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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4. 2023

#28. 부에노스아이레스, 그 잔잔한 여행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사랑에 빠질 확률

내일이면 이제 한국으로 출발하게 되는 날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우산은 이미 망가져서 볼리비아에서 버리고 왔음에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보내고 있는 이 행복한 시간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마저도 그저 창을 두드리는 노랫소리처럼 내 마음을 적신다. 우산이 없었으나 다행히도 숙소에 주인이 남겨둔 우산이 하나가 있었다. 우리가 묵는 방 1층에 카페가 있어 그 곳으로 향했다. 팬케잌과 커피를 시켰는데, 역시나 이 곳에서의 커피는 너무 맛있다.   


1층 카페에서의 펜케잌과 카페라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 카페에서 약간의 여유를 부린 후 매일 가던 티켓을 사던 거리로 나갔다. 마지막이니만큼, 후회없게 탱고를 다시 한 번 보고 가자고 K와 이야기했다. 그 열정적인 '하나의 심장'을 한번 더 내 심장에 담아두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던 까닭이다. 고심 끝에 'Bar Sur(바 수르)'라는 곳을 예매하였다. 


바 수르는, 작은 공간에서 서너시간 공연을 하면서 최대 10테이블 정도만 받는다고 한다. 그 동안 보던 큰 공연장과는 차이가 있어, 색다른 탱고를 눈앞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끝이 아름다워야 모든 시간들이 더 소중해질 것 같았기에 가격이 조금 있더라도 가장 끌리는 좋은 곳을 택했다. 


그렇게 표를 예매하고 카페 토르토니로 커피를 한 잔 더 마시러 이동했다. 첫 날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남미에는 참 여경들이 많다. 그리고 여경들이 전체적으로 덩치가 크다. 위압감이 느껴진다. 거기다가 그들은 실제로 총과 무기들을 사용하기도 하니, 아마 더 그런 듯하다. 이런 곳에서 일하려면 사실 덩치가 작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카페 토르토니는 160여 년의 전통이 있는 곳이었다.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대기가 있다. 10분 쯤 기다리니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커피와 맥주, 그리고 추러스를 시켰다. 맛은 전체적으로 그냥 그렇다. 아마 전통과 공간의 아름다움이 그 곳의 명성을 이어주는 듯 하다.   


먹다 말고 찍은 사진, 역시 엉망이다.


그 곳을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어제 느꼈던 소고기의 행복이 기억나,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 소고기를 또다시 구매했다. 내일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숙소에서 마지막 만찬으로 즐길 예정이다. 


오늘 저녁은 지나가다가 본 'Las Cabras'에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분위기는 조금 별로였지만, 그래도 우리 숙소와 가까이 있었기에 외식 후 '바 수르'에 가기에 시간이 적당했다. 일단은 스테이크 두 개를 미디움레어로 시켰다. 와인은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종업원이 그런거 물어볼 때마다 어렵다고 말한다. 역시나 이곳은 고급 레스토랑은 아닌 듯 하다. 조금 유명하거나 비싼 곳을 가면 다들 멋드러지게 추천해주던데. 


스테이크 전에 와인부터 나왔는데, 와인 잔이 없다. 컵에다 따라주는 와인, 당황스럽다. 와인 맛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와인의 맛이 그저 그렇다. 와인잔에 마시지 않아서 더 그런가. 와인이 나온 지 30분이 지난 뒤에서야 나온 우리 스테이크. 그마저도 거의 웰던에 가깝게 나왔다. 먹는데 질겨서 혼났다.  


보기엔 나쁘지 않다


마지막 날 밤을 좋은 곳에서의 외식으로 꿈꿨으나, 그 꿈은 처참히 깨지고 말았다. 역시 방에서 직접 구워먹는 것이 최고로 맛있는 듯 하다.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를 마친 후, Bar Sur(바 수르)에 가기 위해 나왔다.


Bar sur(바 수르)는 산 뗄모 시장 근처에 있는데, 저녁 9시에 가기엔 위험한 곳이라 택시를 탔다. 바 수르에 도착하니 8시 반이었다. 우리가 1등이다. 순서대로 안내를 해 주는지,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들어온다.


바 수르는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장국영과 양조위가 나왔던 장면에 있었다고 한다. '해피투게더'를 보지 않았기에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에 가면 그래도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대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바 수르의 내부, 그리고 공연


말 그대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공연에 시작하기도 전부터 설렘 가득하다. 종업원의 추천을 받아 와인도 시켰다. 이 곳에서 마신 와인은 너무 맛있었다. 역시 좀 전에 간 레스토랑과 차원이 다르다. 아까 먹은 고기가 성에 차지 않았던 우리는 엠파나다와 피자도 추가로 시켰다. 하루에 거의 네 끼를 먹는 듯 한 우리.


공연은 연주-노래-탱고-연주-노래-탱고... 순서로 거의 무한 반복이 되듯 이어졌다. 눈 앞에서 보는 연주는 너무 아름다웠다. 피아노 연주자 할아버지는 연세가 적어도 80세는 넘었을 것 같았는데, 오랜 세월 음악을 해오던 그 아우라 만으로도 무대가 가득찬다.


노래는 두 분에서 부르셨는데 남자 분은 기타에 노래를, 여자 분은 노래에 연기를 하였다. 밤 12시가 넘어갈 즈음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선택해서 부를 수 있었던 것인지, 노래 스타일이 확 바뀐다. 갑자기 뮤지컬 노래같은 것을 하며 대사와 연기까지 깃들인 무대를 선보였는데, 앞에서 불렀던 구슬픈 탱고 풍의 음악을 노래로 하던 때와 달리 더욱 행복해보였다. 


탱고는, 역시나, 너무 아름다웠다는 말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무용수들인 음악을 마음으로 느끼며 탱고를 추고, 그걸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행운이 내게 있음에 감사했다. 중간에 약간의 실수도 하였지만, 실수를 만회하듯 미소짓는 모습조차도 탱고의 일부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네 개의 발이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지만, 절대로 부딪치지 않는다. 숨결 하나, 손짓 하나에도 애절함과 아슬한 숨막힘이 깃들어 있다. 특히 여성 무용수의 손 끝으로 남성 무용수를 쓰다듬는 장면은 아찔했고, 남성 무용수가 공연 시작 전에 여성 무용수에게 비쥬를 하며 잘 부탁한다는 인사조차 탱고의 일부인 듯 보였으며, 그 모든 순간들이 내겐 숨을 쉴 수 없는 황홀함을 선사했다. 탱고를 추다 보면 여성과 남성의 얼굴이 거의 맞닿을 것 같은 장면들이 종종 나오는 데, 그 마주보는 눈빛이 너무 강렬했다. 


무대가 끝날 때마다 쉬는 시간이 조금씩 있는데, 탱고 무용수들이 돌아다니며 탱고를 하는 포즈로 사진을 찍어준다. 나는 그 포즈는 라 보카의 무용수와 찍었으니, 그냥 함께 서서 사진을 찍어주길 요청했다. (사실 탱고 여자 무용수 언니가 너무 예뻤기 때문에). 물론 그 사진은 나만 간직하기로 한다. 무용수들 사이의 오징어가 있는 듯 하여. 


아침형 인간이라 저녁 10시만 되어도 졸음을 참을 수 없는 나지만, 이 공연을 보는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했기에 저녁 9시부터 새벽 1시 반까지 그 곳에서 공연을 보며 남아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전에 본 공연의 여운이 아스라히 남아있다. 과연 잠에 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황홀했던 시간이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정말 황홀하게 불태웠다고 자부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사랑에 빠질 확률,

누가 뭐라해도, 백 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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