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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바바 Sep 25. 2024

그 무모한 순정

방향을 잃은 순수함의 결말

책상 위 가방을 얹어놓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에이 뭐 출근하자마자 전화가 온담? 마음과는 다르게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다급한 목소리 선생님! 예, 어 00어머니 아니세요? 예. 선생님! 예, 예 말씀하세요 어머니. 우리 00이가요, 00이가.. 예, 예 어머니. 00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어요. 에, 예? 어떻게요.. 어머니.. 살았습니까? 예, 살았습니다. 지금 병원인가요? 병원에 있어요? 예. ㅁㅁ병원에 입원해있어요. 알았어요. 어머니 제가 얼른 가겠습니다.     


놀란 가슴은 전화를 끊고도 진정되지 않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과 머릿속은 순간 쓰나미가 밀려왔다. 높이 몇 미터의 정보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교사를 하면서 한번도 맞닥뜨리지 않은 일. 이런 일을 만나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던 교직 10여년차. 오호라 이제 만나는거구나. 이런거구나. 가방을 풀던 손은 다시 가방을 싸고 있었다. 부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께 차례로 말씀드리고 녀석이 입원해있다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멍한 눈으로 초점없이 바라보는 녀석은 내가 담임인지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어젯밤 같이 이야기 나누던 그 담임을 말이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죽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어머니도 정말 놀랐지만 그래도 이만한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우리는 서로를 마주 쓸어내리며 위안했다. 우리 둘의 이 모습을 병실 침대 위 철없는 녀석은 무심한 눈으로 응시했다.     


요는 그랬다. 녀석과 사귀던 2살 연상의 여자친구. 너와 나는 안맞는 것 같다며 이제 헤어지자는 말에 녀석은 괴롭고 힘들어했다. 살아갈 인생의 이유를 잃었다. 야자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 밤 아파트 복도에서 녀석은 자신의 몸을 날린 것이었다. 그렇게 사랑의 공허함을 채우려고 했던 것이다. 자신이 사라짐으로써 이별이라는 사실이 사실이 될 수 없도록.     

이렇게 말하면 무척 낭만스러운 소설 한 편 완성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나에게 닥친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혹시라도 학부모가 나에게 어떤 책임을 요구할지 걱정스러웠고, 녀석과 했던 상담일지가 잘 기록되어 있는지가 관건이겠다 싶기도 했다. 녀석과 나눈 몇 달 동안의 대화의 내용을 되짚으며 곱씹기도 했다. 교감, 교장샘은 관리자로서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염려스러웠다. 자신의 반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뒤로 감춘 동료 교사들의 시선도 불편했다. 녀석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 혼자였던 것처럼 나 또한 혼자임이 느껴졌다. 평소 잘친했던 부장선생님도 그 순간에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녀석을 냅다 줘 패고 싶었다.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18살 소년의 인생에 그 여자가 대체 무엇이길래, 목숨을 던질 만큼의 고통만이 그녀의 부재를 채울 수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것은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미스테리이지만(누군가는 이해할 수도 있겠지 하는 가능성은 남겨놓는 걸로).


그 날 이후로 나는 교사로서의 그동안의 자만을 반성하고 겸손해지기로 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자살의 징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무능한 교사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은 몸을 날리기 몇 분 전만 해도, 그런 결정을 내리기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이야기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야자를 하는 아이들 뒤 한 켠에 같이 앉아 다음 날 우편으로 보낼 성적통지표를 같이 접고 봉투에 넣으며 조금은 웃음 띤 얼굴로 티키타카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녀석에게서 추호의 일점도 그런 행동을 할 것이라는 걸 예측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자살예방교육으로 교원들에게 ‘자살의 징후’에 대한 교육을 한다. 잘 받았다. 그렇구나 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웬 걸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그 녀석에게는 어떤 징후 하나도 맞아 떨어진게 없었다.

오직 죽지 않고 살아주었다는 사실만이 나는 고맙고도 또 고마웠다.

교실로 돌아온 나는 반 아이들에게도 녀석의 이야기를 함구하며 혹시라도 모방 행동이 있지는 않을까 그해 내내 노심초사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녀석은 6개월 정도의 치료 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학교 생활을 다 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에고,, 그리고는 다시 연상의 여자 친구를 잘 사귀며 대학가서 인싸로 잘 살더라고!

그리고 남자들은 정말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얘들아, 사랑이 중요하긴 한데,, 그게 말이야,,그게... 쩝...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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