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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생 Mar 04. 2024

(22) 치매와 마주하기- 불안

치매 환자와 가족의 행복을 위한 독서[3권째]

  ‘치매 환자의 뇌는 아기의 뇌와는 정반대로 이미 많은 경험, 지식, 기억이 기록되어 있는 일기장이다. 그래서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니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달래 듯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5쪽       

  

몰랐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되어 간다고 생각했고 치매는 그 정도가 심해서 보호자와 달리 본인은 행복한 질환이라 여겼다. 그런데 치매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오던  경험들을 의도치 않은 순서로 내려 놓이는 병인 거고, 주식계좌가 하루아침에 녹아내리는 듯한 상실감을 느끼는 병임을 독서를 통해 알아간다.

 상실로 인한 불안감으로 ‘어디냐’, ‘누구냐’ ‘무엇이냐’을 입에 달고 다녔던 건데  바로 전에 한 질문을 반복하는 엄마에게 호기심 많은 아이 같다며 나는 가볍게 웃어 답했었다. 불안한 감정일 거라곤  전혀 예상 못했다.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을 매 순간 맞이하는 치매환자는 불안을 넘어 공포심마저 일어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이럴 때에는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서 사소한 자극이나 주위의 별 것 아닌 사건에도 벌컥 화를 내거나 격한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한꺼번에 많은 요구를 받게 되거나, 재촉을 받거나 주의를 받게 되는 경우는 혼란 상태가 더 심해진다. 어찌 보면 누구나 불안, 긴장, 외로움을 느끼고 살아갈 텐데 이러한 심리로 생존의 위협(?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낀 바는 그렇다)을 받는다는 점에서 정상인과 다른 듯하다     

 며칠 전 고모 두 분이 다녀가셨다. 엄마는 ‘누구냐’고 묻는다. 나도 15년 만에 뵈어서 그런지 얼굴은 긴가민가 하고 목소리로  겨우 알아봤다.  그래도 어찌어찌 대화를 나누었는데 두 분 돌아가신 후 엄마는 움직일 수 없는데도 억지로 침대에서 내려오려 하고 기저귀를 하는 족족 빼버려서 애를 먹었다. 엄마를 꼭 안아주고 얼굴과 머리 다리를 마사지해 드리고 나서야 진정되었다. 그때 엄마의 이상행동이 불안으로 인한 스트레스였던 모양이다.

 또, 주간보호센터에서 엄마가 소리 지르고 폭언을 하고 옆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행동이 있을 때 집에서 보낸 행동을 조절하는 약을 복용했고, 그 원인으로는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라고 전달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는 일상적인 상대의 시선에도 감정이 격해질 수 있는 스트레스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불안심리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센터에서 소란을 피우는 엄마의 행동이 문젯거리에서 연민으로 바뀐다. 

오후에 몸이 피곤해지니 잠깐씩 여기가 어디? 함께 있는 사람들은 누구? 인지 모르는 순간이 오고 그때 감정도 더 예민해진 듯하다. 요추골절로 2주간 침대생활을 하고 있는 엄마를 관찰해 보니 오후 4시쯤 짜증이 올라오고 폭언하는 횟수가 잦았다. 다시 주간보호 센터에 등원하게 되면 6시까지 센터에 있을게 아니라 4시쯤 모시고 와야겠다는 새로운 계획이 생긴다.

 그리고 ‘사람, 장소, 환대’에서 김현경 작가가 절대적 환대가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다 했는데 내가 지금 상대하는 사람은 바로 전까지 어떤 마음의 갈등을 겪었을지 모르니 이해받으려 하지 말고 마음으로 존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치매로 늘 불안하고 외로운 엄마에게도 더욱 부드럽고 예의 바른 말투를 건네야 한다.

 치매 관련된 독서를 할수록 엄마를 새롭게 알아가는 것만큼이나 자연인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좋은 때이다. 엄마와 함께하는 이 시간들이.


*후일담; 조심하는 마음으로 부드럽고 편안하게 "여기가 엄마집이에요"라고 말씀드려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여기가 어디냐"를 멈추지 않으시니 엄마 시선이 닿는 곳 이곳저곳에 엄마 집이라고 써서 붙여놓았다.  급한 대로 달력 이면지에. 그리고 이제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싶으면 여기가 어딘지를 먼저 물었다. 엄마는 사방을 둘러보고 내 집이라고 말씀하신다. 일단은 성공이다. 

참고자료; 치매와 마주하기. 카토 신지 지음/박교상 옮김시니어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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