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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in Dec 19. 2022

영화 <김씨표류기>와 존재감

hwain_film 추천 no. 30

제목: 김씨 표류기

감독: 이해준

출연: 정재영, 정려원 등

네이버 평점: 8.78

개봉: 2009년


 영화의 특정 장면이 너무 유명해지면 작품의 내용 전체가 장면에 잡아 먹히기도 한다. 짜장면 먹는 장면 때문에 작품성이 가려진 아쉬운 작품, 김씨 표류기를 소개한다.


 1. 몰라봐서 죄송한 명작


 <타짜>나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처럼 명장면들이 곧 작품의 정체성이 되기에 알맞은 영화도 있는가 하면, 이 작품처럼 명장면으로만 기억되기에 조금 아쉬운 작품도 있다. SNS에서 아직도 ‘짜파게티 먹방 레전드’로 돌아다니는 작품의 명장면은 볼 때마다 군침을 재생시키지만, 이 작품이 ‘먹방 레전드’로 코믹하게만 소비되는 것은 너무 아쉽다. 미처 몰라본 이 작품의 매력에 대해 말하고 싶다.


 2. 무인도


 영화에서는 두 개의 무인도가 나온다. 두 개의 무인도에서 두 명의 김씨들이 제각각 표류한다. 첫 번째 무인도는 밤섬이다. 김씨는 무능해서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고, 쌓인 대출금에 허덕이다 이곳, 밤섬에 도착했다. 밤섬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 서울에서 사람도 문명도 없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가 휘황찬란한 서울의 야경에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두 번째 무인도는 방구석이다. 또 다른 김씨가 직접 만들어낸 자발적인 무인도다. 그녀는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외출은커녕 문을 걸어 잠그고 섭식도 생존할 만큼으로 통제한다. 가족들과 다 함께 사는 아파트에서 그녀가 만들어낸 작고 외로운 이 공간은 밤섬만큼이나 조용하고 어둡다.


 3. 표류


 표류의 원동력은 ‘적응’이다. 우리는 자연을 떠돌아다니는 짐승들에게 표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정처 없이 헤매는 사람들을 표류한다고 표현한다. 표류는 ‘적응의 동물’인 사람들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표류자들은 정처 없이 떠돌다가도 일정 수준이 되면 ‘적응’을 택한다. 아무도 없는 심리적 진공 상태의 공간에서도 인간은 살아야 하고, 또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울부짖으며 내뱉은 ‘HELP’가 곧 ‘HELLO’가 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루틴을 만들어 하루를 지워나가는 김씨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능을 느낄 수 있다.


 4. 존재감


 작품은 우리 인간들이 모두 표류자라고 말한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무인도를 표류하는 중인 것이다. 우리가 표류 중에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 역시 또 다른 표류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아슬아슬하게 표류하는 중임에도 괜찮은 척, 잘살고 있는 척한다. 그래 봤자 각자의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도 어딘가에 의지해야만, 적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연약한 표류자들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비교하는 것을 초연하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지운 채 살아간다. 김씨는 진정한 무인도(밤섬)에서 표류하던 중 진정한 희망을 발견한다. 진정한 희망은 내가 동경하는 SNS 속 스타도, 내가 꿈꾸는 이상 속 그 무언가도 아닌 매우 일상적인 것(짜파게티)이었다. 짜파게티(희망)를 ‘스스로’ 얻어내기 위해, 거저 얻은 다른 짜장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김씨에게서 그의 존재감이 빛난다. 그의 빛나는 존재감이 우리들의 표류에 용기를 준다.


 5. 한 줄 평- 표류의 끝에서 발견하는 ‘나’의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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