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새우젓입니다. 저건 중국산이라 2킬로에 9500원이고 이건 강경산이라 1킬로에 14900입니다. 먹어보면 뒤끝이 달라요’ 새우젓을 판매하는 사람의 말입니다.
거의 2배 정도 가격차가 있는데도 강경산이 좋다고 들은 풍월은 있어서 강경산을 유심히 보고는 있으되 육안으로 구별할 수도, 더더욱 먹어본다고 해서 알리 만무합니다.
시어머님이 매년 주시는 새우젓 500그램도 절반을 못 먹고 냉장고 구석에 밀어놓고 있으니 말입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김장용 재료를 사러 농수산물 시장에 갔습니다. 처음으로 배추와 무를 심었거든요. 주변 텃밭에 몇 포기 안 되는 배추도 몸피를 단단하게 키워가는 모습이 너무나 탐스러워서 그걸 보고 무작정 심었어요. 그러니 남보다 한 달여 늦게 모종을 내면서 우리가 김장할 엄두는 안나고 나눠주자는 심산이었습니다.
우리 배추도 저들처럼 속을 채울 수 있을까, 혹시 절반은 비슷해지지 않을까, 그러면 좋겠다는 마음이 반복하는 날인데 우리 배추는 손바닥 반만 하게 겨우 땅 위에 잎을 펼치려 하면 배추벌레가 절반은 떼어먹고 달아나버립니다. 그래도 조금씩 겹겹이 서로 포옹하려는 모양새로 자랐고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통해서 어느 날 남편과 속이 들지 않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자하고 곧장 시장으로 갔습니다.
김장이 처음이라 시장 상인들의 노하우에 기대어 그들이 권하는 것과 양을 그대로 담아 별 고민 없이 한 번에 차에 싣고 왔습니다. 그러니 고춧가루, 갓, 생강, 새우젓, 액젓을 처음 사보았고 그 재료들로 담은 김치를 주변에서 너무 맛있다 하니 올해는 배추를 일찍 심어 젓가락으로 애벌레를 떼어내며 가꾸었습니다. 지금 우리 배추들은 주변 텃밭의 탐스러운 배추에 뒤지지 않을 자태로 당당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김장만 하면 됩니다. 12월 중순으로 계획했는데 담주부터 추워진다니 이번주라도 해야 하나, 벌써 김장을 끝낸 이웃도 많은데, 하던 차에 냉장고에 계란이 없다는 생각이 미쳐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 잠시 마트에 들렀습니다.
24시간 운영하는 마트가 늘 한산해서 곧 문을 닫을 것 같았는데 이날은 주차장 진입로부터 수신호를 해주는 주차요원이 여럿 있습니다. 웬일 인가 하고 마트에 들어서니 한껏 밝힌 조명아래 물건도 사람도 북적입니다. 여기저기 무선마이크로 이거사라 저거 사라는 소리도 웅성거리고, 볼거리도 많길래 천천히 둘러보다가 새우젓에 발이 멈췄습니다. 농수산물시장까지 갈 거 뭐 있나 여기서 사자 싶었던 거죠.
뭘 사야 할지 모르니 주저하고 있는 제게 상인이 와서 하는 말이 덤을 줄 테니 강경산을 하라 합니다. 덤이라는 말에 혹해서 그럼 3킬로를 달라하고 기다리는데 비닐봉지를 다물지 못할 정도도 욱여 넣더니 4킬로가 넘었다 하면서 다시 덤을 줄 테니 그냥 가져가라 합니다. 그 덤이라는 말에 그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려 ‘그러마’ 대답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상인이 봉지 밖으로 쏟아질 듯한 새우젓을 그대로 큰 봉지에 쑤셔 넣으니 큰 비닐 안에 작은 비닐과 새우젓이 한데 엉켜있고 날카로운 물건에 살짝만 스쳐도 터질 듯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습니다. 새우젓에 이물질이 섞여있는 것 같은 역겨움이 순간 치밀었고 저걸 들고 집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을까를 걱정하면서도 상인에게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덤을 준다는 말에 그의 인심에 기대어 있던 제 이성은 두발 두 손 다 묶여있는 듯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는 하인이 된 듯했습니다. 받을 것만 받겠다 했다면 마음이 가벼웠을 텐데 짐짝처럼 담긴 새우젓을 보면서 제 욕심을 후회했습니다. 상인의 거친 태도에서 과연 강경산일까라는 의심도 품었습니다.
내 탓, 네 탓을 하면서 잠도 설치고, 눈뜨자마자 커피 마시며 만약에 그랬다면 3배나 비싸게 산거고, 그럼 분할 일이고 하며 수영강습에 지각하는 줄도 모르고 쏟아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 기댄다는 게, 무언가에 혹한다는 게 이렇게 하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