday> (화요일)

<Tuesday>       David Wiesner          1991          Clarion Books


두 가지의 이미지가 있다.

첫 번째.

시베리아 아래 러시아 변방 어느 곳, 한적한 바닷가 물 가를 따라 호랑이 발자국이 선명하다.

한국호랑이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어느 다큐멘터리 팀에게 포착된 호랑이 흔적이다.*  


한 밤에 홀로 해변을 따라 걸어가는 호랑이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내가 만들어낸 이 이미지가 섬뜩하면서, 한편으로는 호랑이에 붙여도 될지 모르는 '고독'이란 말이 자꾸 떠오른다.

'호랑이가 고독해.' '고독해?'

말이 이상하다.

'호랑이가 고독해 보여.'

이렇게 하면 말이 번잡하고 또 내가 주어가 되어버려 밤 해변을 홀로 걸어가는 호랑이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납작 엎드리고 자연에 굴복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호랑이 이미지가 너무 섬뜩하여 그냥 농담 한마디를 하면서 빠져나온다.

"동네 누군가 시끄러운 머리 식히려 밤중에 나왔다가 딱 마주치겠다."

"둘이 바닷가를 쭉 걸어오다 어느 한 점에서 마주 보게 되면?"


이 이미지는 더 강해서 이젠 우스개 대사까지 만들어 낸다.  

"'여긴 구역이야. 이 밤중에 너는 여기 오는 게 아니야!' 호랑이가 그럴 거야. 으 하 하..."  


그렇게 호랑이를 마주칠 일이 없겠지만, 마주칠까 무섭다가, 마주치고 싶어 진다.

그 장면을 마음속에서 자꾸 되돌려 본다.   



두 번째 이미지.

데이비드 위즈너의 <Tuesday> (화요일)다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시간이다.

연잎으로 덮인 연못 주변 공기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돈다.


연잎에 앉은 개구리들은 비밀스러운 눈짓을 나누고 이윽고 조용히 비상飛上 한다.

연잎 한 장에 한 마리씩.

우연히 그들이 발견해 낸 비상의 조건은 연잎과 해가 진 시간이다.

  

개구리들이 한참 근처 동네로 날아오르고 있을 때는 이미 밤이다. 모두가 잠자리에 들은 시간.

늦게까지 잠 못 이루고 부엌에서 야식을 먹던 남자는 곁 눈으로 날아가는 개구리 떼들을 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설마, 아니지.'


혼자 사는 할머니는 티브 앞 소파에 앉은 채로 잠들었다. 할머니네 열린 창문으로 개구리들이 날아들어온다. 그녀의 집은 날아다니는 개구리의 세상이 된다.

할머니가 잠든 사이에.

할머니는 결코 모른다.


개구리들은 이 비밀스러운 비행을 한껏 즐기며 모두가 잠든 동네를 누빈다.


마침내 시간이 다 되었다.

아침 햇살 한 줄기가 높은 굴뚝에 비쳐오는 순간 개구리들은 연잎이 더 이상 날아다닐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돌아갈 시간.

서둘러 동네를 빠져나간다.

급하다.

바닥에 떨어져 가며 겨우 시간 안에 자신들의 연못으로 돌아간다.


위즈너의 <Tuesday>는 글로 된 텍스트가 없다. "화요일 저녁, 8시경"(Tuesday evening, around eight) 혹은 "4:38 A.M." 등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글자가 전부다. 그리고는 많고 많은 개구리들이 화면을 차지한다.

달 빛을 받아 시퍼런 밤하늘에 떠 날아오는 개구리들을 보여주는 그림은 그저 하나의 제안이다.

그러나 그 제안은 강력하여 우리의  머릿속에는 하늘을 메우며 개구리 떼가 날아온다.


그리고

내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이곳, 우리 집, 마당, 길, 하늘을 다시 보게 된다. 오싹한 스릴이 전해온다.


잠깐, 조용한 밤하늘을 넘실대며 유영하는 (고양이)를 떠올려 본다. 순간 전율하다 놀라며 그 짜릿함에서 벗어난다.

고양이 대신 다른 어떤 것을 괄호에 넣어도 좋겠다, 전율은 같을 것이니까.                  

 

모두가 잠든 밤 중에는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EBS 다큐프라임>, '호랑이의 땅.'  2016. 6. 23. (2023. 6. 재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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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2023 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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