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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Jul 28. 2024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뛰어내려졌다

체코에서 생긴 일 - Part 2

네다섯 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초등학생이던 언니 오빠들을 따라 호기롭게 낭떠러지 주변을 게걸음으로 걷다가 몸이 앞으로 기울며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이에 느꼈던 공포는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았다. 이후 나는 높은 곳에 갈 때마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아래를 보면 어지러움을 느꼈다.


고소공포증은 내가 가진 최대의 약점이었다.




스카이다이빙을 해 보는 것이 내 버킷리스트에 있었지만, 엄두가 나진 않았다. 민간 항공기만 타도 손에 땀이 나는 나인데, 경비행기를 타고 4000m 상공까지 올라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찌어찌 올라간들 전문 스카이다이버와 연결된 내 몸에 붙어있던 안전핀이 뽑혀서 나만 떨어져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낙하산이 펴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높은 곳과 관련된 일이라면 안전과민증이 생겼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약점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이상한 군인정신이 있었다. 어쩌면 고소공포증이 크게 심하지는 않아서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고소공포증을 이기는 동시에 버킷리스트도 해보고 싶었기에, 결국 체코에서 하는 스카이다이빙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체코에서의 스카이다이빙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영상을 촬영하지 않으면 15만 원, 영상을 촬영하면 25만 원 정도였다. 영상 촬영을 하는데 무슨 10만 원이나 더 붙나 싶었지만 그래도 촬영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돈을 더 주고 영상 촬영도 신청했다. 나 외에도 3명의 사람들과 함께 지상에서 뛰어내리고 착지하는 연습을 간단히 한 후 비행기를 타고 지상 4000m 상공으로 올라갔다.


경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겁이 날 줄 알았는데, 막상 비행기에서는 곧 있을 뛰어내릴 장면을 상상하느라 비행의 두려움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잔뜩 겁먹은 것을 본 내 담당 스카이다이버 아저씨는 자신이 이미 수 천 번을 뛰어내려 봤으니 걱정 말라고 자신했다. 그나마 안심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했던 나는, 아저씨와 나 사이에 연결된 벨트를 더 꽉 쪼여 달라고 수 차례 말했고 그때마다 내 말을 잘 들어주셨다.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마지막엔 숨이 겨우 쉬어지는 정도까지 되었지만, 내 마음은 그나마 더 안정적이게 되었다.


드디어 상공에 다다랐고,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이 한 명씩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안쪽에 있던 나는 그나마 세 번째 순서였는데 내 앞에 사람이 뛰어내리는 것을 보니 손에 땀이 나고 너무 무서워졌다.


'이게 내 인생 마지막이면 어떡하지? 여기서 그냥 내려간다고 할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덧 비행기 문 앞에 서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나의 고민을 말할 시간이나 정신이 없었다. 열려 있는 비행기의 문 앞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려고 하는 찰나에 나를 매달고 있던 스카이다이버 아저씨가 비행기 밖을 향해 뛰어내렸다. 내가 했던 고민은 찰나의 사치에 불과했다.


그렇게 나는 뛰어내려졌다.




스릴을 느낄 때면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겁이 나면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가 무섭게 바람이 내 얼굴을 미친 듯이 쓸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뛰어내릴 때 팔을 양 옆으로 들어 올려야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다고 교육을 받았는데, 살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려보려고 했지만 강한 바람으로 인해 어정쩡한 자세만 될 뿐이었다. 자유낙하 운동을 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저씨가 낙하산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로 넣어서 줄이 꼬여 있으면 어떡하지? 낙하산이 안 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임시 낙하산마저도 안 펴지면? 이대로 죽는 건가? 떨어질 때 몸을 웅크리면 살 수 있을까? 왜 끝없이 내려가기만 하고 아저씨가 낙하산을 안 펴는 거지?'


그런 수많은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명색이 버킷리스트였기에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놀이기구를 탈 때도 눈 한 번 뜨지 않던 나였는데,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어떻게 해서든 눈을 떠서 모든 순간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수만 가지 두려움으로 인해 눈을 떠도 뜬 것이 아니었지만.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30초가 지나고 드디어 아저씨가 낙하산을 펼 준비를 한다.


두근-


오오 지저스.

낙하산이 펼쳐졌다.

나는 살아다.


평소에는 거의 하지도 않던 기도를 30초 사이에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낙하산은 무사히 펼쳐졌다.


자유낙하를 하는 동안에는 바람소리와 내게 작용하던 힘으로 인한 두려움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낙하산이 펴진 순간부터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커다란 지구에서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고요함이었다. 때때로 나를 태워준 스카이다이버 아저씨가 괜찮냐, 어떻냐고 묻는 물음만 들렸을 뿐 세상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한쪽으로는 해가 지고 있어 노을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아래를 내려보니 세상은 작은 레고처럼 보였다. 하늘에서 바라본 지구는 황홀 그 자체였다.


'이래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구나.'


저 아래에서 레고로 보이는 사람들처럼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도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고민들은 내 인생의 전부였지만 우주 속에서는 티끌만 한 먼지일 뿐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잡념이 사라졌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요함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고, 아쉬웠지만 땅에 착지해야 할 때였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가 하늘에 있는 시간을 아쉬워할 줄이야.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 후 바닥에 무사히 착지했지만, 내 두 눈에는 아직도 하늘에서의 전경과 고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하늘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비록 한 번 더 도전은 못할 것 같지만.


유일하게 정상인처럼 나온 사진
※ 주의 : 아래 영상은 당시에 촬영한 영상의 일부로, 바람소리가 담겨 시끄러울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 꽉 조여서 착용한 고글과 바람이라는 자연의 만행으로 인해 충격적인 얼굴이 나오기도 합니다.

※ 참고 : 본인도 끝까지 본 적 없음.


스카이다이빙 간접 체험 가능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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