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언제나 부끄럽다 #4
사흘에 한 봉지씩 건빵이 배급되었다.
개수가 50여 개쯤 되려나? 조그만 몇 개의 별사탕도 함께 들어 있었다. 처음 배급받았을 때 출출하던 텃수라 한꺼번에 다 먹었는데, 다음 이틀이 너무 허전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었다.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다음 배급받을 때부터 나는 이 건빵 간식을 9 등분하였다. 관물대에 정돈해 놓은 훈련복 모든 주머니마다에 1/9의 건빵을 넣어 두고, 잘 지키진 못했지만 식사 후에 한 주머니씩 꺼내 먹었다.
훈련을 나가서도 내가 걱정하는 건 오직 하나였다. 혹시 잔류 병사가 내 건빵을 꺼내 먹지나 않았을지 하는 것이었다. 먹고 자고 훈련하고 기합 받고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쩌다가 취사장 사역병으로 차출되면 그건 행운이었다. 거기엔 누룽지가 쌓여 있었고 눈치껏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6주 동안 면회가 되지 않았다. 바깥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내무반에서 내 옆자리 권○○이는 중식 때 보면, 어떻게 구했는지 늘 새우젓을 티스푼 하나 정도씩 비닐봉지에서 꺼내 먹고 있었다.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그러나 먹어 보라는 말도 없었고, 좀 달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바깥에 연줄이 닿아 있는 녀석이 그때처럼 부러운 적이 없었다. 훈련이 끝났을 때 녀석은 카투사에 배치되었다.
먹는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고춧가루 몇 개 더 묻은 깍두기나, 소금국에 든 멸치 몇 마리 더 얻기 위해 배식 당번에게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은 건 어울리지 않은 애교팔이었다.
그 큰 냄비 같은 식기에 비록 뜬내 나는 밥이지만 그득하게(세 공기 분량) 먹었는데도 구보 한 번 하고 나면 배가 출출했다. 그 빵의 이름은 모르지만 무던히도 많이 먹었다.
중식을 빠르게 해치운 후 식기를 씻어 두자마자 달려가지만 PX에는 줄이 늘 길었다. 앙꼬도 조금밖에 들지 않은 팥빵이었다. 이 빵에 '아맛나'를 곁들이면 그 맛이 일품이었다. 입대해서 마음에 밝은 해가 뜬 유일한 시간이 PX에 줄 서 있는 때였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으로 매일 한정된 개수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입영 첫날 사제 물품을 내어놓을 때, 가지고 온 2만 원을 숨기지 않은 순진함이 너무나 한스러웠다. 빵과 아맛나
각각 30원씩이니 규모 있게 쓰면 남겨둔 3,000으로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계산은 계산일 뿐이었다. 월급날까지 일주일도 더 남았는데 남은 돈은 500원이 채 안 되었다. '한 번도 배부르게 먹어보지 못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중식을 먹자마자 뛰어나갔다. PX에 나보다 먼저 온 훈병은 두 명밖에 없었다. 남은 돈을 긁어 모아 빵 13개를 샀다. 수통에 물 하나 받아서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았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그 빵을 탐내는 녀석들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밥 한 그릇 다 먹은 상태에서 그 많은 빵을 다 해치우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물 먹고 빵 먹고 물 먹고 빵 먹고... 인간이 아니라 걸귀였다.
훈련소 생활이 끝나는 날, 입대해서 45일 만에 처음으로 목욕을 했다. 길게 줄을 지어 목욕탕을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가 나오는 행사였다. 첫 과정은 몸에 물을 묻히기, 다음은 비누칠하기, 마지막은 비누 씻어내기- 이것이 목욕이었다.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150명이 넘는 병력이 짧은 시간 내에 끝내야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목욕 후 비쳐 본 목욕탕 거울 속에는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건강색으로 검게 그을린 볼이 빵빵한 한 미련탱이가 있었다. 부은 것 같은 얼굴이 마치 사탕을 물고 있는 듯했다. 체중계에 올라서니 바늘이 휙 돌아갔다.
68kg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체중이 60kg을 넘었다. 입대할 때 55~56kg이었으니, 훈련받는 6주 동안 12kg 정도 불었던 것이다.
한 달 보름 만에 12kg이라. 참 많이도 쪘다. 60kg 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팥빵 덕분이었나 보다. 겨우 4,400원(이 중 1,400원은 훈련병 월급)으로 일궈낸 놀라운 소원 성취였다.
<< 인간은 사회계약이라는 굴레를 만들어 스스로를 그 속에 묶어 두고 필요에 따라 통제하지만, 본능까지 완전히 구속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은 또 윤리를 만들어 행위의 규범과 지침을 제시하지만 이 또한 상황에 따라 사치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혼자 숨어서 빵을 먹는 행위는 저급한 삶의 현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초적 몸부림이고 본능이었습니다.
공리주의 주창자 밴덤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택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같은 상황이라면 돼지를 선택합니다. 나에게는 식무구포 거무구안(食無求飽居無求安)을 군자의 전제로 삼았던 공자님 말씀도 무의미했습니다.
먹는 것에 이렇게 집착하여 좌고우면하지 않던 훈련병 시절의 내가 어쩌면 내 본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본능에 충실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특별한 경험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