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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생 Mar 12. 2024

(23)장구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이 설렌다.   

침대에서 보내는 하루

십 년 만에 다시 잡아보는 장구채이리라

치매 초기만 해도 노인 복지센터에서 장구발표회까지 할 정도로 장구를 좋아하셨다.  그래서일까  좋아한 만큼 갈등도 컸다.  선생님 바로 앞자리를 고수하는 열성학생인지라 장구 수강생들끼리 자리다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치미는 울화를 쏟아내곤 했다. 고정좌석이 아닌데 내가 어제 앉았던 자리니  내 자리라며 밑도 끝도 없이 밀어붙였고 발표회 때 지정해주는 자리에도 불만이 컸다. 잘하는 내가 앞에서 해야하는데 뒤로 밀렸다며 발표회 끝날때까지 시비가 그치지 않던 장구다.

엄마는 오빠네와 합가를 해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장구를 센터에 두고 왔다. 차일피일 미루다 가보니 장구는 어딘가로 사라졌고 엄마에겐 서운함만 남았었다.

앞으로 한 달은 더 침대생활을 해야 하는 엄마가 무료할 듯해서 당근을 뒤졌다. 혹시 장구가 있을까 해서. 있다. 그것도 5만 원 저렴하게 나왔다.

그날로 가져다 놓으니 엄마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가 어제 판 건데 왜 여기 있지? 기억이 선이 아니라 점점이 떠오르다 보니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의 혼란이 생겨 십 년 전기억이 어제가 된 거다. 

내가 더 좋은 걸로 사 왔다 하니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보고 한참을  어루만진다. 장구채 잡는 손도 익숙하다. 

다리운동과 식사시간 중간중간에 송대관 태진아 콘서트나 민요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드렸는데 장구기초 배우기 채널로 바꿨다. 놀랍게도 유튜버에 집중해서 한 박자씩 따라 하기도 한다. 엄마가 직접 장단에 맞추어 북편과 채편을 두드리며 따라 부르는 노래에 생기가 돈다.  내 몸을 관통하는 진동이 있어야 놀이다운 놀이가 되는 듯. 


 "덩따쿵따 덩덩 덩따쿵따닥 덩따 덩덩덩 덩드리 다닥 덩합. 얼싸 좋네 하 좋네 군밤이야~"


그러고 보니 엄마 침대 주변에 악기가 하나씩 늘어간다. 피리, 하모니까. 장구까지 

피리는 3주 전에 다이소에서 혹시 심심할 때 놀잇감이 되지 않을까 싶어 구입한 건데 때때로 피리를 거꾸로 들어서 불곤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다. 

엄마 장롱 정리를 하다가 나온 하모니카는 엄마가 20년 전쯤 복지관에 처음 갔을 때부터 애지중지하던 거라 꺼내놓았는데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루라도 안 보면 죽고 못살던 순간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무덤덤해진 남편과 닮아있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 장구도 길어야 30분이니 다양한 흥밋거리가 필요하겠다 싶어 인근도서관에 가서 동화책을 대출했다. 글씨는 최대한 크고 글자는 최소한으로 구성된 책 5권을 골라 오전에 20분 정도 함께 읽는다. 이젠 글씨도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건지 다섯 글자를 열 글자로 늘려서 읽는다. 그리고 글자가 많으면 아예 읽으려 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는 글자는 모두 소리 내어 읽는 편이었는데  동화책을 함께 읽어보니 글씨를 정확하게 읽지 못하고 발음도 중간중간 웅얼거린다. 이걸  실독증이라 하는 모양이다. 글자보다는 그림으로 내용을 이해하는 엄마, 오늘도 행복한 시간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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