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마주한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빽빽한 고층 건물 사이로 희미한 안개가 느리게 흘러간다. 밤새 내린 비 때문인지 안개 때문인지 길이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미끄러운 언덕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준호는 양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힘을 잔뜩 주고 천천히 걸었다. 집 밖을 나오는 순간부터 머릿속에서는 지하철을 탈지 버스를 탈지 늘 고민한다. 귀찮은 환승을 하고서 조금 빨리 갈 것인지, 돌아서 가지만 버스 뒷자리에 앉아 좀 자면서 갈지 생각하다가 오늘은 어젯밤 잠을 뒤척여 늦더라도 버스를 타고 출근하기로 결정한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는 동안 버스 정류장 옆 편의점으로 커피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러 사람들이 줄을 지어 들어가는 모습에 왠지 모를 처량함을 느꼈다.
버스에 올라탄 준호는 용케 자리를 잡고 앉아 버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지쳐 있었다. 창밖의 바삐 걷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어디선가 구해 온 커피를 들고 제갈길로 서둘러 움직인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은 어쩌면 저리 날렵하게 틈을 만들어 부딪치지 않게 잘 피해 다닐까?'
정신없이 어딘가를 향해 가는 사람들, 차들로 꽉 차 붐비는 도로, 그리고 비슷한 사람들이 만드는 얼추 같은 풍경이 따분했다.
광고판 위에 큼지막하게 걸린 “청년 주거환경, 이제 우리가 나서서 돕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준호는 피식 웃었다. 몇 달째 반복되는 그 문장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렇듯한 말이지만,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말이 어쩐지 조롱처럼 들렸다. 버스가 멈출 때마다 사람들은 좁은 통로를 비집고 후다닥 카드를 찍고 내렸고, 새로 올라 탄 사람들은 서둘러 카드를 찍고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다시 그 빈틈을 모자람 없이 메웠다. 한숨소리가 떠다니고, 탁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이 좁은 공간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적당히 잘 밀어내며 버티고 있구나...'
회사에 도착하자 이미 사무실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커피 향과 조용하지만 각자의 일로 분주한 아침, 그 어지러운 곳에서 준호는 또 하루를 견뎌야 했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동료들과 휴게실에 앉아 잠시 수다를 떨었다.
“요즘 집값이 다시 오른대.” 동료가 말했다.
“정책 발표 전에는 떨어지는 척하다가, 또 슬금슬금 올라.”
다른 동료가 대꾸했다.
"늘 그렇지, 기사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세력들이 있어."
또 다른 동료가 말했다.
“난 이젠 청약 접는 대신 ETF 산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준호는 묵묵히 커피를 마셨다. 부동산 이야기, 대출 한도와 금리, 환율과 주식, 모든 대화가 차트 분석 같았다. 이미 사람의 능력보다는 조달가능 금액과 조건에 부합하는 확률, 어쩌면 노력보다는 운빨로 나뉘는 세상이 된 지가 오래다.
"퇴근하고 잠깐 볼래? 할 말 있어."
오후에 하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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