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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Feb 14. 2023

#27. 부에노스아이레스, 그 잔잔한 여행

남미에서 만들어 먹는 소갈비찜의 행복

이번 남미 전체 일정에서의 마지막을 사흘 앞 둔 아침이 밝았다. 우리의 오늘은 쇼핑데이로 정했다. 한국에 기념품 겸으로 들고가기 위해 어제 먹었던 알파호르를 사고, 백화점을 갔다가, 한인마트로 가서 소갈비 양념을 산 뒤 소갈비를 해 먹는 여정이다. 처음에는 외국인 친구들을 두세 명 정도 초대해서 한국의 소갈비찜을 맛보여줄까 했으나 예산 부족인 관계로 포기했다. 우리끼리만 그 행복을 맛보기로 한다.


알파호르는 오벨리스코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곳에서 기념품으로 꽤 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은 마테차를 항상 들고다니며 마시는데, 혹시나 그렇게 먹을 수 있는 마테차가 있을까 하여 여기서 가장 유명한 백화점을 갔는데 그저 옷만 파는 진짜 백화점이었다. 결국 마테차는 사지 못하고 나왔다.


다음 일정은 소갈비찜을 위한 쇼핑 일정이다. 한인마트를 가기 위해 우버를 잡았다. 요즘은 피로가 쌓여서 그런가 조금만 걸어도 금방 피곤해진다. 정말 한국 돌아갈 때가 되긴 했나 보다, 싶다. 그렇게 우버를 타고 한인 타운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우버 운전자가 돈을 내란다. 아니, 카드로 이미 냈다구요. 처음에는 이 아저씨도 사기를 치는 줄 알고 계속 말했는데 우버 운전이 겨우 4번째인 이 아저씨는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현금을 주기 전까지는 못 간단다. 영어도 못하는 아저씨라 번역기로 돌리면서 옥신각신 10분을 넘게 했다. 


결국 그냥 나중에 우버 회사에 문의를 남겨놓기로 하고, 그냥 현금을 더 주고 내렸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대화도 안되는 언어로 대화하느라 멘탈이 탈탈 털렸다. 그러고 나서 터덜터덜 걷는데, 한인마트는 또 대체 어딨는건지. 그렇게 20분을 하염없이 걸었다. 우버를 타고 온 의미가 없어질 때 즈음, 열린 한인마트가 보이기 시작한다. 


위험한 동네라 해서 경계를 가득 하려고 했지만 이미 피곤해진 정신 상태였기에 누가 훔쳐간다 해도 대항할 힘조차 없었다. 그래도 한인마트를 발견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안에 들어갔으나 현금이 부족해 딱 소갈비 양념만 살 수 있었다. 밥이나 무 같은 건 현금 예산 부족이었다. 결국 나머지는 구경만 하고 나와서 다시 우버를 타고 집 근처 마트로 향했다. 와인과 소갈비찜에 넣을 채소들을 사서 돌아왔다. 아침부터 핏물을 빼기 위해 담궈둔 고기에 커피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핏기가 빠지고 슬슬 자태가 나온다.  


소갈비찜의 전과 후!
마지막에 파스타면도 넣어 보았다


나쁜 기름을 걷어내고 찬 물에 씻은 후, 손질한 양파, 감자, 당근 등과 소갈비 양념을 집어 넣고 푹 끓였다. 끓는 동안 우버 회사와 연락을 시도했다. 우버는 참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사정을 묻고 답변도 바로바로 해준다. 근데 이번에는 돈을 돌려주지만 다음부터는 추가로 돈을 낼 거면 증명을 위해 카드를 써 달란다. 돌려준다니 감사하지만, 남미에서 카드를 쓸 수 있을까요, 우버 택시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국 돈을 받기로 했다. 우버,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버와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 소갈비찜이 완성되었다. 남미에서 느끼는 한국의 맛이란, 정말 최고였다. 이 소갈비가 단 돈 만원도 하지 않는다. 물론 양념값은 제외하고.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소고기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여기 온 뒤로 소고기를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와인도 마찬가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이 주는 맛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입맛이 바뀌어서 좋아하게 된 것일까. 아마 한국에 돌아가보면 알게 되겠지.


소갈비찜에는 당면이 필수라 생각하지만, 여기선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파스타 면을 삶아서 넣어 보았다. 소갈비 파스타, 처음 만드는 메뉴지만 이것 마저도 맛있다. 한국의 소갈비찜 양념만 있으면 맛이 없는 음식이 있으랴. 원래는 밤에 밖으로 나가서 맥주 한 잔 하려고 했는데, 너무 배가 불러서 방에서 그냥 쉬기로 했다. 별로 한 것은 없지만, 입 만큼은 행복했던 하루가 또 이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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