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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생 Sep 09. 2023

치매 엄마의 우당퉁탕 유쾌하고 개구진 하루 [13]

미싱놀이 /인생 2막은 엄마와 함께

치매 환자도 가족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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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 아침 7시 20분쯤 1년 동안 들르던 곳이 있다. 양천구 신정점 파리바게뜨.

늘 그 시간에 까페라떼를 사들고 학원으로 향했다. 9시에 첫 수업을 해야 해서. 학원시간표를 1년 단위로 짜다 보니 공교롭게 파바도 같은 시간에 1년을 이용한 셈이다. 어느 날, 빵집 사장님을 길에서 우연히 보고 얼떨결에 서로 인사하고야 말았다. 한 번도 사적인 표정을 지어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  


빵집 주인이 바뀐 것 같아 궁금하던 차에 마주치니 저절로 눈이 간 듯하다. 사장님은 35년 운영하던 파리바게뜨 체인점을 넘기고 은퇴했다며,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많이 궁금했단다. 1년 내내 일요일 거의 첫 손님으로 등장하는 내가 급하게 주문해서 가져가는 양이 의아했다고. 주로 일요일 손님은 편안한 차림으로 느긋하게 빵을 고르거나, 깔끔하게 차려입고 교회 가다가 들르는 경우가 많은데 긴장한 얼굴을 하고 주문하자마자 눈으로 재촉하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다한다. 커피머신을 다룰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없을 때는 까페라떼를 직접 내리러 일찍 출근하기도 했다고. 


학원을 운영한다 하니 이해하겠다며 한참을 끄덕이고 또 늘어놓는다. 애들 다 출가시키고 인생 2막으로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개업했다고. 놀 팔자는 아니라 이렇게 일하는 게 보람 있고, 체인점 할 때보다 시간도 자유롭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니 좋다고 나를 붙들고 인생 60년을 풀어놓을 작정이다. 참으로 수다스럽다. 내가 경험한 사장님의 모습은 늘 굳게 다문 입과 피곤에 찌들어 있는 표정, 굽은 어깨, 깡마른 몸이었는데 많이 홀가분한 모양이다.


인생 1막은 성실과 근면으로 가족을 감당해야 할 의무로 살았다면, 2막은 맘먹은 대로 제멋 대로 흐르는 대로 즐기고 있어서 몸의 소통도 원활하니 입을 닫을 사이도 없이 떠드나 싶다. 몸도 흐느적거리며 간간이 웃음 섞인 말로.

생의 에너지가 충만한 파바사장님 덕분에 처음 말을 튼 사이치곤 편하고 즐거웠다.

 

나의 인생 2막은 치매 14년 차 엄마와 놀기다. 작년에 은퇴하고 이제 일요일에는 엄마집으로 간다. 노인주간보호센터에 가지 않는 일요일에 무료한 엄마를 위해 그리고 언니의 쉼을 위해서. 

비가 억수로 내리는 일요일 엄마와 미싱놀이를 하려고 미싱을 챙겨 갔다. 엄마의 여름 바람막이 밑단도 줄이고, 언니네 강아지 아리의 이불도 손봐주려고.


작년에 실도 끼울 줄 모르고 미싱부터 주문한 터라 여전히 서툴다. 옷도 직접 만들 기세로 주문했지만 커튼 몇 개 만들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미싱인데, 오래간만에 하려니 실 끼우는 법부터 유튜브에서 다시 배워야 했다. 뒷면에 실이 자꾸 엉키니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쪽가위 들고 엉킨 부분을 제거해 주고, 나는 박음질하기를 반복했다. 한번 드르륵 박으면 될듯한데 순조롭지 않다. 둘은 말없이 집중했다. 


공장일이 없는 일요일에 한복을 주문받아 만들 정도로 솜씨가 좋았던 엄마는 틈틈이 옷을 만들어 주셨고, 어린 눈에도 내 옷을 박음질하는 엄마의 모습이 좋아 보였던듯하다. 그때는 기대에 부풀어 내 옷이 되어가는 양을 지켜보았는데, 지금은 엄마가 순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간신히 삐뚤빼뚤 성공한 옷을 입어보시더니 단박에 양손을 추켜들고 박자에 맞추어 들썩들썩,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방을 한 바퀴 돈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나았네 에헤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아 났네~~~”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동네 구석구석을 좋아라 자랑하고 다니던 나처럼.

엄마는 오늘도 행복한 기억 하나를 저축한다. 

달랑 옷기장 줄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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