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데?”
4월 15일에 상추와 고추, 토마토, 오이, 강낭콩, 땅콩을 정식했습니다. 옥수수는 작년에 수확해서 남겨놓은 야무진 녀석으로 모종을 냈구요. 씨감자는 농사꾼 친구가 줘서 심었는데 감자는 처음이라 싹이 어찌 나오는지 유독 눈이 갑니다.
원래는 시차를 두고 심어야 하는데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탓도 있지만 아직도 파종시기가 헷갈려서 주변 텃밭을 둘레둘레하며 따라 하다 보니 한두 주 늦게 한 번에 심는 편이죠. 어제는 옆집에서 첫 상추라고 한 소쿠리를 주십니다. 옆집 어르신도 아는 거죠 우리 집 텃밭 작물이 늦되다는 것을.
모종집을 참새방앗간 드나들 듯 하고서야 텃밭을 얼추 완성했습니다.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은데 심다 보면 부족해요. 땅은 생각보다 많은 생명을 품어줍니다.
그리고 산아래 작은 밭은 두둑하게 이랑을 만들어 호박고구마와 당근을 심었습니다.
작물을 심을 때마다 동네어르신들이 한 마디씩 보탭니다. 땅콩을 너무 배게 심었네, 옥수수도 더 넓게 심어야 하는데, 감자는 깊게 심어야 하는데 등등 조심스럽게 건네고 가는 그들에게서 흙냄새가 납니다.
이제는 푸릇한 먹거리를 심으면서 한해를 시작합니다. 거의 30년, 수능지나서 12월 첫째 주 개강으로 한 해를 시작했는데 말입니다.
겨울방학 때 기본을 다져야 한다고 3달 동안 학생들을 촘촘하게 닦달했었는데, 텃밭의 기본은 땅심이라는 걸 농사 2년차에 알게 됐습니다.
땅심이 부실하면 매일 들여다보고 가꿔도 안타까움만 커지더다구요. 물론 자라는 틈틈이 음식물 쓰레기를 발효한 거름도 주지만 무엇보다 첫 거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녹색 봉투에 든 퇴비와 곱게 간 달걀 껍데기를 뿌려주고 음식물 쓰레기를 발효한 거름도 주어야 땅이 공기와 수분을 적당히 머금어 가벼우면서 촉촉해집니다.
처음엔 그걸 몰라서 단단한 흙에 물만 들입다 뿌려주니 질척하지 않으면 건조한 텃밭이었습니다. 몇 주에 걸쳐서 땅에 영양을 주고 흙을 갈아엎어 새 흙을 끌어올려 반듯하게 고르고 돌멩이도 걸러내고 멀칭비닐을 씌우면 준비 끝.
흙을 일일이 삽으로 떠서 갈아야 하니 큰마음을 먹고 시작해야 하는데 옆집 베테랑 농부가 경작기로 10분 만에 해결해 주니 이리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요 녀석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클 거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기 자리를 야무지게 지키고 있을 겁니다. 위로 쭉쭉 뻗는 옥수수, 낭창낭창 가는 줄기를 휘감으며 오르는 강낭콩, 사방으로 몸피를 넓혀갈 이슬 머금은 너풀너풀한 상추잎, 그리고 탱글한 방울토마토는 똑똑 따서 그 자리에서 먹을 겁니다.
은퇴 후에 맛본 첫맛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나의 수고로움은 때에 찌들어있는 지폐로 돌아왔다면 이젠 수분 가득한 탱글함으로 보상받을 거고 그것을 기대하며 물을 주는 저의 하루도 신선합니다. 물론, 돈으로 교환되는 노동에 익숙한지라 파란 글씨로 입금되는 지폐와 그 노고에 실린 긴장감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이 글을 읽고 계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뭣이 중헌가’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