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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할배 Feb 15. 2022

김일성 눈깔빼기

돌아보면 언제나 부끄럽다 #3

겨울 추위가 풀리면서 무너졌나보다. 엉성하게 쌓은 축대들은 여기저기 돌무더기를 만들었고, 우리는 사흘째 축대 쌓는 일에 동원되었다. 나중에 보니까 우리 후임 대기병들이 또 같은 곳에 축대를 쌓고 있었다. 어쩌면 대기병들이 일에 치여 딴 생각 못하도록, 일부러 허물고 쌓는 일을 반복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옆에서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하는 7중대 훈련병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축대를 쌓던 허리를 잠시 폈다. 그들의 모자에는 삼각형 훈련병 표지가 달려 있었다. 우리는 대기병 신분- 내일이면 우리도 달 텐데 그 삼각형 표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작대기 하나 이병은 할아버지처럼 높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흘이 지나자, 이제 우리도 축 쌓는 일에서 해방이 되었다. 대기병에서 훈련병으로 승급된 것이었다. 모자에 자랑스런 훈련병 삼각형 표지를 달고 하루 종일 뛰는 일이 계속되었다. 5시 40분쯤 기상하여 침구 정리하고, 6시에 일조 점호를 마친 뒤 간단한 아침 청소, 그리고 식사한 뒤 8시 반 정도에 2km 떨어진 훈련장에 구보로 이동하여(기간병들은 이를 학과출장이라 함) 11시 50분까지 오전 훈련을 받았다. 13시부터 시작되는 오후 훈련도 다를 바 없이 그냥 제식 훈련, 사격연습, 총검술, 각개전투, 기합 등으로 그야말로 뺑이치는 하루하루였다.    


제식 훈련을 할 때면 늘 긴장이 되었다. 박자 관념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너무 긴장을 해서인가? 발이 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기식 분열 연습을  때였다.  훈련병이 연병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로 어깨총을  , '좌향 앞으로 '  , 발이 틀렸음 어느 정도 감지했을 때였다.    


"너, 개새끼 나와!"    


어리둥절해 있을 때 조교가 뛰어왔다. 우리 내무반장이었다. 다짜고짜 따귀를 올려붙이고 앞으로 끌고 나갔다. 군홧발로 정갱이를 몇 번 차고 내뱉았다.    


"연병장에는 지금 5명의 조교가 있다. 너 때문에 열이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용서해 준다는 사인을 모두 받아와! 뛰엇!"    


정갱이를 수차례 차인 뒤라서 절뚝거리며 첫 번째 조교에게 뛰어갔다.    


"어, 이 새끼 봐라. 내 사인이 너처럼 덜 떨어진 놈에게나 해 주는 건 줄 알아? 꺼져 새끼야."    


그는 사인 값을 내라며 지시봉으로 손바닥을 10대를 때렸다.


너무 부끄러웠고 내가 불쌍했다. 조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물병장 한 명을 제외하고 따귀를 올리거나, 팔굽혀펴기를 시키는 등, 자신의 사인에 대한 댓가를 요구했다. 모두 10대거나 10번이었다. 이놈들은 숫자를 10밖에 모르는 놈들이었다.    


사람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한스러움은 마음에 깊이 새겨 두는 동물인가 보다.     


"고생이 많다. 나이도 많은 거 같은데, 다음부터 걸리지 마라." 하며


측은한 눈빛을 보내며 그냥 사인을 해 줬던 그 물병장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다섯 번째 사인을 해 주던 양 하사는 잊을 수가 없다.     


마지막 하나의 사인을 얻기 위해 찾았던 양 하사는 평소에도 내뱉는 욕이 무지막지하게 걸찍했던 사람이었다. 내무검사를 한 뒤 청소가 잘못되었다며 한바탕 욕을 한 후의 말에 정말 몸서리쳤었다.    


"개새끼들, 너희는 개와 마찬가지야. 니 놈들 몇 놈 정도, 눈도 깜짝 안 하고 패 죽일 수 있어. 살점 몽땅 발라내고 뼈다구만 확 추려 더블백에 묶어 집으로 우송시켜 버리겠어. 알겠어?"    


그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우린 그를 피하기에 급급했었다. 마지막 조교가 바로 그 양 하사였다. 떨렸다.    


"훈병 변○○, 양 하사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뭐야, 새끼야."    


'뭐'라는 음절에 힘을 주며,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경멸하듯이 내뱉았다.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사인을 구걸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너, 몇 살이니?"

"스물다섯입니다."

"그래.... 늦게 군에 와서 고생이 많구나. 여기서는 담배나 하나 피우고 가."    


눈물이 핑 돌았다. 입대해서 보름 만에 처음 들은 인간의 목소리였다. 마침 휴식 시간이라 담배 한 대 피우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소리 높여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대 피우래도. 담배 없니?"

"있습니다."

"그럼, 꺼내 봐."    


나는 화랑담배를 꺼냈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3 내무반 소속 훈병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집중되었다.    


"하나 물어. 불은 내가 붙여 줄게."    

내가 담배를 입에 물었을 때, 양 하사가 다시 말했다.    


"하나로는 모자라지. 두 개 더 꺼내서 입에 물어봐."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입에 세 개비를 물었다. 쉬고 있던 훈련병들이 더 집중해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 그래도 모자라네. 네 개만 더 꺼내 봐. 입에 두 개 더 물어. 입에는 다섯 개면 됐구. 두 개는 어떡하지? 아, 됐다. 코에도 구멍이 있네. 코에 두 개 끼워."


"불은 내가 붙여 줄게. 너 라이터 있니?"    


다정한 그의 말투가 소름 끼쳤다. 그는 담배 일곱 가치에 불을 붙이고, 갑자기 조교 말투로 바꾸어 지시를 했다.    


"지금부터 구령에 맞추어 담배를 피운다. 하나에 빨아들이고 둘에 내뱉는다. 하나 둘, 하나 둘..."    


30초도 되지 않아 담배 7개비는 모두 타들어 갔다. 당시 화랑담배에는 필터가 없었다. 내 입에는 담배 가루가 남은 채 깔깔하였고 하늘은 노랬다. 그는 다시 내 어깨를 감싸며 어조를 부드럽게 바꾸었다.    


"너 코끼리코 놀이할 줄 아니?"

"모릅니다."

"이 새끼 유치원 안 나왔어? 이렇게 하는 거야. 따라 해."    


그는 왼손으로 코를 잡고 오른손을 왼팔 사이로 집어넣는 동작시범을 보였고, 나는 그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어조는 또 바뀌었다.    


"늘어뜨린 오른손으로 왼쪽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내가 지시하는 속도로 뺑뺑이를 돈다. 알았나? 대답해 새끼야."


"넷, 알았습니다."


"실시. 5km, 10km, 30km... 어, 이 새끼 봐라. 빨리 안 돌아! 50km, 70km, 100km... "


"그만, 일어섯."    


하늘이 돌았다. 연병장도 돌았다. 어질어질하여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군인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적이 나타나면 박살 낼 수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 김일성 눈깔 빼기를 한다. 알아들었나?"


"지금 저기 김일성이 있다. 뛰어가서 적의 눈깔을 찔러라."    


언제 준비했는지 5m쯤 떨어진 곳에 한 훈병이 눈이 그려진 종이 한 장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비칠거리며 그 병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세 발짝도 가지 못해 나뒹그러지고 말았다.    


와~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서, 쉬고 있는 훈련병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연병장의 훈련병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으로 쏠려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없이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아직도 일부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고, 꽤 여러 명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중, 고교 3년 후배들이었다. 친분은 없지만 어쩌면 나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부끄러웠다. 죽음을 생각했었다. 숨을 곳이 없었다.    


양규○, 그는 제대 후 군대에서 자신의 알량한 권한을 맘껏 행사해 봤노라고, 고된 훈련에 지친 훈병들에게 웃음을 주었다고 우쭐거리며 자랑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격이 말살되어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음을 그 대가리로는 절대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깜냥을 넘어선 권한이나 권력은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무고한 사람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건 시대를 초월한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후기

그렇게 힘들게 받은 사인 다섯 개를 내무반장에게 제출했을 때, 그는 그 자리에서 찢었다.


"내가 이 따위 가져오라고 했어? 오늘 취침하기 전까지 반성문 3천 자 제출하도록. 글자 수가 모자라거나 넘칠 때는 개수에 따라 빳다를 맞는다. 가, 개새끼야."     


말 첫머리나 끝에는 접사처럼 따라붙는 말이 개새끼였다. 나는 그냥 '개새끼'였다.    

그날 난 쉬는 시간마다 반성문에 매달렸다. 소등을 하고 난 뒤에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후래쉬 불을 밝혔고, 12시가 넘어서야 내무반장실에 제출할 수 있었다.     

내무반장실에는 조교들이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뭐야?"

"반성문 제출하러 왔습니다."

"꿇어. 지금부터 글자 수를 헤아려. 실시."    


그들은 내용을 묻지도 듣지도 않았다. 하나 둘 헤아리는 소리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3천을 헤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었다. 667, 668, 670...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숫자를 헤아리다 보면 앞 숫자를 나도 모르게 헷갈린다. 그날 난 결국 3천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개새끼가 되어 지시봉으로 머리만 혹이 나게 맞았을 뿐이었다. 빡빡머리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이현○, 50년이 가까워지는데도 그 한스러운 이름은 잊히지 않는다. 나와 동갑이었으니 그 새끼도 살았으면 70이 되었겠구나.     





<< 그들은 타인에 대한 학대를 통하여 자신들의 생존을 확인하는 녀석들 같았습니다. 재미 삼아 때리며 술안주로 욕설을 내뱉는 것이 일상이 된 듯합니다. 하긴 그런 배설 행위가 없으면, 제멋대로 생활해 온 싸가지 없는 장정 상대의 3년이 너무 길긴 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소설가 이청준의 '공범'에서 김효 일등병의 선임 사살 행위의 개연성을 확인했던 경험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아직까지도 나 자신이 너무나 불쌍하고, 부끄러워서 글로 남기는 것을 무척이나 망설였던 아픈 기억입니다.     


군생활의 시작은 이렇게 공포 체험으로 시작되었고, 이런 운 없음은 쉽사리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폐쇄된 집단이 만들어낸 괴물이었고 새디스트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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