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리크 Oct 26. 2022

논산편 2부

논산훈련소

첫 기상

  자주 듣던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잠을 깼다. 이제야 진짜 군대라는 곳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굉장히 거칠 거 같았던 조교들은 의외로 상냥하고 상식적으로 깨웠다. 같은 생활관 동기들을 보아하니 다들 제대로 못 잔 거 같았다. 아마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 것 같다. 나도 종종 그러는데 그럴 줄 알고 전날 날을 새고 들어왔다. 덕분에 푹 잤다. 대학교를 다닐 때 빼곤 6시 기상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잠은 잘 잤어도 일어나기가 조금 버거웠다. 일어나서 멍 때리고 있었다. 몇몇 동기들은 앉아서 졸기 시작했는데 조교들이 생활관을 돌아다니면서 참새처럼 졸고 있는 친구들을 깨웠다. 어제는 14시 전까지 핸드폰과 함께라 시간이 잘 갔었는데 군대에선 역시 시간이 안 간다.

훈련소 1주 차

  논산 훈련소 생활 동안 가장 시간이 안 갔던 시기가 이때다. 첫 1주일 동안은 아무런 신체적, 야외활동을 시키지 않는다. 이 기간 동안엔 군 기강, 간단한 군정보, 자살예방, 성군기 등의 각종 교육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교육 시간이 너무 길어서 힘들었다. 그런 니즈를 아는 교육관은 쉬는 시간 중간중간에 여자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다. 살면서 함성이 그렇게 우렁찰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교육 시간 이후에 남은 시간에는 온갖 군 물품들을 보급 받는다. 의류, 신발, 세면용품까지 이때 받게 된다. 옷 사이즈가 다 제 각각이어서 고르는데 불편함이 있었다. 작은 거 보단 큰 게 좋으니 나중을 위해서라도 한 사이즈 정도 크게 가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니다. 보통 하루 일과가 기상-교육-밥-교육-밥-보급-밥 이런 식으로 단순하다. 본래 사람이라는 생물은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고 하는데 바깥 활동을 제한하고 같은 거만 하니 지루해 미칠 것 같았다.

  입대 전에 신체검사를 하기에 부대에선 또 하지 않을 줄 알았다. 훈련소에 입소하고 나서 또다시 신체검사를 받았다. 소변검사-X-ray-예방접종-BMI-눈 검사 순으로 받았다. 모든 중대의 인원들이 검사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나의 과정을 밟을 때마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렸다. 과자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마냥 인원들이 줄줄이 이동하며 폐 사진을 찍는 건 가히 장관이었다. 논산 훈련소 군 병원에 배정받은 군장병과 직업군인들은 이게 일상일 텐데 대단하다 싶었다.

  처음으로 소총을 받았다. 인터넷에서 말로만 듣던 총기번호를 보고 신기했다. 총기 수여식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비가 와서 일정은 취소되었다. K2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들고 다니면 하루 종일 고생스러웠을 것 같은데 다행이다 싶었다. 취소된 일정 때문에 남는 시간 동안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할 게 없어서 생활관에서 동기들과 얘기를 하다가 책을 읽었다. 갑자기 방송으로 판초우의를 가져가란 말을 듣고 판초우의를 받았다. 먼저 전역한 친구들이 판초우의를 싫어했는데 아직까진 이유를 몰랐다.

  모두가 생활복을 보급받았을 때 나는 사이즈 재고가 없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입소식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돌아다녔다. 식당으로 이동할 때 다른 소대 인원들을 보면 간간히 나처럼 사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통일된 유니폼을 입고 있는데 나만 다른 옷을 입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뭔가 나만 겉도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다. 아무쪼록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한지 군에서 집으로 보내는 소지품 택배는 1주 차가 지난 뒤에 보냈다. 입소식 때 입었던 옷, 신발과 혹시 몰라 편지도 동봉해 보냈다.

  주말에는 PX를 들렀다. 오랜만에 과자나 음료와 같은 군것질 거리를 할 수 있을까 희망을 품었지만 조교들이 딱 잘라서 불가능하다고 알려줬다. 이번에 들르는 이유는  각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샴푸, 비누, 칫솔, 폼 클렌저, 바디 워시 등 각자 필요한 물품을 사러 들렀다. 인원 통솔의 이유로 다들 오와 열을 맞춰 PX까지 걸어갔다. 몸치라 그런지 발맞춰 걷는 게 어려웠다. PX 앞에서 조교가 나라사랑카드를 나눠줬다. 앞에 인원들이 나오기 전까지 동기들과 잡담을 하며 기다렸다. 난 샴푸와 바디워시 그리고 쉐이빙 폼을 구매했다. 비누가 보급으로 나오긴 하지만 머릿결이 너무 빡빡해져서 그게 싫었다.

  처음으로 종교행사에 참여했다. 종교는 총 4곳이 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가 있었는데 어디로 갈지는 직접 골라 한 곳만 가야 했다. 불교가 핫하다는 동기들의 말에 따라 불교행사에 참여했다. 다른 종교 장소들에 비해 가장 멀리 위치해 있었다. 행사 시작은 스님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마무리는 여가수 그룹의 댄스로 마무리되었다. 핫하다고 한 게 이거였구나 싶었다. 모든 훈련병들이 광신도 마냥 일어나서 노래와 춤을 따라 불렀다. 합법적으로 여자 아이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훈련소 2주 차

  본격적인 훈련소 생활이 시작되었다. 평소에는 생활복을 입고 오전에 기상나팔과 함께 아침체조를 하고 온다. 비 오는 날엔 실내 점호로 대체되었다. 이로서 군필자들이 오전에 왜 비가 오길 바라는지 알게 되었다. 오전에 하는 체조시간이 가장 귀찮았다. 옷도 바꿔 입어야 하고 날도 추워서 정신이 없었다. 다들 나와 비슷한지 체조 후 아침밥을 먹고 나서 생활관에서 참새처럼 졸다가 조교한테 혼나기 일수였다.

  입소 2주 차부터는 저녁에 불침번을 시작했다. 내가 12월 말에 입대한 덕에 1월 1일이 되는 날 불침번을 서게 되었다. 2300부터 2400에 딱 맞춰 불침번을 섰다. 처음으로 서는 불침번인 데다 해가 바뀌니 마음이 뭔가 싱숭생숭했다. 사회에선 지금 TV를 보며 종 치는 걸 보고 있겠거니 싶었다. 밖에서는 한 시간이 짧은데 부대에서 시간은 진짜 느리게 갔다. 불침번을 서는 동안 지루함도 달래고 잠도 달아나게 하기 위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나마 시간이 잘 갔다.

  미군 훈련소에 적용이 되는 체력장이 실시되었다. 미군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해당 체력장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윗몸일으키기와 팔 굽혀 펴기는 같은 날 진행되었고 오래 달리기는 그다음 날 진행되었다. 윗몸일으키기는 통과였는데 팔 굽혀 펴기가 문제였다. 팔꿈치가 미군에서 원하는 자세까지 되지 않았기에 걱정이 앞섰다. 달리기는 정말이지 이 악물고 달려서 3.2km를 13분 50초 대에 끊었다. 결과를 보고 매일 팔 굽혀 펴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군복과 생활복 그리고 기타 생활품들을 받아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 교장들이 멀어서 매일 오랜 시간을 걸어 다녔다. 한 겨울이라 그런지 손끝과 발끝이 시렸다. 걸으니 발은 따뜻해져서 다행이었지만 손은 추웠기에 일부러 장갑을 2개씩 끼고 다녔다.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지 제식, 사격자세, PRI 같은 훈련을 진행했다. 지난주엔 계속 실내교육만 받아서 답답했는데 돌아다니니 기분이 한결 좋았다.

  이맘때부터 편지를 받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바깥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창구였기에 편지를 받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먼저 다녀온 친구들이 편지가 안 오면 좀 위축되거나 서운하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런 뜻이구나 싶었다. 사실 별것도 아닌데 편지를 많이 받은 동기를 보면 어떨 땐 부러웠다. 편지를 나눠줄 때 가끔 여자 이름이 들어가면 생활관 동기들이 모두 달려와 이 여자와 너의 관계는 무엇인지 추궁을 하면서 놀곤 했다. 그러다 한 번은 동기의 어머님이어서 다들 당황한 적도 있었다. 친구가 프리미어리그 소식을 전해줘서 군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좀 덜했다.

이전 04화 논산편 1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