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너무 없어서일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일까. 나는 18살이 되어서야 동물들도 인간과 유사한 방법으로 교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행위는 인간들의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동물도 본능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니. 꽤 늦은 나이에 그 사실을 알고선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랬던 내가여자들이 나오는 스트립쇼에 가볼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서두 눈으로 본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이었다.
내 나이 스물둘이었다.성(性)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남들은 다 사춘기 때 궁금해하는 내용이 스무 살이 넘어서야 궁금해졌다니, 돌이켜보면 내가 관심 있는 일 외에는 참 무지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성(性)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졌었는데, 마침 체코에서 머무르던 한인 민박의 사장님이 스트립쇼를 보러 갈 사람을 모집한다는 말에호기심에 이끌려따라가게되었다.
'스트립쇼를 보러 가면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춤을 추면서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는 걸까?'
'옷은 실제로 다 벗는 걸까 아니면 중요한 곳은 가리고 있을까?'
미국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가기 전부터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공연이라고는 연극과 뮤지컬 밖에 본 적이 없었기에,이색적인 공연을 본다는 설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트립쇼를 하는 장소를 떠올려 보면 비밀스럽고 어두컴컴하게 이어진 지하 공간으로 한참 걸어내려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내가 간 곳은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에서멀지 않은 중심가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예상과 다르게 꽤 공개된 장소에 있다는 점부터 신기했다. 내부로 들어가니 스트립바 직원들이 한인 민박 사장님과는 친한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스트립바는 마치 클럽처럼 시끄러운 음악이 들리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곳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화장실을 잠시 들렀는데,높은 구두를 신어 키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스트립댄서들이 내 앞에 있었다. 그들은 국적이 다양한지 다들 영어로 대화하고 있어서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Hey, are you feeling okay?(너 괜찮아?)"
"Yes. It's okay.(응, 괜찮아.)"
그들의 대화는 뭔가 처음 온 사람을 챙겨주면서도 걱정하는 듯한 말투였고, 내가 듣기에 왠지 슬프게 느껴졌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생각했다.
'이 분들이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일을 하고 있나 보다. 하긴 스트립 댄서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근데 내가 감히 이런공연을 봐도 되는 걸까?'
자리로 돌아가 함께 온 한인 민박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한 분이 자신은 다른 의견이라며 내게 말했다.
"서로 파이팅 해서 공연하자는 뜻이 아닐까? 말 그대로 응원인 거지. 오히려 그 사람들이 이 일을 하는 건 자랑스러운 일일 지도 모르는 데,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오히려 안타깝다는 마음이 드는 게 편견일 지도 몰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으로는 나도 모르게 뿌리 깊은 편견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겠구나.'
당시 스트립댄서들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는 없겠지만, 타인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그분의 코멘트를 통해 내가 스트립쇼를 보는 것이 스트립 댄서들에게 덜 미안해지기도 했다.
가장 첫 무대부터 꽤나 충격적이었다.스트립댄서가 높은 곳에서 천을 타고 서커스를 하듯 내려오는데 천에 매달려서 춤을 추며 옷을 한 꺼풀씩 벗는다. 속옷만 입은 상태로 그 높은 곳에서 춤을 추는데 사실 스트립쇼보다는 서커스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댄서가 바닥에 다 내려온 뒤 춤을 추니, 공연을 보던 관객들은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댄서의 속옷에 팁을 끼워준다. 그댄서는마지막에 모든 속옷을 다 벗어던져 버리며 무대를 끝마쳤다.
이후에도특이하고 색다른 무대가 계속되었다. 남자 관객을 의자에 앉히고 그 앞에서 옷을 벗기도 하였고, 입고 나온 의상 자체가 특이한 무대도 있었다. 생각보다는 무난해서 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여느 공연이 그렇듯 무대는 뒤로 갈수록 더욱 적나라해지고 과감해져 갔다. 한 외국인 관객은 스트립 댄서의 공연 중에 흥분하여 무대 위로 올라가 봉을 타다가 스트립바의 가드들에게 끌려 내려와 쫓겨나기도 했다.
공연을 보고 있는데 한인민박 사장님이 말했다.
"무대로 가서 팁을입에 물고누워 있으면 그걸 댄서가 입으로 가져가거든? 한 번 해봐 봐."
재밌을 것 같았지만 차마 혼자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때 다른 분이 내게 함께 나가보자고 제안했다.그렇게 팁을 들고 무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는 길이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드디어 무대에 도착해 팁을 입에 물고 함께 간 분과 나란히 누웠다. 무대 공포증도 없는 나인데, 스트립 댄서들 주변에서 팁을 물고 무대에 누워 있으니 심장이 어찌나 쿵쾅대던지 홀딱 벗은 사람이 댄서들인지 나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공연을 하던 언니들은 우리 주변에서 춤을 추더니 "Thank you."라는 말과 함께 팁을 가져갔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스트립 댄서가 되는 기분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본 순간이었다.
우리가 무대에서 돌아온 후에도 공연은 계속되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무대는 여성 스트립 댄서들끼리의 섹스신이었다. 이전까지의 무대들은 영화에서 보던 것과 비슷하다 싶은 정도였는데, 그 무대에서만큼은 야한 동영상에서나 나올법한 적나라한 장면들을 선보였고,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상세한 장면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여하튼나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들 눈을 반짝거리며 열심히 보고 있었다. 어리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도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공연을 다 보고 밖으로 나오니 밤 12시가 넘어 있었다. 한인민박 사장님은 마지막 하이라이트 무대가 이벤트성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하는데 우리가 운 좋게 본 것이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꽤 충격을 받아 당시에는 그게 운이 좋았던 건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 무대가 없었다면 생각보다 시시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다시 그곳을 가서 같은 무대를 보게 된다면 이제는 나도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을 것 같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갔던 것이내 한이라면 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