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점에 들렀다가 생밤을 샀다. 꼭지에 보얀 털이 달린 이평밤이다. 어릴 떄는 싸락밤이라고 해서 유난히 작은 품종이 있었다. 제사에 쓸 밤으로 적합하지 않아서 한 솥 삶아 평상에 담아놓으면 동네 사람들이 오며가며 이빨로 턱 베어서 살을 조금 파 먹고 그냥 마당에 "툇"하고 뱉어버리면 그만인 밤이었다. 작은데도 맛은 달아서 할머니께서 칼로 깎아 주시기도 했다. 유난히 향기가 좋고 달았다. 그것들 중에 이평밤이 있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도 밤산이 있었다. 조상님들 산소가 흩어져 있는 산 서쪽에 밤산이 있었다. 추석 무렵 쯤 벌초를 하는 날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간 적이 있었다. 벌초를 다 하신 건지는 기억이 뚜렷이 없지만 아버지께서 가시가 아직 새파란 밤송이를 따서 낫으로 생밤을 까 주셨다. 지금 표현하자면 달보레한 부드러운 밤즙이 입안에 가득 번지면서 어린 밤이 그렇게 맛있을 줄 몰랐다. 그 맛이 평생을 간다. 밤이 나오기 시작하면 생밤을 까서 먹게 되었다. 제사가 끝나고 음복을 할 때도 밤에 제일 먼저 손이 간다. 아버지는 그 크신 손으로 그리고 낫으로 밤을 치셨을까? 나는 손이 크고 느려서 밤을 깎는 속도도 엄청 느리다. 낫을 다루는 아버지의 손이 예사로 섬세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 주려고 밤을 깎다보면 절반은 내 입으로 들어가 버린다. 생밤은 아버지에 대한 사라지지 않는 추억이다. 내가 잘 보살펴 드리지도 못하고 55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농사를 버리고 고모부의 밧데리 공장에 취직하셔서 나도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이 그때 무조건 고향을 떠나온 탓일지도 모른다. 친구가 보내온 밤을 살아 먹다가 우연히 생밤을 샀다. 그냥 사게 되었다. 올해는 고항동네에 자주 못가서 밤이 익었는지, 밤을 땄는지도 모르게 가을이 지나갔다. 그 달보레한 생밤을 까 주시던 아버지가 영원히 계시는 고향이 그래서 더욱 그립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