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파리는 억울했다.
오늘따라 그의 날갯짓 소리가 더욱 구슬프다. 피위이잉-
"어머니 우리는 왜 파리로 태어난 걸까요." 파리가 물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니.” 엄마 파리는 아들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더듬이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같은 벌레라지만 하다못해 나비나 잠자리랑만 비교해 봐도 대우가 너무 다르잖아요. 다리 여섯 개에 날개 달린 것까지 우리랑 똑같은데 인간들은 익충이니까 죽이지 말라느니,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알겠다느니, 하는 듣기 좋은 말로 시까지 써주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인간들은 우리만 보면 인상을 찌푸리면서 파리, 파리채, 파리지옥 등등 온갖 위험한 것들을 우릴 향해 들이밀어요. 엄마는 억울하지도 않으세요?”
파리는 심술이 잔뜩 났다는 듯이 계속 왱왱거렸다.
“어휴, 그만 좀 해라. 네가 다른 곤충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몰라서 그렇지, 파리 정도면 나쁘지 않아. 벌이랑 나비는 꽃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굶어야 해. 그런데 우리는 어떠니? 더럽든, 깨끗하든, 맛이 있든 없든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먹고 마실 수 있잖니? 그저 오늘 하루 파리채에 비껴가고, 파리약을 들이켜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거라.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엄마 파리는 날개를 단호하게 피고, 지나가던 개가 싼 똥 쪽으로 날아갔다. 파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겁지겁 삼키던 개똥을 바라보며 헛구역질했다.
그가 달라진 것은 몇 개월 전의 일이다. 파리는 퇴근 인파가 많은 모 삼거리 근처의 프랜차이즈 선술집에서 서성이다가 두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요즘 어때?”
“말해 뭐 하냐, 죽지 못해서 산다.”
“그러게 잘 다니던 회사는 왜 때려치웠어?”
“더 좋은 데에서 불러주니까 뒤도 안 돌아보고 넘어갔지. 그땐 몰랐거든. 월급쟁이는 어딜 가나 파리목숨이라는 걸.”
왼쪽에 앉은, 머리가 조금 덜 까진 남자가 씁쓸하다는 듯이 가득 채운 소주 한 잔을 털어 마셨다.
“내 인생은 뭐 다르냐. 나도 똑같은 파리지.”
머리가 꽤 많이 까진 남자가 잔을 들며 말했다.
“그래, 너나, 나나 뭘 더 바라겠냐. 그냥 오늘 안 잘리고 버티면 땡큐 아니냐.”
“그래, 파리끼리 한잔 마시자, 마셔.” 두 사람이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천장까지 울렸다. 둘의 대화를 상공 3미터에서 듣고 있던 파리의 날개가 부르르 떨린 것은 잔이 부딪칠 때 나는 음파 때문도, 점심으로 먹은 음식물 쓰레기에 파리약이 묻어서도 아니었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강한 전율 때문이었다.
그날 밤, 파리는 좀처럼 잠을 청하지 못했다.
'인간도 사는 게 파리랑 똑같다고? 말도 안 돼.' 이윽고 파리의 생각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그럼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파리에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건가?'
먹이사슬 최하위의 파리가 최정상의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그것은 한낱 미물에게 너무도 성스러워서 그저 가슴속에 품는 것만으로 죄악처럼 느껴졌다.
그날부터 파리는 인간 세상 구경에 매진했다. 수백 개의 정육각형으로 구성된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맺힌 것은
TV 속 연예인들이었다. 푸르스름한 포충기의 빛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무대 조명과, 그 아래에서 현란히 움직이는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출연진들의 곡선, 그리고 그들을 향해 환호성을 터뜨리는 무수한 인간들. 관객석을 가득 채운 그들의 손에는 전기파리채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들려있었다. 영상에서는 그것이 '응원 봉'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의 생명체를 향해 다른 생명체들이 보내는 무한한 사랑과 응원. 그것이 파리의 작디작은 심장에 영원한 불씨를 일으켰다. 파리는 이윽고 거리의 초파리와 바퀴벌레들에게 수소문하여 자신이 네모난 TV 속에서 찾아낸 연예인들이 살고 있는 네모난 빌딩을 찾아냈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껍데기는 확실히 더 화려했지만, 그들 역시 다른 인간들처럼 정해진 시간에 무언가를 먹었고, 정해진 시간에 배설했고, 정해진 시간에 자라난 채모를 다듬었으며, 정해진 시간에 파리처럼 손을 비비며 거품을 냈으며,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은밀한 사랑을 나누었다.
한동안 그들의 삶을 관찰하던 파리는 더 이상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더 이상 부러워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 화려한 연예인이 되기 이전에 평범한 ‘인간’부터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겠다며 꿈꾸는 것은 아이가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뛸 생각부터 하는, 얼토당토아니한 생각이라는 걸 스스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래서 파리는 일단,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당장 인간들 앞에서 춤을 출 수 없다면 곤충들 앞에서 춤을 추면 될 일이었고, 지금 당장 인간의 환호성을 들을 수 없다면 수만, 수억 초파리들의 날갯짓 소리로 대체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파리는 매일 아파트 창문 너머로 TV를 훔쳐보며 인간의 안무를 익혔고, 곤충들이 자주 오가는 흙길을 무대 삼아 공연 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는 이제 정말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가장 만만한 초파리 동생을 불러내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 세상에서 가장 인간에 가까운 파리의 공연이 열릴 테니까 너 위로 6만, 아래로 6만 마리만 불러줘. 응? 내가 지난번에 너희 어머니가 하수구 트랩에 갇히셨을 때 구멍을 내어줘서 살려드렸잖아. 이번에는 네가 은혜 좀 갚아라. 응?”
초파리는 요새 다들 겨울 대비하느라 바쁜데 무슨 공연이냐고 입을 삐죽 세웠고, 파리가 살살 달래며 썩은 거봉 껍질을 내밀자, 손을 싹싹 빌며 좋아했다. 어느새 무대 시간이 다가오자, 동네에서 가장 밝은 가로등 아래에는 깨알처럼 다닥다닥 검은색과 갈색의 생명체들이 군집했다.
맨 앞줄 VIP석에는 엄마 파리가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누가 부른 것인지 하늘소 스무 마리와 땅강아지 여덟 마리도 왔다. 길을 잘못 든 쇠똥구리 한 마리도 이참에 잘 되었다며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더듬이 디딜 틈도 없이 수많은 초파리가 자리했다. 충파(蟲波)를 비집고 초파리 동생이 파리를 향해 다리를 흔들었지만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심히 긴장한 파리는 그를 보지 못했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파리는 오늘 아침까지 함께 연습한 매미 트리오를 향해 시작 신호를 주었다. 세 마리의 매미는 오늘을 위해 2달 전부터 파리가 고용한 라이브 밴드였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인에 맞춰서 있는 힘껏 배를 부풀렸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청아했던 그들의 울음소리가 왜인지 빈약했다. 음색도, 음량도 시원찮았다. 댄스곡을 연주해야 할 그들이 내는 소리는 어딘가 매우 구성졌고 듣는 곤충으로 하여금 힘이 빠지게 했다. 파리는 그때, 순간적으로 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렸다.
'너, 무슨 일이 있어도 매미 새끼들이랑은 일절 상종하지 마라. 그 자식들은 지들이 쌩쌩한 여름에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펑펑 쓰면서 다 줄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데, 초가을만 되어도 입 싹 닦고 사라지더라. 특히 늦여름을 조심해야 해. 나도 몇 번을 뒤통수 맞았는지 모른다.’
그랬다.
여름이 끝나고 슬슬 추위가 다가오자, 매미들이 죽을 때가 된 것이다. 식량을 많이 쥐여주고 고용한 파리 입장에서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VIP석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엄마 파리를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파리에게 있어서 이번 무대는 단순한 춤 공연이 아니었다. 그의 미래와 비전을 거대한 세상 앞에 처음으로 드러내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파리는 그의 첫 번째 관객이자 꿈의 증인이 되어줄 엄마 파리에게만큼은 절대로 중도에 포기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는 구성진 노래에 날개를 힘껏 펼쳐 몸집을 키웠고, 여섯 개의 다리를 폈다 접으며 절지류로서의 위엄을 뽐내기 시작했다. TV 속 인간들의 움직임을 재해석한 곤충의 몸놀림에 관객들은 하나둘씩 더듬이를 곤두세웠다. 그 광경은 한낱 미물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벅찬,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감동이었다.
실제로 수십 마리의 초파리가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터져 죽었으며, 공연 중간에 자리를 잡은 하루살이 커플은 파리의 춤을 넋 놓고 감상하다가 짝짓기 타이밍을 놓쳐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무대를 장악했다는 확신에 찬 파리는 더욱 수준 높은 움직임을 구사했고, 관객들의 몰입도도 솟구치기 시작했다. 쇠똥구리는 자신의 똥이 굴러가든 말든 하염없이 파리의 춤사위를 따라 하고 있었고, 감동을 견디지 못한 채 하나둘씩 죽어가는 초파리들의 빈자리를 지나가던 개미 떼가 차지하면서 관중석은 미어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준비했던 공연을 모두 마쳤을 때, 파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매미 트리오는 결국 모두 죽었지만, 무대는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엄마 파리는 저 애가 우리 애라며 손으로 연신 더듬이를 비볐고, 다른 곤충들은 날개를 찌르르 떨면서 환호했다.
그런데 파리는 이상하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가 무대 위에서 기대했던 관객들의 환호성은 이런 게 아니었다.
분명 인간들의 박수 소리는 듣기만 해도 덩달아 기운이 나고 영혼의 상처마저 치유하는 듯이 깊은 충만감을 불러일으키는 소리였는데, 곤충들은 박수 소리는커녕 박수를 칠 수조차 없었으며, 그들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란 메마른 두 다리를 비빌 때 들리는 찌르르 소리뿐이었다.
'팔다리는 인간보다 많으면서 왜 인간보다 박수 소리가 작은 거야?' 파리는 몹시 실망했다. 아니, 실망을 넘어 강한 자괴감을 느꼈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이 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는 모든 것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인 게 아닐지 생각했다.
그가 처음부터 파리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더라면, 그가 그날 프랜차이즈 술집에서 두 남자의 대화를 엿듣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가 처음부터 이런 이상한 생각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무대 위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그에게 엄마 파리가 다가왔다.
"그만하면 잘했어. 이제 내려가자.” 엄마 파리가 얇은 다리로 그를 토닥였다.
"이 세상에 너처럼 춤을 잘 추는 파리가 어디 있겠니. 엄마는 정말 놀랐어."
엄마 파리가 옆에서 왕왕거렸지만, 파리는 그녀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왜냐면 아까 전부터 그녀의 입과 날갯짓에서 풍겨오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리는 구역질을 겨우 참으며 자리를 떠났다. 자리에 남겨진 셀 수 없는 곤충들이 고요하게 그의 비행을 바라보았다.
파리의 날갯짓은 한참 동안 멈추지 않았다. 그의 비행이 겨우 멎은 곳은 크고 웅장한 음악 소리가 퍼지는 서울의 어떤 콘서트홀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가수는 앙코르곡에 맞춰 멋진 춤사위를 뽐내고 있었다. 가수의 격렬한 움직임에 땀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땀방울 중 일부는 감동에 가득 찬 어떤 소녀 팬들의 눈물과 포개졌고, 미처 포개어지지 않은 땀방울과 눈물방울의 사이는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로 메워졌다. '그래, 이게 박수고, 이게 무대지.' 파리는 생각했다.
파리는 다시 날개를 곤두세우고 콘서트홀 입구에서 관중석을 가로질러 무대 한가운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콘서트의 뜨거운 열기와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짝짝짝 짝짝짝 짝짝, 그리고 짝...
"어? 뭐야! 나 방금 박수치다가 파리 잡았어!"
소녀 팬 하나가 손바닥에 눌어붙은 파리시체를 친구에게 펼쳐 보이며 말했다.
"으으. 징그러워. 물티슈 줄까?" 소녀는 큰 소리로 웃으며 친구가 건넨 물티슈를 받아 손바닥을 문질렀다.
"야, 근데 오늘 멤버들 진짜 잘 생기지 않았냐?"
"그니까 미친. 아까 게스트로 올라온 여자애들은 우리랑 동갑이던데. 나도 걔들처럼 데뷔해서 같이 무대에 서면 얼마나 좋을까? 진짜 부럽다.”
소녀들의 대화 소리가 관객들의 환호성 너머로 차츰 사라졌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