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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너티뷰 Jan 20. 2023

-매력으로 덮은 깊이, 제임스 카메론답지만.

제임스 카메론, [아바타 2-물의 길]

[아바타: 물의 길, 2023]


 우직하다고 해야 할까. 사실 제임스 카메론의 필모그래피는 상당히 솔직한 편이다. [터미네이터 1~2], [에일리언 2], [람보 2], [타이타닉], 그리고 [아바타]. 대표작의 이름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카메론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칭호를 받으면서도 스타일이 바뀌지 않는다는 건 양면적으로 평가받을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카메론 같은 경우엔 내가 감히 쉽게 비판을 할 수 없다. 두 말할 것 없이 제임스 카메론은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이고, 현대 할리우드의 작법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마치 샤킬 오닐의 평가를 보는 기분이다. (또다시 뜬금없는 스포츠 비유지만,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그 누구도 샤킬 오닐의 자유투 성공률이 52.5%에 불과하다고, 혹은 216cm, 140kg의 체격이라 순발력이 떨어졌다고 비판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런 단점이 그의 평가를 뒤집을 수 없다는 말이다. 에일리언 2가 지나치게 액션에 몰두했다고 비판받기엔, 또 아바타의 서사가 너무 평범하다고 비판받기엔, 카메론의 영화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이번 아바타 2가 카메론에게는 가장 큰 시험대였을지도 모른다. 또 한 번 카메론의 마법 같은 매력, 그 우직한 매력이 빛을 낼 수 있을까? 어깨에 걸려 있던 명분들이 모두 이 영화를 따갑게 바라봤다.


 지휘봉이 여러 번 바뀐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 프랜차이즈와는 달리, 스스로 3편 이후까지 제작하겠다고 공언한 새로운 프랜차이즈이기에, 또 그 프랜차이즈가 영상의 새로운 세대를 연 아바타이고, 13년을 기다린 후속작이기에, [알리타: 배틀 앤젤]과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휘청임 이후 다시 감독으로서 돌아온 역전 주자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카메론의 매력이 절실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야기할 것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바타 2-물의 길]은 지금 당장에도 치솟고 있는 흥행 성적처럼, 그 매력을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새로운 프랜차이즈의 교두보로서, 카메론의 커리어에 쓰일 또 하나의 홈런 기록으로서 [아바타 2]는 성공적으로 제 역할을 해냈다.


 그래픽 디자인 팀의 생존 여부가 걱정될 수준의 경이로운 영상과, [터미네이터 1]에서부터 경지에 올랐던 액션 시퀀스, 13년 간의 공백을 인식하듯 친절한 플롯과 캐릭터라이징은 192분의 상영 시간도 꽉 채운 느낌이 나게 한다.


 친절하고 간단한 플롯, 공감하기 쉽고 매력적인 캐릭터(물론 이 부분은 후에 말할 부분이 많다), 이를 토대로 완벽하게 수행되는 스펙터클. 정말 제임스 카메론 답게 만들어졌다.


 서너 번을 보더라도 재미를 느낄 정도로 매력적이고, 그 자체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다. 그렇다면 남은 부분은 단 하나, “아바타보다 뛰어났는가”이다. 이 영화를 둘러싼 모든 논쟁거리는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된다.



 첫째로, 영상과 시각 요소에 대한 비판에 빠르게 내 의견을 말하자면, ‘억지로 까지는 말자’로 정리하고 싶다.


 전작보다 비주얼의 충격이 덜 하지 않았나 하는 의견은 두 가지로 나눠서 말하고 싶은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아바타 1]과 비슷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글쎄. VR이나 광각 스크린 정도는 대동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랬다면 손익분기점이 100억 달러가 넘었겠지...,


 말하고 싶은 건, 한 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사람에게 그 개척된 영역에서 발전해 평준화된 경험으로 다시 한번 증명하라고 하는 것만큼 가혹한 도전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기술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영역이다. 물론 이 부분 또한 [아바타 1]의 상상력이 13년 동안 다른 모든 분야에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과, 이미 관객은 ‘판도라’라는 세계가 익숙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멧케이나 부족의 전반적인 모습에서 보이듯이 ‘판도라’의 바다는 다분히 폴리네시아 지역의 이미지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친숙함은 충분히 상상력의 부재로 느껴질 수 있다.


 새로운 수생 생명체들도-전작보다 정서적 교감의 측면을 훨씬 강조했지만-시각적으로는 매우 창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계의 바다를 상상한 작품이 이제는 정말, 정말로 많다. (대표적으로 서브노티카)


 영화의 시각적 요소-사실 서사와 시각요소가 있는 모든 장르에서 통용되지만-를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에만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실은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상상, 기술, 그리고 통일성.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가장 좋은 예시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아바타 2]의 바다는? 이전 판도라의 밀림과 부유하는 산들보다는 덜 신비롭게 느껴지는, 친숙한 모습이지만 극장 내에서는 그 문제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기술적 측면과 통일성에서 완벽했기 때문에, 그 세계가 눈에서 사라져야만 비로소 생각이 나는 단점이다.


 아무튼 결론은, 이 정도 비주얼이면 합격점을 충분히 넘고도 남는다는 말이다. [아바타 2]보다 더 바다를 아름답게 담은 CG는 본 적이 없다.



같은 인물이 같은 극중 위치를 계승한다. 13년의 공백을 이해하는 훌륭한 디테일이다.



 두 번째, 그리고 이 부분이 가장 할 말이 많은 부분인데, 바로 캐릭터라이징에 관한 부분이다.

 “왜 스토리에 관한 부분을 빼놓지? 그게 가장 별론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카메론을 이해하지 않은 채로 내린 평가이다.

 

물론 영화 하나 보는 데 감독까지 이해해야 하나 싶다면, 그 생각이 맞다. 그러나 카메론은 적어도 이해할 가치가 있는 감독이다.


 사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는 스토리로 승부를 보는 영화가 아니다. ‘스토리, 서사’라는 단어도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애초에 카메론의 영화는 플롯이 매우 간단하다. 서사에서 주는 메시지도 매우 쉽다.


 달리 말해서, 서사의 층위가 얕다. 층위에서 주는 만족감까지 챙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누구보다 잘하는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이다.



 다시 한번 [타이타닉], [에일리언 2], [아바타]를 떠올려보자. 솔직하게 말하면, 영화의 플롯을 두어 줄로도 요약할 수 있다. 카메론의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 그 단순한 플롯에서 대중성과 평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서사가 아니라 캐릭터에 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데에는 그 이야기 자체, 이야기 속의 세계, 이야기의 인물 등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당연하지만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인물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잘 만든 캐릭터는 스스로 작품을 끌고 가는 동력이 된다. 사실 당연한 이치다. 정 가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를 누가 좋아하겠어.


 카메론은 이 캐릭터라이징, 즉 서사의 층위보다 인물의 층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감독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T-800, [에일리언 2]의 앨렌 리플리, [타이타닉]의 잭. 영화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바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카메론은 이 시리즈에서 ‘추방자’(원어명인 outcast가 훨씬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된다.)를 키워드로 캐릭터의 층위를 형성했고,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주인공 제이크 설리를 먼저 보자. 퇴역 군인이자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 그는 단지 과학자였던 자신의 쌍둥이 형 토미와 dna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아바타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다.


 영어에서 ‘outcast’는 추방자라는 의미보다 조금 더 소외된 이미지의 단어다. 버림받고, 따돌림당하고, 쫓겨났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제이크 설리는 군인, 아니 사회 구성원으로서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다고 버려진 인물이다. 판도라에서도 그는 어디에도 낄 수 없다.

 

 다리 탓에 자신에게 친숙한, 거친 군인들과는 어울리기 힘들고, 아무 배경 지식도 없는 채 그저 형의 유전적 대타로 들어온 인물이기에 과학자들 사이에도 낄 수 없다.


 [아바타]의 지구와 인류는 이미 자원과 에너지가 고갈한 디스토피아 세계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판도라에 도착한 인류 또한 자신의 고향에서 쫓겨 나온 ‘추방자’들이다. 그 추방자들 사이에서도 소외된 인물이 제이크 설리라는 것이다.



 1편에서는 극이 진행되면서, 특히 아바타에서 깨어나는 연출을 통해 제이크라는 인물이 가지는 괴리를 정말로 잘 형성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outcast’인 자신이 아바타를 통해서는 나비족의 인정을 받고, 사랑하는 이가 생기고, ‘토루크 막토’까지 된다. 소속될 곳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아바타에서 깨어나면? 다시 볼품없는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제 한 몸 움직이는 것도 못하는 인간으로. 이 시점에서 제이크의 고향은 지구가 아니라 판도라가 된다.


 마일즈 쿼리치 대령은 어떤가. 분명한 악인이지만, 인터넷에서 그를 재평가하려는-물론 거의 대부분이 유머이지만-움직임은 [아바타]가 첫 개봉한 뒤로부터 계속됐다.


 그만큼 이 인물이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 채로 매력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가 스스로 추방자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인류를 나타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 세계의 인류가 아니라 오히려 영화를 보는 현재의 인류에게 더 설득력이 있는 인물이다.


 인물의 세세한 특징들도 이에 맞춰 설계가 되어 있다. RDA의 책임자보다 더 리더적 면모를 보이고, 실제로 독자적으로 작전을 진행하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카리스마와 지배력을 가진 인물. 잔뜩 말라버린 제이크 설리의 다리와 대비되는 탄탄한 육체까지, 쿼리치는 모든 부분에서 제이크와 대비된다.


 그는 분명히 ‘outcast’, 추방자가 아니다. 오히려 언제나 집단의 중심, 리더에 속해있을 인물이다. 그런데 여기서 맹점은, 판도라에 도착한 인류 자체가 이미 추방자 집단이라는 것이다.


 본인이 추방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당연히 추방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는 극 중 “자신의 어머니를 죽여 놓고, 다른 이의 어머니마저 죽이려 한다”라는 제이크의 말로도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스스로 쫓겨난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이와 모두에게 쫓겨난 이의 대립. [아바타]가 평범한 서사로도 매력적이었던 원인은 이 둘에게 있었다.


 캐릭터의 층위로 메시지를 끌고 가는 작법이 바로 카메론의 변치 않는 정공법인데, 이것이 잘 된다면 선택과 집중이고, 잘 안 된다면 괜히 두 마리 토끼를 놓치는 셈이 되는 법이다.



'엄한 아빠' 스테레오타입에 충실한 설리, 이해가 가는 선택이긴 하다.

 


 [아바타 2]는 전작에 반해 캐릭터라이징에 더 고생을 한 모습이 역력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캐릭터성은 잘 구성했으나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제이크와 마일즈 둘의 층위만을 보여주면 됐던 1편에 비해서 이해시켜야 할 인물들이 많이 늘어난 것이 어쩔 수 없는 이유라면 이유이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부분이 [아바타 2]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아바타 2]에서, 제이크 설리는 더 이상 추방자가 아니다. 죽어가는 인류와 지구가 아니라 나비족과 판도라를 선택했고, 그는 이제 부족의 리더이자 가장으로 변했다. 우리는 이 캐릭터성의 변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속편에서 주연의 캐릭터성을 새로 부여하고, 기존의 특성을 새로운 인물에게 계승 시키는 건 매우 보편적인 전략이다. 쉽고 효과적이기도 하다.


 카메론은 제이크 설리에게 ‘아버지’, 즉 보호자의 특성을 새로 부여함과 동시에 기존의 ‘outcast’, 추방자적 성질은 다른 조연들에게 골고루 배분했다. 이 변화와 성장이 [아바타 2]의 서사를 끌고 갈 새로운 키워드였다. 이 키워드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되짚어보면…,



 인류는 다시 판도라에 찾아왔다. 이번엔 언옵타늄 채굴이 아니라 아예 이주를 위해서 말이다. 침략의 성격이 아예 달라졌다. 나비족들을 쫓아내고, 숲을 태운 후 그곳에 인류의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당연히 이제 나비족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반란군-인류 입장에서-의 수장인 제이크 설리는 최우선 사살 대상이 됐다.


 인류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제이크 설리도 달라졌다. 그는 이제 아버지이자 가장이 됐기 때문에,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바다로 도망친다. 이제 설리의 가족들은 전부 숲을 버리고 나온 추방자가 됐다.

 

 이때 추방자의 성질은 어거스틴 박사의 딸이자 입양된 가족인 키리, 마일즈 대령의 아들이자 사람의 모습으로 나비족의 정체성을 가진 스파이더, 인정욕구 강한 둘째 로아크, 그리고 작중에서 직접적으로 추방자라 묘사된 파야칸 등의 인물들로 이전된다.



 그렇다면 마일즈 쿼리치 대령은 어떨까. 이번 작품에서도 설리와 쿼리치의 대립을 통해, 특히 이전의 특성에서 몇 차례 꼬아서 묘사한 특성이 캐릭터를 아주 매력적으로 만들어냈다.


 전 편에서 이미 실패한 악당, 권위를 잃은 악당은 이제 1편에서 처럼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한다.


 RDA의 책임자보다 더 높은 권위를 지녀 보였던, 지배와 권위로서의 악당은 이제 사령관에게 받은 명령과 복수로서의 악당이 됐다.


 규모도 특수부대와 징발한 포경선에 불과하다. 특히 선장과의 계속된 기싸움과 협상은 쿼리치의 처지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잘 보여주는 연출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특성도 있어야겠지. 쿼리치 또한 스파이더의 아버지라는 특성, 그러나 설리와는 정반대의 아버지로서 이 특성이 작용한다.


 자식들을 사랑하기에 더 엄격한 아버지가 되는 제이크 설리(다만 이 ‘엄격한 아빠’를 나타내는 대사나 연출이 너무 평범하긴 했다)와 자신의 혈육임을 부정하면서도 중요한 대목마다 스파이더에게 부드럽게 대하는 쿼리치 대령의 모습은 카메론이 이 둘의 대립을 얼마나 잘 인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관계의 역전과 특성의 대비, 거기서 나오는 아이러니가 ‘부성’으로 완성이 된다. 쿼리치는 속편에 걸맞은, 훌륭한 악당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이 ‘부성’을 키워드로 잡은 부분에서의 연출은 극의 종반에서 벌어진, 아버지가 저지른 폭력의 사슬을 끊는 스파이더의 모습을 제외하면 그리 부각되지 못했다. 특히 제이크 설리의 부성이 그러한데, 영화 내에서 제이크 설리의 캐릭터 층위는 보호적인 아버지 하나의 모습만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모습을 설리의 성장 과정이라고 변호할 수는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의 설리가 가진 층위에 비하면 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설리를 나타내는 특성이 하나로 줄어버리다 보니, 멧케이나 부족과의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너무 감정적인 면 만을 드러낸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 ‘먼저 전쟁을 겪은 인물’ 로서의 설득력을 굳이 포기했어야 했을까?



스파이더,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임과 동시에 아쉬운 캐릭터였다.

 


 추방자로서의 특성을 새로이 얻은 등장인물들도 설명이 부족했기에 관객이 애정을 갖고 이입하기엔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와의 복잡한 관계, 설리처럼 인간-나비족의 이중 정체성이라는 아주 좋은 층위를 가진 스파이더도, 그 심리 상태와 행동 동기를 조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에게 스톡홀름 신드롬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키리와 로아크-파야칸의 설명이 잘 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애매하다.

 어거스틴 박사의 딸이자 입양아라는 출신, ‘에이와’에게 선택받은 인물, 이로 인한 ‘outcast’의 특성이 표면적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인물이 키리지만, 정작 극 내에서 출생의 비밀과 에이와의 선택이라는 가장 큰 ‘떡밥’이 존재한다고만 알려둔 채 다음 속편에 캐릭터성을 미뤄두는 모습은 얼핏 무책임한 선택 같아 보인다.


 로아크는 그나마 가장 조명을 많이 받은 인물이고, 관객에게 어필할 층위 또한 가지고 있다.

 설리의 잘못된 의사소통 방식으로 인해 스스로를 ‘outcast’로 인식하는 사춘기 소년이 극의 절정 부분에서 관계의 회복과 성장을 이루는 건 칭찬할 만 하나(특히 ‘당신을 봅니다’는 정말 좋은 대사 선택이었다), 그 성장까지의 빌드업이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된 것도 사실이다.


 파야칸은…, 글쎄, 인간과의 전투로 인해 동족을 죽게 했고, 그것으로 인해 추방자가 된 툴쿤이 다시 나비족들과 함께 인류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개인 서사가 끝난다면, 왜 애써  토노와리와 로날을 통해 바다 부족과 툴쿤을 설명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더 자세히 설명해주거나, 빠르게 넘어갔어야 했다.



 이것은 개연성의 문제라기보다는, 근원적으로 영화 내에서 인물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행동의 동기와 그 근간에 있는 심리를 관객에게 드러내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매우 중요하다. 그 부분이 바로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에게 애정을 가지게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아바타 2]는 정말 아쉬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등장한 인물들이 가진 특성들이 잘 표현된다면 정말로 훌륭했을 것이기에 너무나 아쉬웠다.

 

실은, 애초에 보여줄 캐릭터가 너무 많았다고 생각한다. 저 캐릭터들의 층위를 세 시간 내로 전부 이해시키는데, 그중 1시간은 액션에 할당해야 한다고? 카메론이 다섯 명이어도 못할 일이다.



물론 그래도 정말 재미있긴 하다. 눈이 지루할 틈은 없으니까...,



 써 놓고 보니 미안한 감정이 들 정도로 깐 것 같다. 아무래도 이 리뷰만 읽는다면 비주얼만 보기 좋은 반쪽짜리 킬링 타임 영화인 것 같은데, 사실 전혀 그렇지는 않다. 부랴부랴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캐릭터라이징에서는 분명 삐그덕거렸고, 하필 그 부분이 카메론의 선택과 집중에 있어서 ‘집중’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던 것이 분명히 안타깝지만, 동시에 그 고유의 매력을 아예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소득은 분명 있었다. 정말로 아름답게 표현한 바다를 통해 판도라를 확장한 것과 쿼리치의 맛있는 변화가 그것이다. 키리도…, 분명히 속편을 기대하게 할 요소다. 이제 관객들은 판도라의 세상에서 나올 새로운 환경에 더 열려 있을 것이며,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인류와 쿼리치를 기대할 것이다.



 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몰입감 있고, 여전히 매력적인 세계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참 카메론다운 영화이기에, 3편이 나온다면 당연히 극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키리와 에이와 떡밥, 맛있게 변화한 쿼리치 대령의 행보가 너무나 궁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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