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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생 Sep 13. 2023

치매 엄마의 우당퉁탕 유쾌하고 개구진 하루 [15]

엄마가 내 지갑을 털었다.

치매 환자도 가족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치매인 엄마는 나의 빨간 지갑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칸칸이 들어있던 카드며  동전, 지폐를  당신 멋대로 이름 짓고 나서, 마땅하다 싶은 칸에 다시 넣는다

나의 엄마는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쓰는 , 그래서 속이 너무나도  투명한  14년 차 치매 환자다.

6시에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귀가하신다. 

오자마자 씻고 옷 갈아입혀드리고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엄마는 탁자 위에 놓인 내 가방을 유심히 보더니 가방의 중앙 지퍼를 열어 또 한참을 쳐다본다.

이제는 손까지 집어넣어 하나하나 꺼내본다. 

빨간색 작은 손지갑, 치실. 볼펜, 립스틱을 한 번씩 열어보고 사용해 본다. 


소꿉놀이 하는 엄마의  작은 손놀림에서  설렘이 느껴진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무심한 듯 묻는 말에 답한다.


손지갑을 열더니 “와~ 오백 원 있다”해서 보니 5만 원권 지폐를 그리 말한다. 

또 “와 ~ 천 원 있다”해서 보니 1만 원권 지폐를 그리 말한다.

그러면서 “와~ 너 돈 많다”라고 하더니 좋아라 하신다. 

엄마 계산대로라면 고작 1,500원인데 말이지.


이번에는 내 주민등록증을 꺼내 들고 천천히 소리 내어 “주 민 등 록 ”이라 읽더니 중학교 때 만든 거냐고 묻는다. 주민등록이라고 읽으니 학교가 연상된 모양이다. 그리곤 지금의  내 얼굴과 사진을 번갈아 보시더니  미간을 살짝 좁히며  "사진이 젊었네 쯧쯧" 하곤  자식 얼굴에서도 세월이 지나감을 아쉬워한다.


다음은 립스틱을 도장이냐고 물어보더니 이리저리 돌려보며 귀퉁이에 새겨진 로고까지 꼼꼼히 물어보곤 작은 지퍼를 열어서 넣고 따독거린다. 잘 들어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도장은 소중하니 따로 잘 넣어두려는 것 같다.


그리곤 생각난 듯이 언니는 어디 갔냐고 물으신다. 언니가 엄마와 살림을 합친 지 3개월 만에 처음이다. 어제까지만도 이 집에는 올케와 오빠가 살고 있고, 언니는 서산에 있다고 여기는 엄마였는데 잠깐 정신이 드신 건지 참으로 반갑다.


다시 관심은 내 가방이다. 이번에는 액세서리를 담아놓는 색동 지갑에 시선이 머문다. 예전에 한복을 만드셔서 그런지 빨간 색동지갑을 퍽이나 마음에 들어 하길래 “엄마 가질래? 드릴까?” 했더니 “아니 내가 어디 쓰게 너 써”하시곤 또 만지작만지작. 엄마에게 필요는 없으나 가지고 싶다는 마음의 갈등이 고스란히 읽히는 중이다.


또다시 웃음을 참으며, 빨래를 개키고 있으니, 

잠시 후 

색동지갑은 엄마의 양말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가고 있고,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오늘도 엄마에게는 기쁨 가득한 날이다.

달랑 색동지갑 하나로 

엄마의 욕구는 소중하니까. 집에서 만큼은 자유롭게 원하는대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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