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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5. 2023

#29. 부에노스아이레스, 그 잔잔한 마지막

마침내 마지막 날 아침이 밝고,

대망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정확히 헤아려보는 타입은 아니지만, 한 달 하고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른 듯하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조금은 설레기도 하지만 이곳을 떠나려니 아쉬운 마음이 더 큰 것은 사실이다. 이제 돌아가면 이 호사와 한량의 생활을 모두 접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단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기 전에 아침으로 마지막 소고기를 즐기고 가기로 한다. 아침부터 소고기에 와인까지 먹었다. 한국에서는 소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던 나였지만, 이곳에서는 하루 세끼의 소고기를 먹어도 지겹지 않다.   


소고기, 그리고 남은 파스타까지


맛난 꽃등심을 또 한 번 먹고 나서 남은 파스타까지 남은 소갈비 양념 소스에 넣어 먹었다. 아침부터 마지막 포식을 즐긴다. 그리고 허둥지둥 퇴실시간에 맞춰 짐을 챙겼고 오후 1시가 되어 서둘러 나갔다. 아직 공항에 갈 시간까지는 8시간이나 남았다. 배낭을 메고 왔기에, 무거운 짐 가방을 앞뒤로 메게 되었다. 그 상태로 세 블록쯤 걸으니 나오는 스타벅스. 제일 만만한 스타벅스에 죽치고 앉았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커피를 시킨 뒤, 두세 시간가량 각자 핸드폰을 하며 지겨운 시간을 보내고 오후 4시라는 조금 이른 시간에 우버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있던 팔레르모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공항까지는 거진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마지막으로 만난 우버 기사님은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분은 한 시간 넘는 거리를 가면서 우리에게 짧은 영어로 막 말을 걸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우버에서 이름을 'Katherine'으로 쓰고 있었는데 나보고 미국인이냐고 묻는다. 미국인으로 보기엔 너무 한국스러우나, 전혀 몰랐겠지. 한국인이라고 말해준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느리게라도 할 말을 다 한다. 모를 때는 번역기까지 써가면서. 내가 아저씨에게 영어 잘한다고 예의상 칭찬을 하니까 막 신나 하신다.


아저씨에게 영어를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더니 International Convention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뭔지 몰라도 국제적으로 일하신 것 치고는 영어실력이 많이 없으시다고 느낀다. 역시 스페인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언어 중 하나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남미에 놀러 오면 단어마다 끊어서 말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 그래도 부족한 내 영어실력이 더 줄어드는 느낌이다.


아저씨가 번역기로 들려주길, '나는 한국이 빠른 시일에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에 경외한다. 분명 5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못살았는데 지금은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되지 않는가. 정말 진심으로 대단한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나라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표현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에 나는 더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들으실 것이기에 속으로만 생각하고, 고맙다고 간단히 말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공항 도착했다.


우리는 그나마 좀 싸게 가기 위해 에티오피아 항공을 타기로 예약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줄이 너무 심각하게 길다. 늦게 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1시간 30분 이상을 서 있으니 우리 차례가 온다. 별다른 구경할 것이 없는 공항. 알파호르만 조금 구매한 뒤 비행기에 탑승했다. 근데 갑자기 잘 가다 말고 브라질에 멈춰 내린다. 나랑 K가 순간 눈이 띠용, 했다. 거기서 브라질에 내릴 사람들을 내려주고는 갑자기 청소를 시작하는 직원들. 진짜로 나는 내가 꿈꾸고 있는 줄 알았다.  


당황스러운 장면


우리는 브라질에서 멈추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 비행기에 그대로 에티오피아까지 가는 사람들을 태운 후 16시간을 타고 낯선 아프리카의 땅에 내렸다. 언젠가 아프리카를 꼭 가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는 나였기에 잠시 경유하는 단지 공항일 뿐이었지만 왠지 모를 설렘이 있었다.


3시간 대기하는 동안 공항에서 뭐 좀 사려 했는데, 아프리카가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물가가 우리나라의 3배는 넘는 듯하다. 아니, 여기가 인플레이션이 이 정도로 심한 곳이었구나. 당연히 우리나라보다 모든 것들의 가격이 저렴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편견이 무참히 깨져버린 순간이었다. 결국 아프리카 커피만 사서 나왔다. 팔찌 하나도 예전에 내가 라오스에서 200원 주고 산 것들과 똑같은 모양이 여기서는 8000원을 호가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대기 후 이제 진짜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로 들어왔다. 에티오피아 항공은 놀랍게도 저렴한 가격임에도 비행기 상태도 너무 괜찮고 연착도 잘 안 되는 듯하다. 어떤 사람들 이야기를 보면 기내식이 별로라는 말도 있었지만 나는 무척 맛있었다. 그거야, 난 가리는 음식이 없으니깐.   


그렇게 다시금 12시간을 다시 날아 한국에 드디어 도착했다. 한국의 2월의 공기는 이랬구나. 공항을 밟는 순간 익숙한 글자와 사람들의 얼굴과 건조하면서도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오랜 비행이라 지쳤음에도 한국 땅의 공기 한 모금으로 그 피로가 싹 풀린다. 이제 진짜, 한국이다.





남미에서의 여행은 힘든 일정들도 물론 많았지만, 그 과정들이 모두 나를 성장시키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남미에서 느끼고 배운 그 모든 기억들을 마음속에 평생 간직하고 살고 싶다.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마음과 삶을 열정적으로 즐기는 태도. 인생이 한  더 성장한 기분이다.


남미를 여행하는 내, 아직 내 길을 정하지 못한 내 스스로에게,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 수없이 많은 시간들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수많은 순수하고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젊고, 뜨겁고, 의롭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이 여행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마음이 잊혀 갈 때 즈음이면 다시 내가 남긴 글들을 읽어보며 또다시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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