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시간 활용_1
보통은 19살 수능을 마치자마자 운전면허를 딴다는데 나는 운전 절대 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여태 안 따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돈이 있을 땐 시간이.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어서 운전면허를 따기 망설여졌다. 왜 면허는 빨리 딸 수록 좋다고 하는지 학원비를 보고 알았다. 19살 때 50만 원선이던 학원비가 이제는 7~80만 원을 그냥 넘어간다.
그렇게 2n살. 백수가 되고 나서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을 알아봤다. 돈 없는 백수한테 운전면허 전문 학원을 다니는 건 사치였다. 그래서 시뮬레이션으로 연습하는 학원과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보는 법을 알아봤다. 원래라면 첫 시험은 현장 접수를 하는데 코로나로 온라인 접수가 가능했다.
내 운전면허 시험 과정을 말하자면,
운전면허 교육을 필기시험 전에 필수로 들어야 한다. 원래는 교육을 신청하고 들은 후 현장에서 필기시험을 바로 접수하고 보는 방식이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온라인 접수가 가능해서 교육 신청할 때 2시간 정도 텀을 두고 필기시험도 같은 날 신청했다.(21년 10월 기준) / 결과적으로 한 번에 필기는 90점인지 80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붙었다. 기능도 2주 정도 매일 학원에 나가서 연습해서 한 번에 붙었다. 기능까지 붙으면 연습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 연습면허를 가지고 연습하려는 차량에 [주행 연습] [초보운전]을 붙이고 한 달 동안 학원과 병행하며 연습했다.
그렇게 도로주행 시험 전날이 빠르게 찾아왔다. 점심으로 시리얼을 두유에 말아먹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내일이 벌써 도로 주행하는 날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한 달 동안 연습했기 때문에 코스는 감으로 다닐 정도로 외웠지만 실제 차를 운전할 생각에 벌써 떨린다.
한 번에 따자. 한 번에. 학원에 도착해서 A, B, C, D 코스를 1번씩 돌고 혹시 하는 생각에 제일 약한 B코스를 두어 번 더 돌았더니 예약한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학원을 나서기 전 내일 시험이라고 떨려서 토 나올 거 같다고 과장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진지하게 ‘여기 아래 내려가서 소방서 왼쪽에 약국 있어요. 거기서 청심환 사서 내일 시험 보기 전에 먹고 가요. 거기 약국이 제일 싸니깐 꼭 거기서 사서 먹어요.’ 라며 꿀팁을 알려주시면서 응원해주셨다. 선생님의 응원에 힘입어 자기 전에 코스가 나와 있는 동영상을 쭉 보면서 다시 한번 감을 잡았다. 진짜 떨려 죽겠다. 언니 나 잘할 수 있겠지? 옆에서 시큰둥한 언니를 붙잡고 떨린다. 떨린다. 만 반복했다.
대망의 도로주행 날이 밝아 왔다. 언니 차를 얻어 타고 가는 길에 청심환을 지금이라도 사서 먹어야 하나 고민이 들었지만 이미 차는 출발해서 돌이킬 수 없었다. 시험장으로 가는 길이 평소보다 짧게 느껴졌다. 1시간 거리를 40분 만에 끊은 언니 덕분이다.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접수하러 들어갔다. 체온을 재고 QR코드도 찍고(21년 12월 기준) 번호표 없이 줄 서서 내 차례가 왔을 때 수험표를 냈다. 한참을 키보드를 두드리던 접수원이 말을 걸었다.
“오늘 8일이에요.”
뜬금없는 오늘 8일이에요. 너무 당연한 말에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네, 오늘 8일이요.’ 하고 대답했다. 컴퓨터도 있고 핸드폰도 있으시지만 날짜를 잘 모르시나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 말씀하셨다.
“오늘 접수하신 거 맞으세요?”
당연한 말에 당당히 대답했다. ‘네! 8일이요.’ 내 대답을 들은 접수원이 컴퓨터와 수험표를 번갈아 보면서 숫자를 입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불안해졌다. 어, 설마. 아니겠지.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을 켰다. 도로교통공단 시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개인 보안 인증을 마칠 때쯤 다시 접수원이 ‘7일에 신청하셨네요.’ 하셨다.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목소리가 커지는 줄도 모르고 대답했다. 네?
“어제, 7일로 신청하신 거, 불참하셨네요.”
당황스러운 소리에 보안 인증을 마치고 접수 현황을 봤다. [응시일자 2021-12-07 불참.] 어, 그럼 저 지금 못 보나요? 시험 못 보나요? 당황해서 말이 멈추지 않았다. 커진 목소리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기다리던 언니가 점점 커지는 목소리에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니, 어제였다는데? 시험날짜가? 어제래 나 분명 오늘로 했는데 어제래. 뭐야. 어쩌지? 언니한테도 쉬지 않고 말을 하고 있을 때 접수원이 ‘오늘 1시도 있는데 접수해드릴까요?’ 물었고 다행히도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험을 기다리는 동안 속으로 제발 A 아니면 C 아니면 D 나와라 제발 B는 나오지 마라. 제발 B 금지 B 안 돼. 라며 빌었더니 하늘이 감동을 했는지 B코스가 걸렸다. 뒷자리에 앉아서 먼저 하시는 분을 구경하면서 속을 달랬다. 속만 달랬다고 정신이 삐졌는지 평소에 하지도 않는 일들을 했다. 사이드 브레이크 올려두고 출발하기, 전진기어 놓으려다 후진기어 넣기와 같은 치명적인 실수. 아직도 내가 어떻게 실격 안 하고 면허를 땄는지 신기하다. 한 번에 붙자고 염불 외우듯 빌었는데 결국 돈을 2번 내서 2번 만에 붙은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