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아상
빵은 항상 다양한 맛이 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는 학교 앞 빵집에서 파는 미니 버거를 좋아했다. 반 자른 모닝빵 사이에 양배추와 당근으로 만든 샐러드가 들어있고, 원재료가 뭔지 알 수 없는 작은 고기 패티도 들어있었다. 여기에 사과맛 피크닉을 사서 아침을 대신했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 안에 있는 매점에서 파는 피자빵을 주로 사 먹었다. 1학년 때 800원이던 피자빵은 물가 상승률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인지 3학년이 됐을 때는 1500원이 되어있었다. 아무튼, 뭉게구름이 생각나는 빵 모양에 그 위로 토마토소스랑 고구마 무스가 발라져 있었다. 양파 맛도 조금 났던 거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고구마 무스가 맛있어서 매일 먹었다. 이때도 내 주 음료는 사과맛 피크닉이었다. 3학년 때는 피자 빵의 대란이 일어났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피자빵들이 많이 나왔다. 치즈가 잔뜩 들어간 피자빵부터, 정말 미니 피자를 연상하게 하는 피자빵까지 나를 유혹하는 수많은 피자빵들이 등장했지만, 나는 끝까지 고구마 피자빵을 고수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당연하게 빵보다 햄버거를 더 자주 먹었다. 햄버거를 먹으면 빵도 먹고 채소도 먹고 단백질까지 섭취할 수 있는데 굳이 빵만 먹을 필요가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작년, 아니 재작년쯤부터 입맛이 변한 건지. 빵집에서도 쳐다본 적도 없던 빵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루아상, 바게트, 식빵이다. 이런 심심한 맛들을 누가 먹지 했는데 내가 먹고 있다. 식빵에 잼도 안 바르고 먹는 게 더 맛있고, 크루아상은 빵집에 가면 필수로 담는 빵 중에 하나가 됐다.
크루아상의 변신은 무죄라 했다. 그렇게 크루아상은 크로플이 됐고, 생딸기 생크림 크루아상이 되었다. 이게 끝일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을 깨준 곳을 만났다. 크라상점. 처음에 인터넷으로 접하게 됐는데 서울에 있어서 절대 못 가겠구나 싶었다. 전국의 크루아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었는지 점차 장소를 넓혀갔다. 그러다 바로 옆동네까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친구와의 약속이 잡히기를 기다렸다.
약속이 잡히고 바로 크라상점을 얘기했다. 일정에 무조건 넣어달라고 했다. 제발 꼭 가자고 빌었다. 그렇게 간 곳은 나만의 파라다이스였다. 크루아상의 종류가 18개나 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을 했다. 이곳의 장점이자 단점은 크기가 작다는 점이다. 많은 종류를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크기라서 다양하게 골라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크기가 작아서 먹을 때 살짝 아쉽다는 단점이 있다.
사려고 생각해 둔 게 없어서 고민이 많이 됐다. 다행인 점은 지금 가면 텅텅 비어있어하는 시간에 갔는데도 종류별로 다 남아 있어서 편하게 고를 수 있었다. 10개에 9,900원을 맞추기 위해 10개만 살 생각이라서 신중하게 고민했다.
일단 오리지널은 무조건 하나 챙겨야 한다. 민트 초코도 맛있어 보이고, 마약 옥수수도 콘치즈의 다른 말인 거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다 몇 가지를 골랐다. 처음에 말한 오리지널 하나와 생크림, 인절미, 누텔라, 메이플, 티라미슈, 갈릭 크림치즈 이렇게 골랐다. 생크림, 인절미, 메이플을 2개씩 골랐다. 솔직하게 말하면 민트 초코도 너무 먹고 싶었는데 내가 민트 초코를 고를 때 친구가 기겁을 했다. 아니? 저걸 고른다고? 하는 말과 극혐이라는 표정을 보여줬다. 내려놓고 인절미 하나 더 고르니 그렇지 이게 맞지 라며 인자한 미소를 보여줬다.
집에 와서 오리지널부터 하나 입에 넣었다.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반이 사라졌다. 한입 먹은 단면에서도 볼 수 있는 크루아상의 특징이 좋다. 역시. 이 맛이지. 겹겹이 쌓인 반죽들은 씹을 때마다 잘게 부서진다. 오리지널도 이 정도인데. 다른 건 말해 뭐하나. 메이플을 먹었다. 오리지널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겉에 메이플 시럽이 발라져 있다. 실온에 둔 메이플 시럽은 살짝 딱딱해져서 특유의 겉은 바삭함을 더 살려주고 달달함을 극대화시켜줬다. 2개 사길 잘했다.
그 외에도 또 사 먹으라면 나는 갈릭 크림치즈를 사 먹고 싶다. 친구가 추천해줘서 고른 거라 기대가 조금도 없었다. 크루아상 위에 절편 모양의 크림치즈가 올려져 있다. 조금 귀엽다 생각했다. 한 입을 먹고 오래오래 씹었다. 맵싸한 마늘향이 아닌 마늘빵에서 느낄 수 있는 달달한 마늘의 향이 씹을수록 퍼진다. 이걸 2개 사야 했는데 왜 하나만 사는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
10개 중 2개 산 것들은 언니와 나눠 먹었다. 생크림이랑 인절미를 나눠줬다. 솔직히 둘 다 내가 먹고 싶었는데 꾹 참고 나눠먹었다. 언니는 인절미를 먹자마자 와. 미친. 이거 뭐야?를 숨도 안 쉬고 얘기했다. 작은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보고 연신 고맙다고 했다. 언니의 최애는 인절미 크루아상이었다. 인절미 크루아상은 겉에 인절미 가루로 덮여있다.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고 한입을 먹는 순간 안에 인절미 크림이 빵과 함께 조화롭게 씹힌다. 인절미의 그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겉면의 가루와 속의 크림으로 함께 느낄 수 있다. 언니가 왜 인절미를 먹고 그토록 작은 눈을 크게 키웠는지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생크림도 나눠 먹었는데 그냥 오리지널에 생크림 넣어서 먹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빵은 생크림에 찍어먹으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다른 것들이 맛있어서 상대적으로 괜찮네, 정도의 반응이 나왔지만 우유 크림의 달달한 맛은 항상 빵과 잘 어울린다. 윗면을 반으로 가르고 생크림을 넣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즐길 수 있다. 티라미수도 생크림이랑 비슷한데 티라미수 가루가 전체적으로 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티라미수가 더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누텔라. 마지막에 써서 누텔라가 제일 맛있는 건가 싶겠지만, 그냥 맛있는 것부터 쓰다 보니 누텔라가 마지막에 남았다. 그렇다고 누텔라가 제일 맛없다. 이것도 아니다. 누텔라는 항상 옳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빵과 누텔라의 조합은 살찌기 가장 쉬운 조합이 아닐까 싶다. 생긴 모양으로는 누텔라가 가장 맛있게 보였다. 초코를 핫도그에 케첩 뿌리듯이 뿌려놨다. 2종류의 초코인지 색이 다른 2개의 초코가 뿌려져 있어서 더 맛있어 보인다. 살짝 굳은 누텔라와 속이 촉촉한 빵을 같이 한 입 크게 먹으면, 행복이 따로 없다. 누텔라도 정말 맛있었다.
다음에는 못 먹어 본 마약 옥수수와 민트 초코 등 다 쓸어와서 하나씩 맛볼 것이다. 그때는 사진도 같이 넣어야지. 먹느라 바빠서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