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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Nov 16. 2023

#1. 엄마와 딸의 로마 여행일지

엄마와의 자유여행은 처음이라,

2023. 7. 28. 2~3년 간 몸 담았던 경찰 이라는 직업을 그만 두게 되었다. 다른 공부를 좀 해보려고 마음 먹었는데 그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여행을 가기로 다짐했다.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곳을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최종 후보 중 호주와 이탈리아가 남았는데 같이가자는 엄마의 말에 마침 동행이 없던 나는 오케이-했다. 그러나 엄마를 모시고 가려면 호주보다는 이탈리아가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 편하기도 했고, 엄마는 매번 엄마 입으로 '나는 도시 여자라 도시가 좋다'고 말해왔으니까. 그렇게 목요일에 비행기표를 끊고, 그 다음주 수요일에 별다른 계획 없이 갑작스러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배낭 여행은 배낭이 생명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배낭을 메고 다녔었다. 항상 한 두달의 긴 여행을 다녔던 나였기에, 이번에도 내가 사랑하는 내 빨간 배낭을 메려고 보니, 2주만 가는 것에 비해 너무도 큰 가방이라고 느껴졌다. 어릴 때는 무모하게 메고 다녔을지 몰라도, 서른을 앞둔 나에게는 내 덩치보다 큰 가방이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전세계에의 추억이 담긴 빨간 배낭과 반짝반짝 빛나는 내 몸에 맞는 한 치수 작은 파란색 배낭을 왔다갔다 들어 보면서, 결국 여행 당일 아침까지 고민한 끝에 파란 가방을 메기로 했다.


그렇게 캐리어를 든 엄마와 파란 배낭을 멘 내가 드디어 공항으로 출발했다. 엄마와 단 둘이서 공항에 간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7년 전 즈음인가, 내가 대학을 휴학하고 회사를 다닐 때 엄마와 함께 캄보디아로 여행다녀 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도 잠시, 오랜만에 13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려니 온 몸이 쑤신다.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기내식에 대한 기대와 도착지에 대한 설렘만 가득했는데 이젠 비행기의 그 좁은 공간과 시간이 힘들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기나긴 비행 끝에 드디어 로마 공항에 도착했다. 2016년도에 이탈리아를 홀로 여행한 이후로 약 7년만에 오는 곳인데, 꽤나 많이 바뀌어 있다. 뭐랄까. 훨씬 더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가 된 것 같았다. 물론 7년 전 내 기억이 흐릿해서 전혀 바뀐 게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기분은 그랬다.


도착시간이 현지시간으로 저녁 9시 경이었는데, 어릴 때의 나였다면 돈을 아끼기 위해 내 목숨을 담보(?)로 시내로 가는 버스나 기차를 이용했겠지만, 엄마를 모시고 가는 입장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엄마는 나보다 부자였기에)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기로 했다. 좋았던 점은, 시내까지 택시비가 고정적으로 50유로였다는 것이다. 종종 어느 나라나 그렇듯, 사기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들었으나, 친절한 기사 아저씨가 무조건 고정이 50유로라고 우리가 말하기 전에 먼저 설명해 주셨다. 역시나 모두가 사기꾼은 아닌 듯하다.


처음에 가기로 한 호텔이 '더 리퍼블릭호텔'이었는데, 아저씨와 의사소통의 오류가 있어 다른 곳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은 얼핏 보기에도 매우 크고 좋은 5성급 호텔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앞에 도착하니 도어맨이 택시 문까지 열어주었다. 그러나 그런 휘황찬란한 곳이 아님을 알았기에, 내가 찾은 구글맵을 알려주니 아저씨가 너무 미안하다고 하며 다시 데려다 주었다. 얼마 전에 그 호텔이 이름을 바꿔서 헷갈렸다고 한다. 그렇게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이전에 어디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이탈리아에서는 무조건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눈을 맞추며 말하라던 이야기를 들어서 아저씨의 미안함이 가득 담긴 두 눈을 마주하며 '돈 워리. 그라치에 밀레(매우 감사합니다)'를 외쳐주고 숙소에 들어왔다. 소박하고 적당한 위치의 평범한 호텔. 그래. 이 곳이 엄마와 내가 앞으로 며칠 간 묵을 숙소였다. 다행히 숙소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안에 들어가보니 작지만 매우 깔끔한 곳이었다. 드디어 씻을 수 있었고, 씻자마자 바로 단잠에 빠져 들었다.




나는 머리만 대면 잘 자는 편이라 어디를 가든 시차적응을 꽤 잘 하는 편이었기에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새벽 4시 즈음이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시간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는데, 엄마는 새벽 1시부터 눈을 떠서 잠을 못 주무셨다고 말했다. 고통스러워 하는(?) 엄마와 함께 오늘 갈 일정에 대해 논의하였다. 첫날은 'Get your guide'라는 어플에서 예약한 콜로세움+프로 로마노 투어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투어였으나, 여행을 너무 직전에 결정하였기에 오늘 날짜에 한국어 투어는 남아있지 않았고 가격도 훨씬 저렴했으며, 엄마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으니 조금은 알아듣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그 투어를 오케이 받은 것이었다.


그래도 미리 듣고가면 이해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투어 라이브'라는 어플을 통해 미리 콜로세움에 대해 엄마와 침대에 누워서 함께 들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다보니 우연히 발견한 어플이었는데, 일부 비용을 지불하면 한국인 가이드가 미리 콜로세움을 직접 돌아다니며 녹음해 놓은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새벽 4시부터 '투어 라이브'를 통해 콜로세움에 대해 공부하고 나니 어느 덧 조식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조식은 가짓수가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퀄리티가 좋았다. 특히나 마지막에 내려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 드디어 커피의 나라에 온 것이 실감났다.


오전 콜로세움 투어를 위해 숙소부터 30분 가량 걸어야 하는 콜로세움으로 갔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첫날이라 아직 체력이 남아 돌아서 걸어가기로 했는데, 아침이라 날씨도 선선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가니 한 쪽만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받았고, 가이드 'Georgia'가 영어 투어를 시켜준다고 했다. Georgia는 이탈리아 현지 가이드였는데, 항상 느꼈던 것이지만 유럽 사람들은 영어를 할 때 본인들 언어와 융합된 특유의 발음이 섞여 있어서 알아듣기 조금 어려운 감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도 외국인들이 듣기엔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영어 특징은 말의 끝부분을 끌어 올리면서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엄마가 더 알아듣기 힘들다고 했다.


콜로세움에 다시 오다니,


Georgia는 예술사 박사과정까지 졸업하였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직접 인쇄해온 종이들과, 진심어린 설명을 들려준다. 함께 투어를 듣는 사람들은 우리 외에는 다 외국인들 이었는데, 그들은 Georgia의 설명 사이사이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우리나라는 질문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걱정하거나, 피해를 입히는 것일까봐 눈치를 보는데, 외국인들은 역시나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문화적 특성의 차이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부분은 배워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콜로세움을 구경하고 난 뒤에 프로 로마노로 이동해서 구경했는데, 솔직히 복원되지 않은 유적지를 구경하며 설명을 듣다보니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역시 나는 유적지와 건축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를 깨달을 뿐이었다. 재밌는 것은 엄마도 나와 비슷했다는 것이다. 역시, 유전자는 어디 가지 않는다.




투어가 끝나고,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Cantina e Cucina'라는 음식점이 맛있고 친절하다고 하여 그 곳으로 갔다. 가서 까르보나라와 마르게리타 피자를 시켰는데, 나는 괜찮았지만 엄마는 영 마음에 차지 않는 눈치였다. 짜고 뻑뻑하다면서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짤 중에서, '부모님 여행 10계명'이 있는데, 그 중 세 번째 항목인 '음식이 짜다' 금지를 외치고 왔었어야 했나보다. 추가로 곁들여 먹는 맥주도 각자 한 잔씩 시켰는데 다행히도 엄마가 지금껏 마신 맥주 중에 최고라며 맛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배부르게 밥을 먹고, 나보나 광장으로 걸어가서 사진을 몇 장 찍고선, H&M으로 갔다. 내가 한국에서 새로 산 청바지를 들고왔는데 입고 돌아다니다 보니 너무 커서 벨트를 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엄마도 덥다며 반팔 티셔츠를 한 두개 정도 사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H&M에 갔으나, 정말 입을 옷이 없다. 한국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너무 작아보이거나 너무 없어보이거나였다. 겨우 찾은 벨트만 하나 건지고 그냥 나왔다.


그렇게 나와서 스페인계단을 구경하러 갔다. 15년 전 즈음에 엄마와 패키지 여행으로 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 비해 정말 관광객들이 많았다. 원래 그 곳에서 젤라또를 먹어줘야 '로마의 휴일'이 완성될텐데, 사실 너무 지쳤고 사람도 많아서 젤라또는 패스하고 우선 숙소로 돌아가 잠시 쉬기로 했다. 숙소까지는 걸어서 30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아침에 나올 때와는 달리 다리가 너무 아파 지하철을 이용해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이탈리아에서의 첫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스페인 계단


가까운 지하철을 찾아 들어가려는데 입구가 막혀있었다. 지하철 입구가 여기인데, 왜 막혀있지?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조금 있으니 지하철 입구가 열린다. 지하철 내부가 컴컴해보이는 게 괜스레 무서웠지만 다리가 너무 아파 더이상 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결국 입구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내려가보니 엘리베이터만 있었다. 일단 타고 내려가든 올라가든 하면 지하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엘레베이터를 한참 기다려서 엄마와 나, 그리고 외국인 커플 두 명이 함께 타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한참을 지나도 내려가는 느낌도 없고 문도 열리지 않는 것이다. 엄마가 약간 당황하며 여기저기 버튼을 누르니 외국인 커플도 당황하며 '왜이러지?'라는 말을 하는데, 그렇게 서로 당황하고 쳐다보는데,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가 한 층을 내려가는데 너무 느린 것이었다. 결국 우리 네 명 모두 어이없고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우리 숙소는 테르미니역에서 도보 5분 내에 있었기에, 지하철을 타고 테르미니역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숙소로 들어가면서 간단히 마실 물과 저녁도 해결하자고 해서 테르미니역 안에 있는 'Conad' 마트에 갔다. Conad는 우리나라로 치면 롯데마트 같은,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마트다. 다들 과일을 꼭 먹으라는 말이 있어서 마트에서 과일을 몇 개 사는데 무게를 잰 후 어떻게 태그를 붙이는 지 몰라 한참 애를 먹었지만, 엄마가 '과일 박스에 붙어있는 번호 좀 봐서 와봐'라고 하여 그 번호를 입력했더니 자동으로 스티커가 나왔다. 내가 이제는 외국에서 과일 금액 스티커도 붙일 줄 안다며 소소한 것에 행복해 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니 나도 괜히 조금 기뻤다.


이탈리아 마트에서 과일을 사기 위하여..


아무튼 그 곳에서 저녁으로 먹을 스시, 과일, 맥주, 그리고 물을 산 뒤 숙소로 들어왔다. 복숭아, 사과, 자두 등의 다양한 과일을 한 두개씩 샀는데 과일들이 정말로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스시는, 정말 비추다. 한국에서도 마트에서 스시를 사먹으면 사실 맛있기 힘든데 당시에 엄마와 나는 무슨 생각으로 스시를 샀던 것일까. 태어나서 먹은 스시중에 가장 최악이었다. 밥은 딱딱해서 씹을 수 없고, 회만 건져 먹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이탈리아에서는 스시 근처도 안 갔던 것 같다. 그래도 역시나 맥주는 맛있었다. 여행 계획 기간이 너무 짧아서 어떤 맥주가 유명한지도 보지 못하고 왔었는데, 엄마가 가장 적게 남은 맥주가 유명한 맥주일 것이라는 명언과 함께 가장 적게 남아있는 맥주를 사 왔는데, 실제로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숙소에서의 간단한 한 끼를 해결하고, 하루만에 2만 걸음을 넘게 걸었던 엄마와 나는 각자 샤워가 끝나기 무섭게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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