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우할배 Feb 05. 2022

담임의 가정 방문

추억이 아름다운가요 #4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입니다. 지금은 기와집이 들어서 있습니다만, 우리 집 앞에 있는 **아재 집 자리는 논이었습니다.     

그 논두렁에서 모매(정확치는 않으나 나팔꽃 뿌리인 듯)를 캐서 옷에 대충 닦아 먹고 있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철길 옆 비탈진 오솔길을 내려오고 있는, 작달막한 키에 달랑달랑거리는 걸음걸이는 아무리 봐도 틀림없이 담임 박oo 선생님이셨습니다. 오늘따라 모매가 잘 찾아져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 그걸 따질 여유는 없습니다. 진학문제로 담임이 가정 방문을 한다고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은 우선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우리 집이 내려다보이는 앞산 중턱에서 추위에 떨며 담임이 우리 집을 나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야가 어데 갔다 인제 오노?"라며 어머니가 못마땅해하시며 "이거 빨리 뛰어가서 선생님 갖다 드래라이."라며 생달걀 두 개를 내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철길 근처에 가서야 선생님을 만나, "어메가 이거 드리라이더."하면서 달걀을 내밀었을 때, 그 선생님의 난감해하던 표정이 떠오르면 지금도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그날 저녁밥을 먹은 후 아버지께 꾸중 많이 들었습니다.


"니는 우째 그러노, 왜 형들을 안 닮았노?"    


아버지의 분노는 중학교 진학이 어렵다는 선생님의 성적 통보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형제들 중, 외양으로 보아 내가 당신을 가장 많이 닮아서 더 컸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을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이 인간될 것 같지 않아서, 아니 인간될 것 같지 않은 못난 자식이 당신을 많이 닮았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는지도 모릅니다.     

기막히다는 듯이 "저게 날 닮았다고?"라는 말씀을 가끔씩 했었으니까요.     


"니는 중학교 가기가 힘들다더라."

라는 담임의 말을 아버지가 전해 줄 때, 아버지는 한숨을 쉬셨지만 어린 내 마음속에는 한 줄기 빛이 비치는 듯했습니다. 이젠 매 맞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봉화초 6학년 중 절반에 가까운 애들이 진학을 포기하고, 약 150명 정도가 봉화중 입학시험을 보면 10여 명 떨어지는데 그 중에 내가 끼일 것이라는 담임의 예언은 구원의 소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 학업이 국민학교 졸업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우연 때문이었습니다. 아, 물론 내가 중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다면 재수를 시키더라도 형님들이 날 국졸로 그냥 두지는 않았겠습니다만.    


하여튼 입학시험에서 나는 답을 찍었고, 이 우연은 나를 중학교에 무난히 합격시켰습니다. 세상 일이 실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일찍 체득했다고나 할 수 있을까요?

    

    

<< 박oo 선생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 도망가서 정말 죄송합니다. 추위에 십리 길을 오셨는데...

정말 학교에 가는 게 죽을 만큼 싫었다는 걸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ㅠㅠ>>

작가의 이전글 '아도'였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