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상추를 심었습니다.
지난주 불볕더위가 일주일째 기승을 부릴 때 모종을 사두고 후회했습니다. 너무 더워 심을 수도 없고 검색해 보니 8월 말에나 심어야 한다 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며칠 놔두었더니 절반은 말라 버려서 안 되겠다 싶어 그대로 심었습니다.
물을 줘도 시들하길래 머지않아 말라비틀어진 잎만 남을 거 같아 제 무지와 성급함을 탓하며 냉장고에 보관해 둔 상추씨를 꺼내 모종판에 심었습니다. 한 달 정도 자라면 밭에 옮겨 심을 수 있으니 검색해 본 대로 가을상추 심기에 제격인 거죠.
놀랍게도 요 며칠 내린 비로 3일 만에 싹이 옵니다. 봄에 모종 낼 때는 보름이 지나도록 변화가 없어 애를 달았는데 말입니다. 3월 초, 낮에는 햇빛을 쫴야해서 밖에 내놓고 밤에는 들여놨는데 꽃샘추위로 그사이 얼어 죽은 건 아닌지, 처음 내보는 모종이라 유심히 들여다보며 채근했습니다.
물론 보름 지나 싹이 나더니 속도가 붙어 훌쩍 커버렸지요. 너풀너풀 싱싱하게 포기를 이루다 이제는 잎에 반점이 생기고, 뻣뻣해지고, 달고 아삭하던 맛은 어디 가고 쓴맛만 남게 되어 가을상추에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이런 게 자연의 섭리겠지요. 시간차는 있겠지만 때가 되면 알아서 오고 가는 거 말입니다.
자크 프레베르 시인의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를 보면 죽은 나뭇잎의 장례식에 두 마리 달팽이가 조문하러 가을에 길을 떠났는데 도착해 보니 봄이라 죽었던 나뭇잎들이 부활했더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슬픈 마음으로 조문길에 나섰다가 도착해서 다시 웃게 되더라는 달팽이이야기인데요. 자연의 섭리를 따르다 보면 슬픔도 괴로움도 기쁨도 한때의 영광도 만남도 헤어짐도 다 지나간다는 의미로 해석해 봅니다. 조바심 내지 않고 길게 바라본다면 말이죠.
가을 상추를 심으며 잠시 상념에 잠겼습니다. 세 걸음 앞에 먹을거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건만 자연의 섭리를 간간히 깨우쳐주니 해마다 아니 기를 수 없지요.
첫 잎을 따서 아삭 베어무는 맛은 몇 번의 유통과정을 거쳐 마트 진열대에 상품화된 먹거리와 확연히 다릅니다.
그러니 작은 화분에서라도 상추 한 포기 키워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